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메프는 쿠팡의 ‘정기배송’을 뺏고 싶다
위메프는 쿠팡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자사 홍보 목적으로 쓰는 보도자료에 남의 회사 이름을 잔뜩 넣어줄 이유가 없다.
위메프는 지난달 30일 ‘최저가 보상제’를 선언했다. 위메프에서 판매하는 식품·생활·유아동 등 생활필수품(이하 생필품)이 경쟁 이커머스업체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면, 고객에게 차액의 100%를 위메프 포인트로 보상(배송비·할인쿠폰 적용 후 기준)해준다는 것이다.
위메프가 예외규정을 둔 업체가 있었으니, 쿠팡이다. 만약 위메프에서 쿠팡보다 비싸게 팔고 있는 생필품이 발견되면 위메프는 차액의 200%를 포인트로 보상한다. 무려 다른 업체에 비해 두 배나 큰 보상액이다. 이 무슨 자신감인가. 위메프는 “특히 생필품 카테고리에서 쿠팡과 진검승부를 펼칠 것”이라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위메프의 쿠팡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위메프는 8일 식품 카테고리에서 쿠팡과 가격을 직접 비교한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위메프의 조사에 따르면 위메프 식품 카테고리 매출 1~50위 상품 가운데 74%인 37개가 쿠팡보다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메프에 따르면 동조사에서 쿠팡은 판매가에 배송비를 포함하지 않았고, 위메프는 배송비를 포함시키는 불리한 조건을 적용했음을 강조했다.
위메프 관계자는 “우리가 쿠팡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쿠팡이 가장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쿠팡은 예전부터 생필품 판매에 강한 업체였고, 쿠팡이 잘하고 있는 배송부문에 대한 투자나 노하우를 위메프가 따라가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위메프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가격’에서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 설명했다.
쿠팡은 위메프의 정면 조준 마케팅에 별달리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이 타사의 가격 관련 마케팅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는 그 품목들을 어디선가 만났다
위메프가 쿠팡에 승부수를 던진 카테고리는 ‘식품’과 ‘생활용품’, ‘유아동품’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이 상품 카테고리는 쿠팡이 초기 로켓배송을 통해 선점한 상품군으로 평가된다. 모두 소비자의 ‘반복구매’가 일어나는 상품 카테고리고, 이커머스 업체 입장에서 해당 카테고리는 ‘충성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전장이 된다. 우리는 로켓배송 초기 잘생긴 쿠팡맨 한 번 보겠다고, 감성 배송 한 번 느껴보겠다고, 쿠팡 주문을 고집하던 맘카페 회원들을 기억한다.
물론 현재의 로켓배송은 500만개 이상의 SKU(Stock Keeping Units)를 다루는, 그러니까 카테고리 측면에서는 1억3000만개 이상의 SKU가 있다는 마켓플레이스(아이템마켓)와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 구색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쿠팡의 초기 로켓배송 품목 DNA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품목들을 그대로 이전해서 ‘정기배송’ 카테고리가 생겼다.
위메프가 굳이 ‘식품’과 ‘생활용품’, ‘유아동품’ 카테고리를 찍어서 쿠팡과 정면 승부를 보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쿠팡이 잘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반복구매 카테고리의 고객을 위메프로 끌어당기기 위함이다. 궁극적으로 그렇게 끌어당긴 고객을 위메프가 ‘잘한다고 판단하는 영역’까지 유도할 수 있다면 위메프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겠다.
위메프가 잘한다고 내세우는 것이 무엇이냐면 ‘특가’다. 특정 시간에 한정된 수량을 비정상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예를 들어서 배달의민족 2만원권 쿠폰을 100원에 판다던가 하는 식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메프에 방문하는 고객들은 체류시간이 길다. 특별한 상품을 사고자 하는 목적으로 위메프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둘러보면서 저렴한 가격의 어떤 상품을 사려고 하는 소비자들이 모이는 것이다. 위메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비자의 이런 행태를 ‘발견형 쇼핑’이라고 한다.
위메프 관계자는 “식품, 생활용품, 유아동품은 고객들이 가장 많이 사는 반복구매 품목”이라며 “마케팅을 통해 반복구매 상품을 구매할 목적으로 위메프에 방문한 고객들을 위메프가 잘하는 ‘발견형 쇼핑’을 하는 고객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가능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로켓배송 품목의 영역을 전면으로 침공 당한 쿠팡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 쿠팡은 공식적으로는 크게 개의치 않고 제 갈길 가겠다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여기부턴 기자의 추론을 더한다. 앞서 초기 로켓배송 품목이 ‘정기배송’ 품목으로 이전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에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정기배송 품목 곳곳에 숨어있는 ‘탐사’라는 이름이 붙은 상품들이다.
탐사는 쿠팡이 2017년 론칭한 PB(Private Brand) 상품이다. 쿠팡이 외부 제조업체(공장)와 협력하여 만든 자체 브랜드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외부 공급업체(제조, 유통, 브랜드업체)’의 상품을 매입하여 판매하는 것이라면, 탐사는 쿠팡이 공장과 협력하여 직접 개발한 상품이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쿠팡과 공장 사이에 있던 중간유통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중간 유통상이 사라졌기 때문에 탐사 브랜드만의 ‘가격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 이마트가 판매하는 ‘피코크’나 ‘노브랜드’가 탐사와 같은 개념이다.
탐사 브랜드를 달고 있는 상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렇다. 고양이모래, 반려동물 사료, 강아지패드, 생수, 탄산수, 종이컵, 복사용지, 화장지, 미용티슈, 황사 마스크 등. 이 상품들의 특성이 한 눈에 보이는가. 모두 ‘반복구매’가 일어나는 상품이다.
쿠팡 관계자에 따르면 이렇게 판매되는 탐사 브랜드 상품은 10여개다. 아직까지 숫자는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 영향력을 만들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지금 바로 쿠팡에 탐사 브랜드가 포함된 상품 카테고리명을 검색해보자. 예를 들어서 고양이모래와 생수, 복사용지를 쿠팡 검색창에 쳐보자.
많은 검색 결과에서 카테고리 1위를 탐사 브랜드 상품이 차지한 것을 볼 수 있다. 쿠팡의 리스팅 알고리즘이 ‘고객’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탐사 브랜드는 이미 충분히 고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쿠팡 안에서 같은 카테고리를 판매하고 있는 공급자와 셀러들을 제치고 말이다.
탐사의 공포
어쩌면 쿠팡의 탐사와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상품을 팔고 있는 공급자들은 조금 쫄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 판매채널을 제공하는 파트너였던 쿠팡이 어느새 그들 바로 옆에서 ‘경쟁자’로 같은 카테고리의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쿠팡은 1억3000만개의 SKU를 판매한다는 마켓플레이스 셀러들의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무슨 상품이 잘 팔리고, 안 팔리고, 고객의 반복구매를 만드는지 명명백백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자기 상품 판매 데이터만 보이는 일반 공급자 입장에서는 무서운 경쟁자가 된다. 특히 소비자의 구매결정에 있어 ‘브랜드’가 크게 작용하지 않는 품목을 판매하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판매하는 공급자라면, 그 공포심은 더 커질 수 있겠다.
그래서 검색을 한 번 해봤다. 쿠팡의 검색 리스팅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탐사 브랜드 상품과 위메프에서 팔리고 있는 같은 카테고리의 상품 사이의 가격 비교를 해봤다. 정말 쿠팡이 더 저렴하다면 쿠팡의 PB는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위메프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 검색 결과는 아래에 있다. 다행히 위메프는 아직까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쿠팡도 아직은 할 게 많아 보인다.
아, 혹시나 해서 붙이는 말인데 아마존도 PB 만든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