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IBM이 레드햇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IT업계를 강타했다. IT업계에서 기업 인수합병은 흔하디 흔한 일이지만 이 소식은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예상 범주에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340억달러라는 거래 규모 때문이기도 했다. 이는 미국 IT 인수합병 역사상 세번째 규모라고 한다. IBM은 레드햇 주식에 프리미엄을 무려 63%나 얹어줬다.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목적은 대체로 서너가지로 구분된다. 인수할 기업이 자신에게 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피인수 기업의 고객을 통째로 가져오고 싶을 때, 인재를 영입하고 싶을 때 등이다. 당장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매출과 이익이 많은 기업을 인수하기도 한다.

그러나 IBM이 레드햇을 인수한 배경은 이런 범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레드햇은 오픈소스 기업이기 때문에 레드햇 제품이 탐난다면 IBM 역시 같은 제품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레드햇이 상징적인 오픈소스 기업이기는 하지만, IBM 역시 오픈소스 진영의 오랜 친구였고, 많은 투자를 진행해왔다.

고객의 규모와 다양성 면에서도 IBM이 레드햇을 탐낼 이유는 없어보인다. 레드햇 매출 규모 역시 IBM의 실적에 큰 도움이 될 수준은 아니다. 지난 회계년도 기준으로 IBM의 매출은 791억달러에 달하는 반면, 레드햇의 매출은 29억달러에 불과하다. 레드햇이 떠오르는 샛별이기는 하지만, IBM의 규모에 비교하면 실적에 큰 도움이 될 수준은 아니다.

IBM은 이번 거래에 대해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들었다. 지니 로메티 IBM 회장은 “레드햇 인수는 ‘게임 체인저’”라며 “IBM이 클라우드 시장의 모든 것을 바꿔 세계 1위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니 로메티 IBM 회장


IBM의 클라우드 경쟁자는 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이다. IBM은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에서 이들에게 패배를 맛봤다. 이에 IBM은 레드햇을 인수해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수사(修辭, rhetoric)에 가까워 보인다. IBM에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는 새로운 전략이 아니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라는 것은 기업 내부의 데이터센터에도 IT시스템을 두고 외부의 퍼블릭 클라우드와 연동하겠다는 것인데, 얼마전까지 기업들은 모두 내부 데이터센터에서 IT 서비스를 운영했다. 100년 동안 이 시장의 최강자는 IBM이었다.

IBM 입장에서 보면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시장을 최근 들어 AWS를 필두로 한 퍼블릭 클라우드에 빼앗기고 있는 중인 셈이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라는 전략은 외계의 공습에서 시장을 지키기 위한 IBM의 필수불가결한 전략이고, 이전부터 계속 실행해온 전략이다. 레드햇 인수가 IBM의 이런 하이브리드 전략에 도움이 안되겠냐마는, 마치 이 인수가 엄청난 새로운 경쟁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기업들이 IBM의 기대처럼 데이터센터를 유지한 채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로 갈 것인지도 의문이고, 레드햇 역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분야의 매출이 아직은 그렇게 크지 않다.

이런 점에서 IBM이 340억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쓰면서 레드햇을 인수했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퍼블릭 클라우드에 대한 최종 포기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인수가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IBM이 레드햇으로부터 얻어야 할 것은 ‘문화’다.

IBM은 넥타이와 수트로 대표되는 기업이다. IBM 직원들은 멋진 수트를 차려입고 기업의 CIO 등 고위 임원을 만나 자신의 기술과 제품을 설명한다. CIO는 수억, 수십억원짜리 IBM 제품을 살것인지 말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톱-다운 방식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돼가고 있다. 클라우드 기술은 넥타이보다는 티셔츠와 잘 어울리고, 더 개발자 친화적이다. 작게 시작해서 크게 확산되는 바텀-업 방식이다. 이 때문에 넥타이로 상징되는 IBM은 개발자에게 더 친숙한 레드햇의 문화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인수할 경우 큰 기업의 문화가 작은 기업의 문화를 압살할 때가 많다. IBM이 일단 레드햇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계획을 밝힌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음모론(?)도 제기할 수 있다. 레드햇 인수가 면피용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IBM은 최근 ‘인공지능(AI)’ 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지난 2011년 미국 ABC 방송국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 쇼에서 우승한 AI 컴퓨터 ‘왓슨’을 앞세우 AI 시장을 개척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IBM은 너무 앞서나갔다. ‘왓슨’이 제퍼디 쇼에서 우승한 이후 AI 분야에 기술 혁신이 일어났고 알파고 이전의 AI 기술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IBM AI 사업은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다.

IBM은 2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다가 최근 두 분기에야 겨우 하락세를 되돌렸다. 그러나 기대치에는 여전히 밑돌았다. IBM은 이런 분위기를 전환할 기점을 찾아야했고, 레드햇 인수가 이를 위한 분위기 전환용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1990년대 초 IBM은 회사 문을 닫을 뻔한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IBM은 컴퓨터 제조기업에서 소프트웨어 및 IT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나며 위기를 극복했다.

현재 IBM은 그 당시의 비교될 정도로 어려움에 빠져있다. 퍼블릭 클라우드 기업으로의 전환은 실패했다. AI 기업으로의 전환 노력은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아직은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과연 IBM은 이번 위기에서도 경영혁신이 대명사다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까? 레드햇 인수는 이에 대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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