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림 작가가 포털 다음에서 ‘노인의 집’이라는 웹툰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은교’ 같은 만화가 아닐까 싶었다. 노인이 사는 집에 들어온 집 없는 10대 소녀라는 설정이 그래 보였다. 읽다 보니 달랐다. 은교에선 소녀가 노인의 욕망이 투사되는 대상이었다면, 노인의 집에서 소녀는 한 마을과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해 나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려진다.

요즘 같은 시대, 누가 공동체의 이야기를 좋아할까 하는 생각은 댓글을 보면 사라진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이런 웹툰이 1위를 했으면 좋겠다, 선함이 세상을 채울 수 있도록.” 노인의 집에 달린 댓글 일부다.

이림은 대중적으로 아주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고정 팬이 꽤 있다. 그가 새 작품을 들고 나타나면, “이림 작가가 돌아왔다”는 환영 댓글이 잇달아 올라온다. 따뜻한 이야기는 잘 안 팔린다는 시대에도, 그의 감수성을 좋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다는 이야기다. 진입이 어렵다는 포털에 벌써 여섯편째 작품을 연재할 수 있는 힘이다.

이림 작가를 만나기 전날, 그의 데뷔작인 ‘죽는남자’를 새벽 세 시까지 완독했다. 그리고 ‘이림 작가는 선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데뷔작인 죽는남자는 물론, 연재 중인 노인의 집까지 그의 작품 전반에는 사람의 선함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 절대 악인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만화 속 인물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 그로 인해 달라지는 인물을 보는 재미, 이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이림이라는 장르’ 아닐까.

천안에 살면서 대학 강의가 없는 날에는 집 앞 도서관에서 온전히 원고만 한다는 이림 작가를, 운 좋게도 지난 10일 오후 홍대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내용을 공개한다.

 

출처=다음웹툰 노인의집 페이지 화면 갈무리

 

만화, ‘노인의 집’이란?

매우 규칙적이고 성실하게 삶을 허비하는 노인 강태신의 집에 가족이 없이 떠돌던 한 아이, 영민이 들어왔다. 두 사람이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다음웹툰에서 절찬 연재 중.

 

이림 작가 캐리커처. 사실은 실물이 더…

 

언제 만화를 시작했나

시스템경영공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공부는 안 했다. 학사경고도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화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반대했다. 공주전문대에 만화예술학과가 처음 생겼고, 거기에 가려 했지만, 아버지가 “네가 4년제만 가면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말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수능 점수 맞춰서 학교에 갔는데 당연히 학과 공부보다는 만화동아리 활동을 더 많이 했다.

만화가가 첫 직업인가

무언가를 좋아해서 더 많이 알게 되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감각이 올 때가 있다. 이전에는 추상적으로 만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전공(공학)을 살리고 싶진 않았다. 게임이나 영화도 좋아해서 게임 공모전에도 작품을 내보기도 했다. 일 년 정도 백수 생활을 하다가 한겨레신문에 들어갔다. 기자는 아니었고, 콘텐츠진흥원과 같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관리했다. 그때가 스물아홉살이었다. 나에게 20대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중, 안 되는 것을 쳐내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웹툰 작가가 되었나

할 수 없는 일을 쳐내다 보니, 안 해본 일이 남았다. 그게 만화였다. 서른이 되기 전에 만화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을 넘기 전에 내 삶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에 있는 아마추어 웹툰 도전 코너, ‘나도 만화가’에 ‘R에 관해서’라는 작품을 올려봤다. 운이 좋게도 사람들이 관심 있게 봐줬다. 반응이 나쁘지 않아 정식 연재를 하고 싶어 다음 웹툰 담당자에 메일을 썼다.

왜 다음을 선택했나?

다음에서 제안이 먼저 왔으면 좋았을 텐데(웃음). 당시 프리챌이라는 사이트에서 R에 관해서를 보고 연재 제안이 왔다. 덥석 물기에는, ‘다음에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좋아했던 작가들이 다음에서 연재하고 있었고. 그걸 핑계로 다음 측에 이야길 했다. “다음에서 연재하고파서 나도 만화가에 작품을 올리고 있는데 다른 사이트에서 제안이 왔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하고 싶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다음에서 새 작품을 기획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데뷔작이 죽는남자가 됐다.

죽는남자를 보면, 이림 작가가 데뷔하게 된 계기가 생각난다. 데드라인으로 두고 해야 할 일을 찾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생각하게 된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시한부 인생’을 소재로 한 작품을 보다가 배신감이 들어서다. 병원 차트가 바뀌었다거나 오진으로 주인공이 죽지 않아 버리면 배반감이 먼저 들더라.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에 관해 관심을 갖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를 가슴 졸이며 봐온 것 아닌가. 그래서 진짜로 죽는 사람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두 번째는, (작품을 그릴) 당시 내 상황이 죽음까지는 아니었지만, 서른이라는 나름의 데드라인을 기획하고 남은 일을 하면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한 것이 투영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글·그림을 혼자 다 했는데

정식 연재가 된 작품으로 글과 그림을 나눠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 측에서 그림 작가와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그랬다.

다음에서 왜 그런 제안을 했을까?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라든가, 그림을 열심히 팠던 사람에 비해서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그림을 그리는 데서 오는 즐거움보다는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나한테 맞았다. 만화를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구로 생각했으므로, 그림이 늘 수가 없었다. 그림 자체를 잘 그리고픈 욕망이 있어야 하는데.

예전에는 웹툰이라는 무대가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고, 기존 출판만화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소년만화나 로맨스 만화 잡지하고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림을 못 그리면 데뷔 자체가 힘들었는데 그때 웹툰은 그림이 서툴더라도 스토리나 이야기가 흥미로우면 상대적으로 데뷔하기 수월했다. 운 좋게 지금까지 나 혼자 글·그림을 해왔다. 지금은 말 그대로 웹툰이 전문화, 세분화되고 시장 자체가 커졌다. 작품의 글·그림 수준이 올라갔다.

노인의 집 그림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청강대 출강을 하다 만난 김종욱 작가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였는데, 다음에서 그림 작가를 구하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그 친구한테 넌지시 이야기했더니,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함께 준비했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림 작가가 잘한다. 의사소통이 힘들진 않다. 나는 드라마를 하면서 대사와 표정톤이 미묘하게 다른 차이를 즐기는 걸  좋아한다. 액션과 말이 일치하는 소년만화와는 조금 다르다. 말을 맞추는 과정이 있었는데 네다섯달 지나니까 “저놈이 뭘 좋아하는구나” 아는 것 같았다. 그 후로는 수정이 많이 없었다. 김종욱 작가는 힘이 있는 소년 만화 스타일의 작품을 하고 싶어 했고 그림도 그렇게 그려왔는데, 노인의 집은 그림 작가한테는 극도로 심심한 구도와 드라마일 수 있다. 본인 취향이 아닌데  내가 미안하다.

여기서 잠깐, 노인의 집 그림을 담당하는 김종욱 작가 미니 인터뷰

김종욱 작가

김종욱 작가님이 보시는 노인의 집은 어떤 만화인가요?

말 그대로 ‘남녀노소 힐링 성장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안에서는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아파하고 그걸 극복합니다. 하나의 집에서 시작된 감동적인 이야기는 학교로, 마을로 퍼져나가고 있지요. 주머니 속 손난로처럼 뜨겁진 않아도 아주 가까이 느껴지는 따뜻하고 포근한 만화입니다.

소년만화를 그리시는데, 드라마를 그리시면서 힘든 일은 없으셨는지요?

여러 인간상의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내는 이림 작가님의 스토리를 그릴 수 있어서 참 많은 공부가 됩니다. 사실 제가 본 작품의 그림을 맡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도전에 가까웠습니다. 액션 만화와 소년만화류를 좋아하고 그려오던 저에게 로맨스나 드라마는 마치 손대지 않는 편식 메뉴 같은 것이었죠. 미묘하고 정적이면서 확실히 전달되어야 하는 감정선을 표현한다는 게 꽤 어려운 일입니다. 오히려 선 굵고 속도감 있는 액션이 표현하기 쉬 운편이죠. 지금까지 1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노인의 집을 그려오면서 작품 내의 캐릭터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저 또한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작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이림 작가님의 멋진 스토리와 다음웹툰에서 좋은 기회를 얻어 분에 넘치는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직 노인의 집이 나아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야기가 점점 진지해지고 중요해 지고 있는 만큼, 저도 그림 작가로 이림 작가님이 바라는 모습 이상으로 200% 만족하실만한 멋진 원고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겠습니다. 미래의 일보다는 눈앞의 마감이 항상 중요하다 보니 차기 계획을 세우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뚜렷한 계획이랄 건 없지만 본 작품이 잘 마무리되고 나면 역시 어렸을 적부터 하고 싶었던 소년만화를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연재작인 노인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주인공 중 하나인 ‘영민’이는 가족 없이 홀로 떠도는 소녀로 설정됐다. 그렇게 만든 이유가 있나?

이 이야기는 원래 아무런 상관도 없는 타인, 나이로든 성별로든 지역적으로든 아무런 연고도 관심도 없을 것 같은 둘의 만남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되느냐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고립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살핌을 잘 받는 아이도 있지만, 길에서 생활하는 아이도 분명히 많다. 그런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다. 그게 국가 차원에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처음 만화를 구상할 때 기획서에 ‘아이를 한 명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격언을 적었었다. 이 작품을 할 때 새겨둔 문장 중 하나였다. 더 나아가서 ‘한 명의 어른을 보살피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까지 가고 싶었다.

죽는남자도 그렇고 노인의 집도, 관계에 의해 바뀌어 가는 인물이 계속해 등장한다

관계라는 게 나한테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소재다. 아버지가 팔남매 중에 장남이었다. 대가족 집안에서 자랐고, 당연히 어머니는 많이 힘들어하셨다. 어머니가 결혼했을 때 막내 시동생이 중학생이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젓게 된다. 절레절레

어릴 때 부모님이 바쁘셔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부모님이랑 오래 같이 한 기억이 별로 없다. 낮에는 외할아버지댁에 가 있었고, 학교 들어가고 나서는 결혼 안 한 고모랑 살았다. 당연히 힘든 것도 있었지만 대가족 아래에서 많은 친척하고 살다 보니 거기서 오는 충만한 즐거움이 있었다. 얼마 전 강릉에 있는 집안 작은어머니 펜션에 온 가족이 놀러 갔는데, 부모님과 내 또래, 그리고 아이들까지 30명이 되더라.

한 마을이 움직인 것 같다

그걸 보고 있으면 힘든 것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과 행복이 있었다는 걸 느낀다. 관계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건 누굴 만나건 간에 거기서 오는 소중함이라는 가치가 있다. 홀로 사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의 능력으로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사회에서 불가능하다. 기왕이면 관계를 통해 윈윈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만화 중 영민이라는 캐릭터가 “어른만 책임을 지게 해서는 안 돼”라는 말을 한다. 관계나 보살핌이라는 것이 한쪽의 책임이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보다 어린아이를 보살피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고령 노인에 대한 배려는 없는 것 같다. 공동체에 대한 가치가 긍정적이어야 한다. 아이나 노인을 보살피는 것은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좋은 공동체란 무엇인가를 상정한게 소월리(만화 속 동네 이름)다. 좋은 공동체가 지역 개발이든 어떤 이유든 간에 해체되는 게 많다. 그것에 대한 메시지다.

 

좋은 공동체라는 건?

이웃이 누구인지 아는 공동체.

이웃이 누군지 안다는 건 괴로운 일이기도 하지 않나?

맞다. 공동체에는 갈등도 있을 수 있다. 노인의 집에는 어쩌면 공동체에 대한 긍정적 설정만 있기도 하다. 좋은 공동체라는 것은 소규모다.  ‘강태신’ 이라는 할아버지는 이 소규모 공동체의 정신적 주축이 되는 인물이다. 좋은 공동체 안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말이 있고 믿음이 존재한다. 그 사람은 나름의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다. 공동의 선에 관해 이야기하고, 의심과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거기 있어야 한다.

대안 가족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거창한데. 가족의 형태에 대한 고민은 (사회에서, 또는 미디어에서) 오랜 시간 해온 것이다.  이 작품은 대안 가족을 제안한다기보다, 그냥 이 땅에서 공동체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봐야 할 것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던 거다. 그 가상의 무대가 소월리고.

‘관계로 변하는 삶’이라는 기본적인 주제는 같지만, 데뷔작보다 노인의 집이 훨씬 더 관계와 삶에 대해 성숙해진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강태신이 노인이라서 오는 현명함을 표현한 것도 있다. 나 스스로가 사람을 보는 게 관대해졌냐고 물어보면? 관대라는 단어가 베푸는 느낌이 있어서 별로인 것 같긴 한데, 사람을 만나는 시야가 넓어진 건 있겠지. 나 스스로 경계를 하는 것 중 하나가 세 번 만나기 전엔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다.

“제가 되고 싶은 어른의 태도를 배울 수 있다”는 댓글이 인상 깊었다. 이게 만화가 주고 싶었던 메시지 중 하나이기도 한가?

중요한 메시지였다. 강태신이라는 인물을 그릴 때 내가 되고 싶은 ‘워너비’가 많이 투입됐다. 현명하게 늙고 싶다는 내 바람을 담았다. 사실은 강태신은 이상적인 인물이다. 현실에 있었으면 좋겠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다. 나도 현실에서 실수나 잘못하는 게 많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있으니까, 우리나라 평균 수명을 여든살 이상으로 본다면 그때까지 도달하고픈 경지다.

 

김종욱 작가가 그린 이림 작가. 확실히 미화됐… 아.. 아닙니다.

 

주인공인 강태신에게서 현명함 외에 더 배우고픈 점이 있다면?

욕망에 대해서 초연한 것.

사람이 욕망에 초연할 수 있다고 보나?

그럴 수 없으니 이상형이라는 거지. 초연하다기보다는, 자기가 공고히 지켜온 것에 대한 프라이드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상대편의 말도 잘 듣지 않나? 그 사람이 가진 삶에 대한 태도가 ‘리스너(청자)’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주인공의 태도가 어떻게 보면 너무 원리 원칙적으로 보여 답답하기도 하다

삶에는 다양한 재미가 있다는 걸 강태신에 알려주는 것이 영민이의 역할이다.

만화에서 관계나 공동체를 말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의 행복도 강조한다. 예컨대 마을 땅을 팔라는 개발사의 압력에 공동체가 같이 버티다가, 자식들의 설득 때문에 먼저 땅을 판 사슴농장 주인에게 강태신은 “가신 곳에서 행복하셔야 한다”고 말한다.

관계에 대한 것도 관심 가는 소재지만, 어떻게 죽으면 만족스러울까에도 그만큼 관심이 간다. 마무리가 어때야 자기 삶이 만족스러울까, 말이다. 그게 행복이라면 행복일 텐데 각자가 다를 거다. 죽는남자에서 주인공 강서영이라는 캐릭터는 시한부라는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결하려고 바쁘게 동분서주했던 사람이라면, 강태신은 충분히 산 사람이 무엇을 남겨야 행복할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주제다.

노인의 집 반응은 어떤가?

예상보단 적어서 그림 작가한테 미안하다.

인기를 얻으려면 확실한 악역이 있는 게 낫지 않나?

악역이 있긴 하다. (극 중에서) 목사가 악역으로 나오긴 한다. 그런데 악역을 부각해서 갈등을 첨예하게 만들기보다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보이는 일상의 따뜻함이 훨씬 중요하다. 그걸 보여주는 쪽으로 맞췄더니 스토리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망한 것은 아닌데 기대치보다는(웃음). 원래 기대치는 높을수록 좋지 않나? 이런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극적인 요소가 없으면 인기에도 영향을 미칠 텐데

그런 것을 잘했으면 좋겠다(웃음).

그동안 그려온 만화에 대한 평가가 ‘착하다, 선하다’가 많은 것 같다.

개인적인 기질인데 악인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캐릭터가 욕을 먹는 것이 싫어서인가?

아니다. 단선적으로 악한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만들기는 쉽다. 그런데 나는 자꾸 그 캐릭터가 그렇게 나쁘게 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관계에 대한 스토리를 짜다 보니까 개과천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악을 세게 만들어서 선을 가치 있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착한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그리는 게 아닌가!

드라마 장르에 관심이 있지만, 피와 살이 튀는 누아르도 좋아한다. 하드보일드 좋아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스토리도 쓰고 싶고. ‘하윤의 죄’라는 작품이 그랬다. 그런데 이것도 막상 해보니까, 악역을 만들어 놓고 마음에 안 들더라. 악역을 좋아하는데, 다크나이트 ‘조커’ 같은 캐릭터가 좋다. 조커처럼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을 만한 자기 신념이 공고히 갖춰진 악역은 좋다. 표면적 악역이라거나 주인공을 괴롭히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되는 악역은 싫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는 그만하고 싶다. 지금 준비 중인 것이 있다면 바텐더 이야기다.

본인이 술을 좋아해서인가?

그런 것도 있고. 바텐더와 칵테일 관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준비 중이다. SF도 하고 싶다. 생각해놓은 게 있는데 언제 할지는 모르겠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하고 싶다.

본인이 늦게 작가를 시작했는데, 혹시라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픈 조언이 있나? 

한겨레신문을 그만두고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뭔가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할 때 내가 이 일을 하면 얼마의 돈이 생기는가가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중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그 사람한텐 행복일 거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할까 결심할 때 돈이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도 그 일을 하면 많든 적든 그 뒤에서 돈이 쫓아오긴 한다. 만화가 내게 그랬다. 그때는 고료가 정말 적었지만, 그 경험을 하는 게 내게 중요했다.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을 때, 나이든 수입에 대한 걱정이든 삶에 대한 변화든 간에 그 모든 게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 모든 걱정이 하고픈 일보다 뒤에 있을 때는 그 일을 하는게 중요하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