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의 종이포장이 ‘단가’와 ‘신선’을 만드는 방법

신선식품 이커머스가 떠오른다. 신선식품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과 함께 떠오르는 이슈가 ‘신선포장’이다. 배송차량까지 냉장냉동 설비를 갖추지 않은 신선식품 이커머스가 많은 상황에서 ‘포장’은 고객 문 앞까지 신선을 지키는 최종 보루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신선식품 이커머스 업체들은 EPS(발포폴리스티렌, aka. 스티로폼) 박스에 냉매(아이스팩)를 함께 넣는 방식으로 신선식품을 포장한다. EPS 박스가 많이 쓰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타 신선식품 포장재에 비해 단가가 싸고, 상대적으로 보냉력도 우수하기 때문이다.

쿠팡에서 삼겹살 한 팩을 주문해봤다. EPS박스(스티로폼박스)에 삼겹살과 아이스팩, 드라이아이스가 함께 담겨 배송왔다.

마켓컬리는 종이포장?

그런데 신선식품 포장에 EPS 박스를 쓰지 않는 업체도 있다. 이 업체는 우리가 흔히 일반상품을 받을 때 쓰는 것 같은 ‘종이박스’를 포장재로 사용한다. 마켓컬리다. 마켓컬리는 2017년 4월 신선식품 포장을 위한 종이박스인 ‘에코박스 V1’을 새벽배송(샛별배송) 지역에 한해 도입했다. 그 외 택배로 배송하는 지역은 일반 EPS 박스로 포장한다. 최근인 지난 1월 29일에는 에코박스 V2 도입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켓컬리가 새롭게 도입한 에코박스 V2. 겉 보기에는 그냥 일반 택배포장용 종이박스처럼 생겼다.

마켓컬리가 도입한 ‘종이박스’는 흔히 사용되는 EPS 포장에 비해 단가가 높고, 보냉력이 약하다고 평가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켓컬리가 종이포장을 도입한 이유는 EPS 박스 분리배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고객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EPS 박스는 종이박스 대비 부피가 크고, 접어서 보관하지 못해서 분리배출 전에 집안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크다. 분리배출을 하려고 해도 주거단지에 따라 재활용 업체가 EPS박스 수거를 거부하는 곳도 있었다. 더 넓게 보자면 EPS 박스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기도 했다. 대전광역시가 공개한 재활용품배출안내에 따르면 종이박스가 썩는데 걸리는 시간은 2~5년이나, 스티로폼이 분해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500년 이상으로 알려졌다.

스티로폼 박스보다 비싼거 아니야?

초기 마켓컬리는 EPS 박스 대비 높은 단가와 낮은 보냉력을 감수하고 ‘에코박스 V1’을 도입했다. 하지만 ‘에코박스 V2’에 와서는 종이박스가 오히려 EPS 박스 대비 단가 경쟁력이 생겼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마켓컬리 에코박스 V1의 모습. 보냉용 비닐이 달려있는 게 보인다. 예뻐보이지만, 고객 입장에선 쓰레기 처리가 더 번거로워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마켓컬리 에코박스 V2에는 이 보냉용 비닐이 없어지고, 내부 방수코팅이 추가됐다.

대표적인 비용절감 방법론은 공정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 마켓컬리의 에코박스 V1은 종이박스에 비닐(PE, 폴리에틸렌) 코팅을 하는 방식으로 ‘결로 현상(신선식품과 냉매가 들어있는 박스내부와 외부의 온도차로 포장박스가 젖거나 무너지는 현상)’을 막았다. 하지만 이 방식은 고객이 분리배출을 할 때 비닐과 종이를 따로 분해해서 배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제조업체 입장에선 두 개의 소재를 결합하는 공정이 추가되는 만큼 단가도 비쌌는데, 에코박스 V2에서는 V1의 이중소재를 100% 재생지 소재만 사용하여 제작하는 것으로 개선해서 비용을 절감했다. 종이 단일 소재를 사용한 만큼 결로현상을 막기 위한 내부 방수코팅이 따로 추가됐다.

마켓컬리와 에코박스 V2를 공동개발한 콜드체인솔루션 R&D기업 쓰리에스테크 윤선욱 본부장은 “현재 에코박스 V2는 동일 사이즈의 EPS 박스 대비 30~40% 가까이 저렴하다”며 “에코박스 개발 초기 단가에 녹아있었던 R&D 비용이 해소됐고, 마켓컬리 물량이 워낙에 많이 나와서 규모에 따른 할인이 들어가기도 해서 단가 경쟁력이 생긴 것”이라 말했다.

‘신선함’을 만드는 종이가 되기 위해선

기존 EPS 박스 대비 종이박스의 한계로 거론됐던 ‘보냉력’도 보강됐다. 쓰리에스테크에 따르면 종이박스의 면과 면이 만나는 부분을 최소화하는 ‘히트브리지 저감구조’와 ‘이중 공기층 단열구조’를 통해 박스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온도를 최소화했다. 객관적인 기준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공인 검사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을 통해 에코박스의 온도 테스트를 진행했고,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종이 단일소재만으로 신선식품 배송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마켓컬리가 내세우는 20여개의 까다로운 배송조건을 만족시켰다는 게 쓰리에스테크측의 설명이다.

윤 본부장은 “단순비교하면 종이박스가 EPS 박스보다 보냉력이 약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하지만 종이박스가 타겟팅하는 고객군은 통상 6~7시간 안에 물류센터 출고부터 배송까지 끝내야 하는 ‘새벽배송’에 한정돼 있다. 짧은 시간, 근거리 식품 배송의 신선 온도 유지는 충족시킬 수 있도록 개발했다”고 밝혔다.

에코박스 V2에서는 기존 종이박스 신선식품 포장의 단점으로 꼽히던 ‘분진’과 ‘누린내’ 문제도 해결했다. 쓰리에스테크에 따르면 기존 종이박스는 빠른 대량생산을 위해 박스가 접히는 면과 면을 ‘톱날’로 갈아서 잘라낸다. 이 과정에서 분진이 나오는데 신선식품을 포장하는 박스의 제작 방식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윤 본부장은 “에코박스 V2는 기존 톱날 방식을 박스면을 눌러서 뽑아내는 톰슨 방식으로 변경해서 분진이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했다”고 밝혔다.

기존 종이박스를 건조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하면 박스에서 누린내(물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도 고객 클레임을 유발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신선식품을 포장한 박스에서 누린내가 난다면 좋아할 고객이 있을 리가 없었다. 윤 본부장은 “에코박스 V2에는 누린내를 막기 위해 박스제작에 ‘건조공정’을 포함시켰다”며 “냄새가 날 여지를 원천 차단한 것”이라 설명했다.

한편, 쓰리에스테크는 마켓컬리 외에도 ‘GS프레시’, ‘롯데슈퍼’ 등 5개 고객사에 신선식품 포장을 위한 종이박스를 공급하고 있다. 현재 쓰리에스테크가 공급하고 있는 종이박스에 한계가 있다면 ‘냉동식품’까지 신선을 유지하며 배송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윤 본부장은 “현재 냉동식품까지 에코박스로 포장할 수는 없지만, 장차 실현이 불가능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궁극적으로는 냉동식품에 사용되는 EPS 포장까지 종이박스로 포장 가능하도록 기술개발 하는 것이 쓰리에스테크가 나아갈 방향성”이라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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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어렵고 귀찮지만, 환경까지 생각하는 마켓컬리와 그런 노력에 관심을 기울이는 엄지용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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