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필먼트(Fulfillment)가 뜬다고 한다. IT가 강한 이커머스기업이라 평가받는 쿠팡은 고양시에 새로운 풀필먼트센터를 알아보고 있다. 신세계와 롯데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유통강자들이 이커머스 진입을 본격화하면서 ‘풀필먼트’에서 경쟁력을 찾고자 한다. 네이버는 올해 초까지 풀필먼트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면서, 풀필먼트 사업 진출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풀필먼트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물류센터에 상품이 입고, 보관, 출고되기까지의 과정을 관리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비슷한 용어로 3PL(Third Parties Logistics)이 있는데, 그 용례는 조금 다르다. 3PL이 ‘오프라인’과 ‘B2B물류’ 운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풀필먼트는 ‘온라인’과 ‘B2C물류’ 운영에 그 방점이 찍혀있다.

세빌스코리아 물류팀의 분석에 따르면 3PL 물류센터는 대규모 화물이 한 번에 입고되고 ‘재고’로 장기간 보관됐다가, 필요에 따라 간헐적인 출고 작업이 이루어진다. 즉, ‘보관’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화주가 물류센터를 이용하는 비용을 산정하는 방식 역시 ‘평당 임대료’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 콘텐츠: 이커머스가 물류센터를 사랑하게 된 이유]

반면, 풀필먼트는 보관보다는 다품종 소량 상품의 ‘분류’와 다발하는 ‘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매일매일 상품 주문이 발생하는 이커머스의 특성상, 팔리지 않고 오랫동안 재고로 남아있는 상품은 오히려 ‘악성재고’로 정리대상이 된다. 비용 산정 방식 역시 ‘출고 건당 비용’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 3PL과 풀필먼트의 경계는 혼탁하다. 온라인을 위한 물류, ‘풀필먼트’를 핵심사업 아이템으로 내세운 마이창고, 두손컴퍼니, 위킵 등의 회사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 전통적인 3PL물류를 하고 있던 업체들까지 ‘풀필먼트’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내세우며 관련 사업에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래에셋-네이버 아시아그로쓰 펀드가 인수한 것으로 알려진 로지스밸리의 베트남 물류센터는 B2B 제조사는 물론, 이커머스 업체를 위한 B2C 풀필먼트 물류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통계로 보는 풀필먼트 정말 뜰까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운수업조사 잠정결과(올해 11월 21일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창고 및 운송관련서비스업 매출액은 약 27조9000억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풀필먼트 물류센터’의 비중은 따로 계상되지 않는다. 뜬다고 하는 풀필먼트 시장 진입을 노리는 업계 관계자들이 풀필먼트 관련 통계를 찾기 위해 분주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이유다.

통계청은 온라인을 위한 ‘풀필먼트’ 센터만의 시장 규모를 별도로 계상하고 있지 않다.(자료: 2017년 기준 운수업 조사 잠정결과, 통계청)

업계 추산에 따르면 중소기업을 위한 풀필먼트 시장규모는 약 8000억원대로 추정된다. 풀필먼트 물류스타트업 두손컴퍼니에 따르면 2018년 온라인 거래는 약 104조원, 그 중 풀필먼트 대상품목의 거래규모가 56%, 중소기업의 거래규모는 37%로 추산된다. 중소기업의 거래규모인 37%에서 중소기업의 위탁물류 시장비율을 48%로 산정하고, 중소기업의 매출액 대비 물류비 비중을 8%라고 본다면, 8482억원이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두손컴퍼니측 설명이다. 하지만 현재 대형화주들을 중심으로 풀필먼트를 내재화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전체 풀필먼트 시장규모는 해당 수치보다 수배 이상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생활물류 전문미디어 CLO가 꼽은 2019년 물류 트렌드의 중심에도 ‘풀필먼트’는 있다. 기존 B2B 대량운송으로 대표되는 공급자 중심의 물류 서비스로는 변하고 있는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소비문화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 문화의 변화에 따라 ‘개인화된 소비’와 ‘다품종 소량’을 처리할 수 있는 ‘풀필먼트’ 역량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게 CLO측 설명이다.

이강대 로지스타포캐스트2019 조직위원장(연세대 과학기술대학 교수)은 “소비 주체가 개인이 되는 사회에서는 수요자 중심의 B2C 관점의 물류, 즉 다품종의 더 작은 물량을 다루는 풀필먼트의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며 “물류를 바라보는 프레임의 해체와 재생산이 필요하며, 물류를 보는 눈을 화물에서 ‘사람’으로 옮겨야 된다”고 밝혔다.

넘쳐흐르는 SKU를 처리하기 위해서

풀필먼트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IT와 물류의 융합을 불러온다. 다품종 소량, 즉 넘쳐흐르는 SKU(Stock Keeping Units)로 대표되는 이커머스 물류를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활약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쿠팡은 400만개가 넘는 로켓배송 상품품목을 아마존이 활용하고 있는 ‘랜덤 스토우(Random Stow)’라는 방식을 적용하여 처리하고 있다. 랜덤 스토우란 쉽게 말해 물류센터 입고 작업자가 보관한 장소가 곧 출고 장소가 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물류센터가 품목별 보관 장소가 지정돼있어 입고 작업자가 해당 위치까지 이동하여 상품을 보관해야 됐다면, 쿠팡의 랜덤 스토우는 입고 작업자가 아무데나 상품을 넣더라도 시스템에 해당 위치가 기억된다. 출고 작업자는 이후 시스템의 안내에 따라 상품을 찾아 픽업하면 된다. 쿠팡 관계자는 “언뜻 무질서해 보이는 쿠팡 물류센터의 진열대 안에는 가장 효율적으로 물류 시스템을 움직이는 쿠팡의 자체 기술력과 고도의 알고리즘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랜덤 스토우를 적용하고 있는 쿠팡 인천 메가물류센터의 작업 가이드. 물류센터 인력운영을 맡는 쿠팡 자회사의 이름이 ‘쿠팡풀필먼트서비스’다.



IT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활용과 함께 물류센터를 구성하는 하드웨어인 ‘자동화 설비’에 대한 관심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아마존의 키바(KIVA)로 대표되는 AGV(Automotive Guided Vehicle)의 성장이 대표적이다. 물론 AGV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로봇인 하드웨어가 아니라, 수많은 AGV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원활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소프트웨어’라는 데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이고 있으니 참고하자.

반도의 흔하지 않은 AGV. 이건 한국업체가 개발했다.

풀필먼트 스타트업 에프에스에스 홍종욱 대표는 “미국의 쉽밥, 일본의 오픈로지 등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커머스 풀필먼트 스타트업들의 공통점은 모두 클라우드 방식의 오픈 API를 제공하는 등 IT기반으로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해외 물류박람회를 가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ASRS(Automated Storage and Retrieval System)와 같은 자동화랙 설비가 주로 전시됐는데, 요즘에는 절반 이상이 AGV 업체가 들어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물류 인건비 인상 추세와 맞물려 ‘물류센터 자동화’는 필연적으로 업체들이 고민해야 하는 이슈가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화된 풀필먼트 신선에 주목하라

특화된 풀필먼트 시장에 대한 관심도 몰리고 있다. 특히 신선식품, HMR(가정간편식) 등을 이커머스로 소비하는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콜드체인 풀필먼트’ 구축에 대한 관심이 몰리고 있다. 신선물류 스타트업 팀프레시의 이성일 대표가 인용한 통계(통계청, 2016)에 따르면 가공식품과 신선식품을 통합한 시장은 100조원 규모에 달하는데, 온라인 전환율은 시장의 10% 안팎에 머물러 있다. 통상 이커머스 판매비의 18% 정도를 부자재를 포함한 물류비로 가정한다면 약 2조원 규모의 신선식품 물류 시장이 존재한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 신세계, 롯데, GS리테일, 쿠팡, 한국야쿠르트 등 대형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물론 마켓컬리, 헬로네이처로 대표되는 스타트업까지 온라인 신선식품 사업에 뛰어들어 경쟁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신선식품 시장에 뛰어든 온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은 대부분 ‘물류’를 직접 하는 방식으로 내재화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이 높은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신선물류 내재화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적절한 아웃소싱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예컨대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는 창업 전에 신선식품 물류 아웃소싱을 알아봤으나, 제대로 된 업체가 없다는 이유로 물류 내재화를 결정했다. [관련 콘텐츠: 온라인더딘 신선시장 마켓컬리, 샛별배송 콜드체인으로 문을 열다]

마켓컬리에서 물류를 총괄하던 이성일 대표가 회사를 나와 팀프레시를 창업한 이유가 여기 있다. 온라인 신선식품 시장의 성장 추세가 명확히 보였지만, 제대로 된 신선식품 온라인 물류를 대행해줄 수 있는 업체는 여전히 없었다. 온라인 신선식품 판매를 고민하는 업체들에게 있어 완전한 신선식품 풀필먼트를 직접 만들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비용’이라는 부담이 있었다. 이 때 팀프레시와 같은 콜드체인 풀필먼트 업체가 내재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현재 쿠팡, 이마트 등이 신선식품 물류를 직접 하고 있지만, 결국 어떤 부분에서 아웃소싱이 필요한 지점이 올 것”이라며 “그때는 팀프레시가 그들의 협력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