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부터 스티브 잡스 서거까지의 애플.

 

1975년 – 애플의 시작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던 마이크로프로세서 컴퓨터를 본 스티브 잡스는 이것이 오픈소스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직접 회로 기판을 만들어서 팔기로 결정했다. 이것을 당시 워즈니악이 다니던 HP가 아니라 자신에게 귀속시키기 위해 사업자를 내기로 한다. 과일만 먹는 채식을 하던 잡스는 애플 컴퓨터라는 이름을 들고 온다. 과일인 동시에 전화번호부에서 자신이 다니던 아타리보다 앞에 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976년 사업자가 설립됐다.

 

1977년 – 애플 II  발표

APPLE I

회로기판뿐이었던 애플 I을 보다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일체형 컴퓨터인 애플 II를 기획하지만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젊은 부자였던 마이크 마쿨라를 영입하고 은행 대출을 받아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77년 4월에 열리는 박람회에서 애플 II를 선보였다. 실제로 만든 건 세 대뿐이었지만 물량이 충분한 것처럼 보이려 뒤에는 빈 박스를 수도 없이 쌓았다.


애플 II

 

1980년 – 기업공개

애플 II의 흥행으로 그들은 창업 후 4년만에 IPO를 시도한다. 77년 1월 회사 가치는 5309달러였으나 1980년 12월 말 IPO 이후 기업 가치는 17억9000만 달러였다. 백만장자가 300명이나 나왔다. 친구인 대니얼 콧키에게도 지분을 나눠주지 않았던 잡스와 달리 워즈니악은 자신의 주식 2000주를 중간급 직원 40명에게 낮은 가격으로 팔기도 했다.

 

1984년 – 존 스컬리 영입, 매킨토시 발표

젊은 시절의 존 스컬리(출처=포춘)

1983년 마케팅 전문가인 존 스컬리를 유명한 대사(설탕물)로 영입하고 자신은 매킨토시 개발 책임자로 있었던 잡스는 매킨토시 발매에 맞춰 그 유명한 ‘1984’ 광고를 낸다. 제작은 무려 리들리 스캇 감독이 했다. 잡스는 이 광고를 미국에서 가장 비싼 광고 매체인 슈퍼볼 중계 사이에 내보냈다.


1984 매킨토시 광고

 

1985년 – 잡스가 당한 파문

잡스와 매킨토시

잡스와 스컬리 사이의 많은 트러블이 있었다. 오만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잡스의 성격 문제도 있지만, 매킨토시의 가격 정책 때문이기도 했다. GUI PC로 개발단가가 높은 매킨토시가 주목을 받자 스컬리는 비싸게 팔고 싶어 했고, 잡스는 저렴하게 팔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매킨토시의 실적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85년 3월의 매출은 예상치의 10퍼센트에 불과했다. 잡스는 사무실에서 자주 격노했으며 다른 임직원의 불만이 쌓여갔다. 스컬리는 잡스가 매킨토시 개발에 손을 떼고 신제품 개발을 책임지길 원했지만 잡스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이사진과 스컬리는 결국 잡스를 파면했다.

 

1990년대 – 애플의 하락세

IBM의 칩셋, MS의 저가 PC의 공세로 애플 PC의 점유율은 최고였던 16%에서 4%로 곤두박질친다. 1993년 존 스컬리 대신 부임한 마이클 스핀들러는 애플을 선 마이크로시스템즈, IBM, HP에 팔려 했으나 실패했다. 1996년, 내셔널 세미컨덕터의 CEO인 길 아멜리오가 CEO로 부임했다. 애플은 당시 코플랜드라는 OS를 만들고 있었으나 실제 개발은 부족했다. OS를 위해 잡스에게 접촉했다. 잡스가 넥스트 인수 포함 5억 달러 정도의 주식을 요구하자 윈도우NT를 탑재할 생각도 한다. 만약 이 협상에서 길 아멜리오가 승리했다면 우리는 지금 아이폰에서 윈도우CE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넥스트가 점차 어려워지자 잡스도 애플 인수를 원했으나 안달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넥스트는 결국 현금과 지분 포함 약 4억 달러에 매각된다. 이 소식을 들은 빌 게이츠는 평소 성격과 달리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잡스는 넥스트를 인수시키고 픽사에 근무하며 애플의 파트타임 고문을 맡았다. CEO로 복귀하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은 CEO 복귀를 위해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을 고위직에 앉히고 있었다. 길 아멜리오가 해고된 건 잡스의 영향은 아니라 실적 부진때문이었다. 잡스는 이후 임시(interim) CEO로 부임한다. 이후 복잡한 제품군을 파우 매킨토시 G3, 파워북 G3로 단순화한다. 소비자용 데스크톱으로는 아이맥이 될 제품을 생각했으며, 소비자용 휴대 제품으로는 아이북을 떠올렸다.

넥스트와 잡스

 

1998년 – 아이맥 출시

애플은 반투명 플라스틱을 사용한 일체형 데스크톱 아이맥을 내놓는다. 지금도 출시되고 있는 그 아이맥의 첫 제품이다. 아이맥은 8월 출시됐고 연말까지 80만 대가 팔렸다. 애플 컴퓨터 사상 가장 빠르게 판매된 컴퓨터였다.

 

2001년 – 아이팟 출시

잡스는 사람들이 모두 노래를 CD에 넣고 구워 듣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소프트웨어에 뒤쳐졌다. 영상을 고집하던 잡스의 성격 때문이었다. 영상을 고집한 이유는 PC가 디지털 컨텐츠의 허브가 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위해서는 애플 출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제프 로빈과 데이브 헬러를 불러 ‘사운드잼’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개선해 아이튠즈를 만들었다. 아이튠즈의 이름은 아이무비와의 통일성 때문에 지어졌다. 또한, 이 아이튠즈를 완벽하게 구동하는 하드웨어를 위해 아이팟을 만들었다. 다른 제품이 16곡 정도의 노래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하드디스크를 탑재한 아이팟을 만들어냈다. 1000곡을 넣을 수 있었다. 손쉬운 조작을 위해 트랙 휠을 넣었다.

 

2003년 – 아이튠스 스토어 출시

잡스는 사람들이 P2P 프로그램 냅스터로 불법으로 음원을 유통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사람들이 그걸 원해서 한 건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튠스 스토어에서 유료로 음악을 팔기 시작했다. 곧 윈도우용 아이튠스도 만들었다.

 

2007년 – 아이폰 출시

CEO 복귀 이후 존 스컬리의 프로젝트였던 뉴턴 PDA를 쓰레기라고 칭하며 손가락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PC를 비밀리에 만들고 있던 애플은 이 PC를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두 가지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관성 스크롤과 정전식 터치스크린이다. 특히 관성 스크롤의 존재로 인해 화면이 작아도 된다는 점을 깨달은 애플은 각종 센서를 탑재한 아이폰 만들었다. 6월, 맥월드 2007에서 세상을 바꾸었다.


 전설이 된 키노트

 

2008년 – 앱스토어 출시

애플은 아이튠즈 스토어와 마찬가지로, 아이폰용 앱을 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를 만들었다.

 

2011년 – 아이패드 출시, 시가총액 1위, 스티브 잡스 서거

아이폰으로 먼저 출시된 기술을 기반으로 아이패드를 출시하며 태블릿 시대를 열었다. 잡스는 7월, 건강이 악화되자 이사회에 더 이상 대표이사직을 수행할 수 없음을 밝혔고, 직원들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10월, 스티브 잡스는 암으로 눈을 감았고 CEO로는 팀 쿡이 선정됐다. 같은 해 애플은 엑손모빌을 제치고 미국 내 시가총액 1위의 회사가 되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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