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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은 아닙니다만] 노라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최근, 리디북스로부터 한 통의 보도자료를 받았다. 월정액 도서대여 상품 ‘리디셀렉트’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한국어판 큐레이션 콘텐츠를 독점 공개한다는 내용이었다. 하버드도 나오고, 비즈니스도 나오니까 뭔가 논문 같은 느낌적 느낌이 나지만, HBR은 하버드대 자회사 하버드비즈니스 퍼블리싱에서 1922년부터 출간한 잡지다. 미국에서만 연간 25만부나 발행할 만큼 인지도가 높다.

게다가 리디셀렉트에서 처음 공개하는 HBR 콘텐츠 제목이 ‘블록체인의 진실과 미래’다. 요즘 가장 핫한 단어가 블록체인인데, 심지어 ‘진실’과 ‘미래’를 하버드에서 다뤘다니, 그것도 한국어로 공개한다니 어떻게 다운로드를 안 받겠는가. 나는 이미 리디셀렉트에 돈을 내고 있는데. 2개월 무료 기간이 지나 유료 회원까지 된 것을.

사실은, ‘무지하게 길고 어려우면 어떡하지’ 하고, 약간은 겁먹어 콘텐츠를 내려 받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짧다.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7.8인치) 화면 기준, 총 42쪽이다. 그리고 그 길이마저 여러명의 필자가 나눠 작성했다. 그러니까, HBR이란 잡지의 ‘블록체인’ 특집 코너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꼭지인 ‘블록체인, 데이터 마케팅 지형을 바꾼다’를 비교적 재미있게(?) 봤다. 마케팅을 다룬 내용이라 덜 어려운 것도 있지만, 사례가 들어 있어 잘 읽혔다. 필자인 아닌디야 고즈는  하인즈 릴 석좌교수이자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비즈니스분석프로그램 디렉터다. 그는 블록체인이 ‘데이터의 진실성 확보’를 위한 답이라고 말한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확인된 광고 게재를 통해 모든 고객 여정을 검증하고 분석할 수 있어 데이터 기반 마케팅이 더 투명해질 수 있다. 미디어 계약 내용에 따라 실제로 사람이 해당 광고를 봤는지 확인해주는 것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 경영학과 교수인 마르코 이안시티와 카림 R. 라카니는, ‘블록체인에 관한 진실’이라는 꼭지의 글을 기고했다. 부제를  ‘비즈니스를 완전히 바꿔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그 여정이 지금 시작된다’고 달았는데 제목이 거창한 만큼 양도 길다. 이번 편의 메인 요리라고 보면 된다.

이들은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기본 구조 가운데 하나가 계약과 거래, 그리고 이에 대한 기록인데 지금의 관료체제는 경제의 디지털 혁신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조절하고 유지하는 방법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 기술로는 역시 블록체인을 꼽는다. 블록체인이 비즈니스 혁명을 일으킬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블록체인도 폭 넓은 조율이 필요한 기반 기술이기 때문에 실제로 비즈니스 혁명이 오는 시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먼 미래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들이 손놓고 있을 때는 아니고, 계획을 세워나갈 시기라고 생각해도 이르지 않다고 덧붙인다.

블록체인은 거래비용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으며 널리 수용된다면 경제구조를 바꿔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HBR 한국어판을 보면 나온다.

‘노라’는 리디북스가 ‘리디셀렉트’를 텍스트판 넷플릭스로 만들겠다고 표방하면서 내놓은 첫 오리지널 콘텐츠다. 인기 소설가 장강명 씨가 총 8회에 걸쳐 집필하는데, 18일 기준 4화까지 공개됐다. 각 편은 12~13페이지 수준으로 짧아서 마치 웹소설을 읽는 것처럼 페이지를 훅훅 넘길 수 있다.

노라의 기본 테마는, ‘인공지능 섹스로봇에도 인권이 있는가’이다. 인간과 흡사한 인공지능 섹스로봇이 등장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자의식을 갖춘 로봇에게 자유를 부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다룬다. 주인공 노라의 이름은 페미니즘 운동에 영향을 끼친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따왔다.

‘야한 소설’을 생각하고 다운로드 받겠다면, 그 손가락을 거둬라. 4화까지 그런 내용은 없다. 그런데 야한 내용 없어도 충분히 흥미롭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로봇의 인권이라든가 로봇과 인간을 나누는 기준, 그리고 성적 자기 결정권 등에 대해서 생각해볼만한 내용을 담았다.

예컨대, 로봇해방운동가들에 의해 강제 해방된 인공지능 로봇 ‘노라’에게 변호사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에게도 사생활이 있습니까?”

노라는 자신이 느끼는 기쁨을 ‘고통이 0인 상태’라고 표현한다. 기계적인 표현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래밍된대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도 느낀다. 노라는 속으로 ‘인간의 감정 역시 프로그래밍 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노라를 사랑한 박사는, 노라의 기억을 지우는 것을 거부할 만큼 특별한 관계라 생각하지만, 노라의 외출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3편에서 다친 노라를 치료하던 간호사가 이런 질문을 한다. ‘가사로봇이 왜 그렇게까지 인간을 닮아야 하는 거죠?’라고. 노라의 답이 인상 깊다.

“배꼽이 없는 여자랑 섹스를 하면 어딘지 어색하대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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