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인식 부적응자의 생존기
기자는 생체인식 부적응자다. 모든 생체인식이 거부된다. 거기다 게으르기까지 하다.
생체인식이 등장하기 이전, 안드로이드에서는 패턴을 쓰고 아이폰에서는 핀 코드를 쓰는 시절 기자는 어떤 핸드폰을 써도 비밀번호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남의 손에-그것이 가족과 애인이라고 해도- 폰을 넘겨주는 일이 없었다.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숨길만 한 일이 없어도 남의 핸드폰은 보면 안 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면 이런 말이 돌아온다.
“우리가 남이야?”
그러나 아이폰5s에서 터치ID가 등장하자 비밀번호를 걸기 시작했다. 별다른 행동을 할 필요 없이 홈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됐다. 여러 손가락을 등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기자는 만성습진이 있다. 건조한 계절이 되면 손가락 쪽 피부가 자주 벗겨진다. 땀이 많은 편이 아니라 무좀으로 발전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어릴 적엔 유사과학으로 인해 세균이 사라진다며 손과 발을 가끔 아주 묽게 희석한 빙초산 물에 담그고 있기도 했다. 하마터면 지문을 영원히 잃을 뻔했다.
하여튼 기자는 한 계절만 지나면 지문을 쓸 수 없다. 지문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지문을 둘러싼 주름이 겨울에는 늘어나고 또 이게 매번 달라진다. 그래서 작년 여름에 등록한 지문은 올해 여름에도 쓸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겨울에 등록한 지문은 올 여름이나 겨울 모두에 쓸 수 없다.
문제는 폰이 아니다. 3개월 정도에 한 번씩 지문을 갱신해주면 그만이다. 진짜 문제는 관공서다. 주민센터에서 지문인식기를 도입한 뒤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그 지문은 이미 나의 지문이 아니다. 관공서에서 신변과 관련 있는 각종 서류를 떼려면 지문인식을 꼭 해야 한다. 관공서 지문인식기의 방식은 아이폰과 다르다. 관공서 지문인식기는 광학식이다. 바코드 리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점이라면, 완전 무인화가 불가능하다. 기자의 손가락을 잘라서 인식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직원이 있는 곳에서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것이 좋다. 무인 민원 기기의 맹점이나 국내 무인 기기들이 주로 공개된 장소에 있으므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부적응자는 관공서에서 서류를 뗄 때마다 본인인증을 위한 추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기자는 법을 어기거나 경찰서에 끌려가거나, 음주 상태에서 운전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인데 가끔 취조를 받는 느낌이 든다. 공무원분들도 특별히 잘못한 건 없는데 당황스러워한다. 그래서 기자는 여전히 인적사항과 관련된 서류를 뗄 때 시커먼 인주를 묻히고 도장을 찍으며 전자문서를 사용하지 못하고 종이를 낭비한다.
공항에서 자동출입국 심사를 할 때도 문제였다. 자동출입국 심사기는 여권 스캔-손가락과 얼굴 촬영을 동시에 진행한다. 이때 손가락이 인식되지 않는다. 한 번 출국을 하려면 거의 3-4번은 꼭 다시 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얼굴 인식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는지 1-2번으로 줄긴 했다. 그러나 한 번 만에 통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국에 입국할 때도 곤란할 때가 있다. ESTA로 비자를 받아도 미국에선 지문을 찍는다. 미국령 사이판에 입국했다 지문을 찍으며 온몸으로 설명한 적도 있다. 다행히 사이판 법무부 직원들은 한국말을 그럭저럭한다.
그래서 갤럭시에서 처음 얼굴인식이 나왔을 때, 기쁜 마음에 달려가서 체험해봤다. 그러나 얼굴인식은 2D 방식이다. 따라서 내 얼굴을 출력해서 보여줘도 잠금 해제가 된다. 편하긴 하지만 보안 유지 수단으로 그렇게 좋지는 않다. 그러다 갤럭시에서 홍채인식이 등장했다. 보안적으로도 뛰어났다. 그러나 핸드폰 특정 위치와 눈을 마주쳐야 했다. 핸드폰 잠금을 해제할 때마다 눈을 부릅뜨며 폰을 바라봐야 했다. 불편하다.
그래서 계속 울면서 후면에 있는 지문 센서를 쓰거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과거의 갤럭시는 하단에 지문인식 겸 홈버튼이 있었는데 최근엔 그마저도 후면으로 가버렸다. 기자는 손이 작아서 후면 센서 입력이 불편하다. 한 손만으로는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냥 비밀번호 입력이 더 편하다. 기자가 그렇다면 기자와 손 크기가 비슷한 사람(주로 여성)들도 불편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갤럭시 일부 모델이나 소니폰들처럼 측면에 지문인식 센서를 넣은 사례가 있는데 고급 모델에선 이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페이스ID 혹은 3D 안면인식들이 등장하고 나서는 이 모든 불편이 사라졌다. 최초 등록 이후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인식률이 좋고 앱 도입 속도들도 빨라서, 페이스ID를 한 번 사용하면 모든 인증이 페이스ID에 맞춰지게 된다. 모든 뱅킹 앱도 다 페이스ID에 맞췄다. 이제 내 삶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한국은 먼지 천국이 되었다.
초미세먼지의 지름은 2.5㎛다. 마이크로미터는 10-6m 다. 1mm보다 1000배나 작다는 뜻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성분 대부분이 중금속이다. 따라서 금속을 그냥 마시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한다. 이 정도 수준의 미세먼지를 거르려면 N95, KF94 규격의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페이스ID를 사용할 수 없다.
페이스ID에서 핀 코드 입력으로 전환되는 속도는 아직 그렇게 빠르지 않다. 따라서 비밀번호도 기다렸다 입력해야 한다. 미세먼지 폭탄을 맞은 날에는 아이폰5 시절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즉, 한국과 중국에서는 신형 아이폰은 어떤 기준으로는 점점 불편한 폰이 되고 있다.
결국 해결법은 온 스크린 지문인식이 아닐까 싶다. 전면지문인식으로 부르는 방법으로, 스크린에서 지문인식을 하는 방법이다. 이미 중국의 비보에 의해 출시돼 있으며, 갤럭시S10에 전면 지문 인식이 유력하다는 설이 있다. 애플 역시 한국은 무시해도 중국은 무시할 수는 없으니 또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을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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