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19] 삼성전자의 쉬어가는 해
삼성전자의 이번 키노트 주인공은 폴더블 폰도, 갤럭시 S10도 아니었다. 빅스비다.
우선 삼성전자가 매년 CES에서 업데이트하는 스마트 TV에 대해 알아보자. 이제 삼성 TV는 8K 해상도를 지원하는 QLED이며, 98인치 제품까지 시연했다. 현장에서 본 느낌은 이렇다. 무대와 기자가 있는 관객석의 거리가 50m는 됐다. 그런데 무려 화면의 작은 글자들이 보인다. 물론 해당 TV가 8K라고 해도 화면 크기가 워낙 크므로 화소 밀도는 스마트폰 대비 높지 않다. 그러나 TV는 시청 거리 개념이 존재하므로 화소 밀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TV를 틀어놓고 다른 제품을 시연할 때는 TV를 벽보처럼 사용하기 위해 그림을 틀어놓았는데, 다른 제품에 집중하자 실제로 TV가 TV임을 가끔씩 잊어버릴 정도다.
이외의 경험들은 대부분 음성비서 서비스 빅스비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피커에 어떤 영상을 볼지 말하는 것을 넘어, “어제 본 거랑 비슷한 거 찾아줘” 등의 명령을 수행한다. 개별 앱을 불러낼 수도 있으며 어제 발표된 것처럼 아이튠즈에 있는 영상을 찾아볼 수도 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역시 지원하는데, 이때는 삼성전자가 직접 만든 AI 코덱을 사용해 영상을 보는 데 사용한다. 코덱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마존과 삼성전자가 영상 전송(아마존)-수신(삼성 스마트 TV)에 대한 약속을 표준이 아닌 별도로 합의했다는 의미다.
빅스비는 다른 삼성 제품을 제어하는 데도 쓰인다. 냉장고, 세탁기 등이다. 현장에서 “청바지 세탁은 얼마나 하는 게 좋아?” 등의 질문을 시연했는데, 기능 설명으로는 좋지만 삼성전자 임직원 여러분은 왜 이렇게 못하는 연기를 자꾸 시도하는지 궁금하다.
AI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AI 직접 구축보다는 온디바이스 AI(스마트폰처럼 기기가 자체적으로 딥러닝을 수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 클라우드에서 수행해서 보내주는 클라우드 AI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시대가 올 것임을 예상해 자율주행차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와, 차량용 딥러닝에 적합한 ‘아이소셀 오토’를 공개했다. 퀄컴도 비슷한 칩을 만들고 있으므로 당분간은 자율주행차용 칩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별도로 공기청정기 ‘삼성봇 에어’, 음식점용 서버 자율주행 로봇 ‘삼성봇 리테일’도 공개했다. 이 제품들은 다른 제품들의 시연이 끝난 후 ‘원모어띵’ 차례에서 등장했다. 모두가 폴더블 폰을 기대했으나 이 로봇들이 등장해 행사장은 차게 식었다. ‘원모어띵’은 애플이 주로 키노트에서 하는 제스처로, 키노트가 끝난 후 가장 예상외의 깜짝 제품을 공개하는 데 주로 쓰는 방식이다. 그런데 관객의 반응이 별로 없어서 삼성전자 임직원이 깜짝 놀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로봇들은 LG의 클로이처럼 동그란 화면에 특수문자 같은 느낌으로 얼굴을 나타내는 UI를 탑재하고 있다. 이는 해외 스타트업이 먼저 발표한 가정용 IP 카메라 뮤지오(MUJIO)와 아이로봇(iRobot)의 UI로, 그걸 LG가 베끼고 삼성이 또 베낀 것이다. 삼성봇의 이름을 달고는 있지만 앞의 두 짝퉁 제품과는 달리 다리를 다친 사람의 재활을 도와주는 GEMS와 같은 제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비슷한 제품을 토요타가 먼저 발표해 행사장은 역시 또 차갑게 식었다.
올해 삼성전자의 키노트는 혁신을 무리하게 밀어부치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한해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항상 잘하던 TV를 업그레이드하고, 자사의 특기인 칩셋을 착실하게 준비했으며, 아무도 안 쓸 것 같은 빅스비 역시 열심히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빅스비를 아무도 안 쓰는 이유는 빅스비 기능 부족보다는 알렉사와 구글 홈이 워낙 미국에서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갤럭시 폰이 없다면 빅스비를 쓰기 위해 스피커를 또 사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즉, 배타적인 플랫폼이므로 구글 어시스턴트+LG 가전의 조합에 밀릴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삼성전자는 화려한 B2C 제품 일부를 MWC로 넘기고, 안정과 내실을 위한 비교적 조용한 발표를 어색한 연기를 통해 마쳤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