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돌아온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

몇 년 전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라 불리는 비즈니스 모델이 업계에 파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5000원도 안 되는 파격적인 가격에 당일 퀵서비스를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통상 퀵서비스 비용이 최소 6000~7000원에서 많게는 몇만원 선까지 잡히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는, 심하게 말하면 ‘저단가로 업계를 공멸시킬 가격’이라는 평까지 받았다.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가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당일배송 서비스 제공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존 직송 구조의 퀵서비스 운영 구조를 ‘허브에 여러 고객의 물량을 모아서 흩뿌리는 방식’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페덱스가 항공운송에서 처음 도입했고, 국내 택배업체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그 방식 맞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기존 퀵서비스는 기사 한 명이 고객(화주) 한 명에게 방문 픽업하여 수하인 한 명에게 배송하는 구조다. 하지만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는 여러 명의 고객으로부터 배송될 물량을 허브에 픽업하고, 기사 한 명이 그 여러 개의 물량을 모아서 순회 배송한다.

기사 한 명이 한 번에 배송하는 물건의 숫자가 많아지기 때문에 배송건당 원가는 줄어든다. 이 줄어든 원가를 기반으로 ‘더 저렴한’ 가격을 만든다는 것이 골자다. 물론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는 여러 고객사를 순회 픽업해야 하는 시간으로 인해 ‘일반 직송 퀵서비스’보다 느리다. 돈을 더 내고 빠른 당일배송을 쓸 것이냐, 돈을 덜 내고 느린 당일배송을 쓸 것이냐는 고객에게는 선택의 문제다.

이론적으로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는 택배와 퀵서비스 사이의 ‘속도’와 ‘가격’을 만들 수 있는 틈새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허브앤스포크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하던 업체 중 현재까지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업체는 없었다. 많은 업체가 ‘손익분기점(BEP)’이라는 벽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 중에는 비즈니스 모델 운영 자체를 포기한 업체도 있었다. 그렇게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는 한 때 시장을 달구고, 사라지는 비즈니스 모델이 된 것처럼 보였다.

돈 버는 업체가 나타났다!

그런데 바로 지난달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로 돈을 버는 업체가 나타났다. 물론 이 업체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BEP(손익분기점)를 못 넘겼고, 위험한 고비도 몇 번 넘겼다고 한다. 지금도 이제 막 BEP를 넘긴 수준으로 아직 돈을 벌기보다는, 쓸 일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는 있다. 망한 줄 알았던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가 어떻게든 다시 한 번 시장에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업체의 이름은 체인로지스다. 어떻게 그들은 돈을 벌기 시작했을까. 체인로지스 김동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BEP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유의미한 물량을 확보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체인로지스는 C2C 물량, 그러니까 산발적으로 퀵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반 소비자의 물량을 받지 않았다. 기업물량인 B2C에 집중했다. 여기서 B2C란 매일매일 최소 5개 이상의 물량을 보내는 업체다.

체인로지스는 지난달 기준으로 월 2만5000개의 물량을 처리했는데, 이 구간이 손익분기점이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배송 부문에서 BEP를 넘긴 것이다. 체인로지스 전체로 보면 아직 BEP를 넘기지 못했는데, 다가오는 6월 조금 센 화주사가 들어온다. 6월 목표로 하는 물량은 월 6만개고, 이렇게 된다면 전체 BEP도 무난히 넘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매일매일 5개면 그래도 조금 짜친다. 고객사가 많으면 픽업지가 분산돼 운영 효율이 안 나오는 문제도 있을 것 같다. 효율을 만들기 위해선 충분한 우량 고객사 유입이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량 고객사 확보가 너무 중요하다. 우량 고객사를 규정하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일단 고객사가 다루는 물건의 크기가 작아야 된다. 체인로지스는 세 변의 합이 80cm 이하, 흔히 말하는 소포장을 다루는 화주가 아니면 받지 않는다. 한 오토바이에 최대한 많은 물건을 실어 규모를 만들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두 번째는 단일 업체에서 나오는 물량이 많아야 된다. 그래도 하루 100건 이상은 나오는 업체여야 우리와 단가 협의도 하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여지도 좀 생긴다.

“그 정도 치는 고객사가 많은가?”

현재 체인로지스의 고객사는 약 35개다. 대부분 이커머스 업체들인데, 그 중 6개 정도만 하루 100개 이상의 물량을 출고하는 우량 고객사라고 볼 수 있겠다. 고객사 중에는 매일매일 5개 물량 턱걸이 하는 곳도 있고, 초기부터 체인로지스를 믿고 이용해줘서 하루 5개 물량이 안 나옴에 불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사도 있다. 그래도 요즘 신규로 계약을 하는 업체들은 모두 ‘물량 기준’과 ‘부피 기준’을 적용하여 유입시킨다.

“중요한 질문 하나 한다. 그래서 배송 한 건에 얼마 받는가?”

한 건당 3000~4900원을 받는다. 당연히 물량을 많이 출고하는 고객사일 수록 단가 할인이 들어간다. 업체들 중에서는 ‘정시 픽업’이나 ‘정시 배송’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4900원을 조금 넘어선 단가를 받기도 한다. 그래도 5000원대 초반이라 그렇게 많이 튀진 않는다고 보면 된다.

“그 중 퀵서비스 기사님들에게 지급되는 돈은 얼마인가?”

일단 체인로지스는 일반적인 퀵서비스처럼 퀵서비스 기사에게 건당 단가를 지급하고, 수수료를 공제하지 않는다. 체인로지스 물량만 처리하는 전속기사를 고정급을 지급하며 채용한다. 현재 배송기사는 32명 정도 계시고, 6월에는 38명까지 이 숫자를 늘리는 게 목표다. 한 기사가 하루에 통상 40~50건 이상의 물량을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

체인로지스 물류센터에 보관된 상품들. 이렇게 허브에 모인 상품들을 한 배송기사가 여러 개 들고 순회 배송하여 효율을 만든다고 보면 된다.

“본격적으로 체인로지스 운영 프로세스에 대해 알고 싶다”

체인로지스는 하루 세 번의 마감시간이 있다. 오전 10시, 정오, 오후 4시다. 고객사는 그 시간까지 실시간으로 그들에게 들어온 고객(고객사의 고객, 그러니까 일반 소비자) 주문 데이터를 체인로지스에 전달한다. 이후 체인로지스는 고객사를 순회하며 1시간 이내 방문 픽업을 한다. 픽업은 체인로지스 이륜차 기사들이 가기도 하지만, 많은 물량이 나오는 업체의 경우 별도로 운영하는 2대의 1톤 트럭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픽업한 상품들은 용산 한남동에 있는 체인로지스 물류센터에 집하된다.

체인로지스 물류센터에 미리 재고를 입고시켜 놓고 3PL 업체처럼 운영하는 고객사도 있다. 이륜차 픽업, 사륜차 픽업, 3PL 선입고 물량이 각각 1:1:1 정도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고객사가 주문 마감시간에 맞춰 체인로지스의 용산 한남동 물류센터까지 직접 상품을 입고 시키도 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방법으로 허브센터까지 집하된 상품들을 배송 지역별로 분류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분류된 상품을 32명의 배송기사가 하루 세 번, 3시간 이내 배송하는 구조다. 고객사 입장에선 주문마감 시간 기준 4시간 이내 당일배송을 3000~49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체인로지스는 허브앤스포크 퀵서비스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용어를 ‘정기배송’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세 차례 정해진 시간에 고객사에 방문하여 픽업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배송을 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터지는 수백~수천개의 물량에 맞춰 픽업인력과 배송인력을 조정하고, 지역배분을 하는 역량이 핵심이고, 체인로지스에는 그 노하우가 있다.

픽업된 물량을 배송 지역별로 분배하고, 할당된 배송지의 물량을 챙기고 있는 체인로지스 배송기사들

“어찌됐든 체인로지스의 물류 서비스는 직송 기반의 퀵서비스보다 느리다. 불만을 이야기하는 고객사는 없었나?”

있었다. 불만이라기 보단 우리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다. 사실 우리가 퀵서비스와 같은 요금을 받으면서 배송 속도도 느리면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불만을 이야기 하는 고객사는 체인로지스가 어느 정도의 금액에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몰라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격을 알면 그런 말씀을 안 한다.

“BEP도 넘었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지역 확장이다. 현재 체인로지스의 서비스 지역은 서울전역과 지난달 확대한 안양시, 과천시다. 6월에는 고양시에 들어갈 준비를 끝냈고, 다음 목표는 성남시다. 서울시 외에 체인로지스가 진출하는 지역은 택배 데이터로 충분히 검증된 곳이다. 그러니까 이커머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또 하나 지역 확장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배송효율’이다. 여기서 배송효율이란 같은 면적이라도 많은 잠재고객이 밀집돼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여담이지만 고양시를 먼저 들어가야 하나, 성남시를 먼저 들어가야 하나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었다.

“지역 확장을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배송기사나 허브센터를 늘려야 되나?”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금’이다. 허브는 당분간은 한남동에 있는 물류센터 하나만 이용할 것이다. 사실 허브를 늘리는 동력은 ‘물량’이 돼야 한다. 더 많은 물량이 들어오면 허브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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