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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씨, 뭐하는 사람이에요?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를 찾아 와룡동 ‘노스테라스’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카페 지하에서 반상회가 열리던 참이었다. 지역 상가 번성을 위한 회의 같은 것인데 김상헌 전 대표가 하는 카페가 이날 모임 공간으로 마련됐다. 나와서 인사하라는 말에 김 대표가 쑥스러워 하며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상헌이라고 하고요…”

“아니, 누군지(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 소개를 해주셔야죠.”

“아, 저는 네이버라는 회사에서 대표를 했고요, 지금은 그냥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판사를 거쳐 LG전자의 요직, 네이버의 수장 자리 등을 맡았던 김상헌 전 대표에게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은 꽤 낯설다. 지난해 4월, 네이버를 떠난 그에게 쏠린 관심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이냐”였다. 예상과 달리 김 전 대표는 대형 로펌에 가지도, 대기업에 입사하지도 않았다. 대신, 종로구 와룡동에 5층 짜리 건물을 구입해 리모델링 하고 일층에 카페를 차렸다.

“지금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는 시간이죠. 전보다는 아침에 여유가 있어요. 일단, 조찬 모임에 가는 일이 거의 없어졌어요(웃음).”

업무용 책상은 건물 4층에 위치한 노소라 변호사의 법률사무소 한 켠에 놓았다. 노소라 변호사는 김상헌 전 대표가 사법연수원 시절 만난 부인이다. 둘은 따로 또 같이 스타트업 법률 지원을 한다. 4층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사무실도 들어왔다. 건물 2, 3층은 스타트업 ‘트레바리’에 세를 줬다. 5층은 자택이다.

“여러가지 잡다하고 소소한 일을 많이 해요. 최근엔 대통령 소속 도서관 정보정책위원에 위촉되기도 했죠. 주로 1층에서 찾아오는 손님들 만나고, 4층에서 일을 봐요. 특별한 날 아니면 평소엔 양복도 잘 안 입어요.”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와 노소라 변호사

김 전 대표가 맡은 일이 꽤 많다. 배달의 민족 같은 기업의 사외이사는 널리 알려진 일인데, 의외로 국립극단 이사장 직도 맡고 있다. 호기심이 많고, 발이 넓은데다 IT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그를 찾는 곳이 많다. 그래도 딱 하나, 직업이 뭐냐고 묻는 말엔 머뭇한다. 최근 ‘직업’이라는 것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기 때문이다.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그가, 옆자리 노소라 변호사에게 물었다.

“당신이 볼 땐 뭐라고 답을 하고 싶어?”

한국 사회에선 ‘호칭’이 중요하다. 직함에 따라 사람이 평가받기도 하고, 또 개인의 행동도 직함이 요구하는 지침에 맞춰야 할 때도 있다.  8년간 네이버의 대표였던 김상헌은 양복 입은 엘리트였고, 어딜 가든 대접받는 사람이었다. 지금 그의 직함은 무엇일까.

” 그간 ‘일’이라는 것은 돈을 버는 행위였죠.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요.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구애받지 않고 하는 것, 그게 지금 제가 생각하는 일인 것 같아요. 지금은 투자도 하고 자문도 하고 있어요. 임대 사업이랑 카페도 하고 있고 사외 이사 일도 하고요, 공공기관 명예직도 있죠. 이 모든게 다 의미가 있어요. 결과적으로, 나의 직업은 없는 거네요(웃음).”

최근엔 LG 사외이사도 됐다. 그래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카페다. 그 공간에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한다. 주로 외국어로 된 서적인데, 한국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것이 많다. 어떤 날은 골목을 지나던 독일인이 들어왔다 감탄하고 나갔다. 한국의 골목, 작은 카페에서 한국에 대한 독일어 서적을 발견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도서관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 이 건물을 샀을 때 도서관을 해보려고 느티나무 도서관에 찾아가 컨설팅도 받고 했죠. 그런데 도서관이라는 것이, 만드는 것은 그렇다쳐도 운영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제 수준에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외국인을 위한 도서관 카페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도 이 공간에 채워 넣을 책을 고르고, 구매하는 일이다. 김 전 대표는 “하루 일정 시간을 (구매할) 책을 검색하는 데 쓴다”고 말했다. 가끔 구하기 힘든 책을 가진 판매상이 오면 신이 나서 널찍한 카페 탁자 위에 책을 널어 놓고 이책 저 책 뒤적인다. 원하는 모든 책을 다 살 순 없기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그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김 전 대표는 말했다.

최근들어 주변에서 김 전 대표를 일컫는 말은 ‘노스테라스’의 건물주다. 부인  노소라 씨와 공동대표다. 건물주로서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웬만해선 건물을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 들어오고 나서 첫 결심이 뭔지 아세요? 주말에 골프를 끊은 거예요. 주말에 방문객이 제일 많거든요. 평균 하루 3~5회 미팅을 해요. 네이버 대표 때보다 실제로는 더 바빠요. 거의 월화수목금금금이죠.”

노스테라스의 일정은 빡빡하다. 부부를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서다. 저녁 약속도 노스테라스 근처에서 잡을 정도다. 유명한 IT 기업인부터 반상회를 찾는 동네 주민까지 노스테라스엔 다양한 이가 들른다.

이렇게 중요한 공간의 이름을 ‘노스테라스’로 지은 이유는 무얼까. 김 전 대표는 세가지 뜻을 말했다. 우선, 아내인 노소라 씨의 성을 따 ‘노’s 테라스’다.  테라스 북쪽의 풍경이 예쁘다는 ‘North 테라스’란 뜻도 담았다. 마지막으로, 부부가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 老’s 테라스라는 의미를 붙였다. 김상헌, 노소라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낼 공간이란 이야기다. 이들은 노스테라스로 임대사업을 한다기 보다, 건물을 통한 하나의 삶의 방식을 구현하고 싶다고 했다.

“건물의 성격이 중요하죠. 이 공간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곳이에요. 내가 늘 여기에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일터도 여기에 만든 거죠.”

두 시간 가량, 김 전 대표와 대화에서 느낀 점은 그가 요즘 꽤나 재미있게 산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는 것, 읽는 것만큼 책을 사는 것도 어마무시하게 좋아하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네이버라는 큰 조직을 나와서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네이버 사장을 떠난지가 일년 쯤 됐네요. 자기 검열을 덜 하고, 마음 속으로 하고팠던 일을 해볼 수 있는 일이 달라졌네요. 네이버 사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해왔던  ‘내가 이정돈 해야지, 이런걸 하면 안 되지, 이런 거 하면 나쁜거 아냐?’ 라는 검열이 많이 없어졌다는 점, 그게 좋아요 .”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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