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전쟁 수준으로 심각해지면서 화웨이에 대한 대응도 점점 더 강경해지고 있다.

지난 5월 16일 미국 정부는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제재를 시작했다.

미국이 화웨이를 견제해 온 것은 꽤 오랜 이야기지만 이번에는 그 결이나 영향력도 다르다. 사실상 화웨이가 기업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행정명령은 단순하다. 미국 기업은 화웨이와 어떤 방법으로든 거래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수준의 판매 중단이 아니라 아예 모든 비즈니스 거래가 끊어진다.

가장 먼저 불거진 곳은 구글이다. 화웨이가 안드로이드를 쓰는 데에 있어 구글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화웨이는 구글의 인증을 받는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중국 외 시장의 안드로이드 유통이 사실상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로 통한다.

구글 플레이, 구글 어시스턴트, 구글 앱스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화웨이는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해 현재 세계 스마트폰 시장 2위를 차지하는 회사다. 이 순간에 스마트폰의 기본 운영체제와 플랫폼에 발목을 잡히는 것은 치명적이다. 영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반도체 설계 업체인 ARM도 화웨이에 기술 라이선스를 끊기로 했다. 화웨이는 자체 프로세서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지만 이 역시 ARM의 설계, 제조 라이선스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ARM의 거래 중단으로 화웨이는 프로세서도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

이 뿐만 아니라 와이파이 얼라이언스, SD 협회 등 업계 표준 기술 연합들도 화웨이와 거리를 두고 나섰다. 중국 내에서야 어떻게든 제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글로벌 시장을 중심에 두고 있는 화웨이의 현재 스마트폰 비즈니스 구조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야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권 안드로이드는 완전히 끊어지는 셈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가장 심각한 것은 인텔이다. PC의 문제가 아니다. 화웨이는 네트워크로 성장한 회사다. 여전히 통신, 네트워크 등이 사업의 중심에 있다.

요즘의 네트워크는 단순히 장비 중심의 비즈니스가 아니다.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네트워크의 무게가 소프트웨어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고, 5세대 이동통신의 경우 엣지 컴퓨팅까지 강조되고 있다.

이 네트워크의 컴퓨팅은 성능과 신뢰도가 높은 프로세서에 달려있다. 지금으로서는 인텔의 제온 프로세서를 대체할 수 있는 칩은 없다.

프로세서의 구매가 끊어지는 것은 곧 네트워크의 핵심 장비를 꾸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프로세서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 번에 수 만 대 이상의 기지국을 세우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5G가 열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화웨이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통신사는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기술적인 문제, 혹은 그 동안 우려하던 보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 현재 화웨이는 가장 불안한 제품이라고 인지되는 것이 이번 미국 제재의 가장 큰 무게다.

화웨이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 사업은 서버와 클라우드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이 역시 인텔 제온 프로세서의 무게가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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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클라우드와 관련된 수많은 기술들이 미국과 얽혀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많은 클라우드 관련 소프트웨어나 프레임워크 등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상황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은 화웨이가 아니다. 그동안 화웨이가 미국을 비롯해 적지 않은 시장에서 미운털이 박혔던 것도 사실이고, 화웨이의 성장이 꼭 옳은 방향으로만 흘러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제재는 명확히 무역 전쟁의 당사자인 중국 정부를 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아직 이에 뚜렷이 대응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불똥이 다시 애플을 비롯한 미국 기업으로 번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국가간 힘과 자존심이 걸린 치킨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려해야 할 것은 그 동안 IT 업계가 쌓아온 오픈소스와 개방, 협력 등의 가치가 흔들리는 데에 있다.

IT 업계는 빠르게 성장해 오면서 기업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시장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외부의 기업과 협력하고 기술을 받아들이는 게 흠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됐다.

정치적인, 문화적인 장벽도 없는 게 IT 시장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보안이나 자체 핵심 기술을 지켜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오픈소스를 비롯해 합리적인 협력 방법들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번 화웨이 제재를 통해 다시금 기업 하나, 나라 하나가 마음을 다르게 먹는 것으로 한 기업의 비즈니스가 흔들리는 사례가 만들어졌다. 누가 잘못이냐를 떠나 업계는 또 하나의 불안 요소를 떠안게 됐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호섭 IT칼럼니스트> hs.choi@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