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사라지자 나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지난 24일, KT 아현지사에서 광케이블이 불타는 화재가 발생해 인접 지역 5개 구와 경기도 일부 지역 인터넷 먹통이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광케이블이 물리적으로 불타며 24·25일 유·무선 인터넷이 완전히 마비됐다.

기자는 마포구 주민이다. 오후 2시경 여유롭게 로스트아크에 접속해 퀘스트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곧 접속이 끊어졌다. 로스트아크 서버 문제로 가끔 튕기는 현상이 있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핸드폰도 먹통이 됐다. 핸드폰보다 무선 성능이 좋은 태블릿PC를 켜봤다. 작동하지 않았다. 인터넷 라우터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기자는 세 시경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역으로 향하는 도중 만나기로 한 사람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둘 다 KT 핸드폰을 썼던 탓이다. 급하게 와이파이를 빌려 쓰려 스타벅스 등을 전전했으나 스타벅스도 KT 망을 쓰고 있었다. 스타벅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을 보았다. 인간의 폭력성을 실험하는 느낌이다.

가까스로 만난 사람과 만화방을 찾았으나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세 군데를 들렀으나 모두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고 했다. 특히 이 중 한 가게는 보안 시스템으로도 KT Corp.를 쓰고 있었다. 가게를 뜬눈으로 지켜도 도둑이 든다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선전화가 있다면 10년 만에 수화기를 들어야 할 판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모바일 네이티브라면 유선전화를 쓸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가게에서는 현금이 없다면 계좌이체를 해주면 된다고 했다. 물론 은행 앱을 실행할 수 없었다.

정처 없이 걷다가 한 카페에 들렀다. 카드 결제와 와이파이가 된다고 했다. SKT나 LG U+ 망을 쓰나보다 하며 주문을 했는데 와이파이는 되지 않았다. 망은 잡히지만 인터넷 연결이 없다고 했다.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은 ‘KT 쓰는 분들은 와이파이가 안될 거다’라며 속 모르는 소리를 했다.

약속을 마치고 저녁 식사 거리를 사러 가게에 들렀으나 카드 결제가 어렵다고 했다. ATM이 있는 편의점에 들렀더니 카드 결제가 어렵다고 했다. ATM에서 출금을 하려니 회선 연결 중이라고 했다. 피해지역이 아닌 쪽으로 한강을 넘어가려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니 버스가 언제 오는지 안내하는전광판이 먹통이었다. 설상가상 주말이라 버스편도 줄어있는 상태였다. 카카오 택시를 부르려니 카카오가 실행되지 않았다. 배달의 민족으로 주문하려니 앱 주문을 할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전단지를 주워 전화 주문을 한 뒤 카드 결제를 한다고 하는 방법이었으나 전화를 할 수 없었다. 결국 저녁은 다이어트를 하려고 사놓은 닭가슴살 같은 걸로 때워야 했다.

여가시간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은 핑계 대고 나중에 하면 된다. 리디셀렉트에서 책을 읽으려니 구매한 책이 아닌 대여 책은 로그인을 해야 했다. 넷플릭스와 푹에 접속할 수 없었다. 벅스에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옆집 와이파이를 굽신대며 빌려 음악을 몇 개 저장하려고 했으나 내가 사용하는 음원 요금제는 스마트폰 저장 옵션이 없는 것이었다.

노트북을 열어 일을 하려 했다. 맥북 용량이 적어 문서는 회사에서 쓰는 G-Suite에 딸린 구글 문서로 작성하는데 구글 문서를 실행할 수 없었다. 맥용 워드프로세서인 Pages에 작성하고 나니 동기화를 시킬 방법이 없었다.

인프라가 충분할 때 공유경제나 스트리밍, 구독 형태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 나는 빈털터리였다. 먹을 수 없고, 입을 수 없으며, 일할 수도 없었다. 동네 여러 PC방 중 KT 망을 사용하지 않는 단 하나의 PC방을 찾았다. PC방 앞은 구소련 냉전 시대에 빵이 없어서 우리 아이에게 먹일 빵이라도 달라며 서글픈 거친 말을 해대는 이바노프에 빙의된 사람들 천지였다. 나는 당장 집에 있는 닭가슴살이라도 가져가 SKT 폰을 쓰는 젊은이를 찾아가 “젊은이, 이 닭가슴살과 인터넷 10메가만 바꾸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긴 밤이 지나갔다. 이것이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두고 전시 예비훈련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후로 나는 반전주의자가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존 레논의 ‘Imagine’을 들으려 했지만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내 삶으로 로그인할 수 없다.

 

“이보시오. 와이파이좀 쓰게 해주시오. 아니면 커피라도 좀 팔아주시오”(출처=englishrussia.com)

 

현재 KT 망은 11월 25일 18시 기준 인터넷 21만5000 가입자 중 21만, 무선은 기지국 2833개 가운데 1780개가 복구된 상태다. 각각 유선 97%, 무선 63% 수준이다. 피해를 입은 일반 고객은 1개월 요금 감면을 시행한다.  무선 가입자의 경우 피해지역 거주자에 한해 보상을 진행한다. 소상공인 피해 보상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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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plies

  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기사 겁나 재밌네,

  2. 기자 양반이 굉장히 빡치셨나보오 ㅋㅋ

  3. 안되는거만 골라서 했네 뭘 그냥 인터넷 되는 지역가서 사람만나고 했을면 됄것을 ㅎ

  4. 역시 믿고보는 익살 ㅎㅎ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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