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ight Crawler

낮, 빛, 광채 따위를 뜻하는 제품과는 다른 반구에 서 있다. 빛나지 않으려 모든 불을 끈다. 찰나의 반사도 꾀하지 않는다. 밤 속에 앉은 먹먹한 검정. 눈을 감아도 훤히 내다보이는 길. 손은 어둠을 걷는다. 암전에서 밝은 화면 속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간다. 빛을 거부하고 어둠의 세상으로 간다. 빛나지 않기 위해 모든 디자인 공식도 철저하게 통일돼 있다.

 

둥근 카본

X1  카본의 최초 디자인은 일본의 검은 젓가락을 모티브로 했다. 씽크패드의 자연에서 떼온듯한 이질감 없는 묵직함에 가벼움의 아이덴티티까지 부여하는 외모다. 언제 만져도 차갑거나 뜨겁지 않은 무광 기기는 분명히 도형 중 하나를 고르라면 사각형이나 직육면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손목에 닿는 이 검은 물체는 분명히 둥글다.


X1 카본 초기 디자인 모티브(출처=레노버 일본 블로그)

팜레스트의 어떤 부분에서도 불편함을 찾을 수 없다. 경첩의 어떤 부분이든 둥글게 둥글게 움직인다. 조금 힘을 들여야 할 때라면 트랙포인터와 트랙패드 중간을 동시에 누를 때뿐.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왔던 둥근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것, 곡선은 신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직선이자 곡선이다.

 

Mr. Security

글로벌 생체인증 표준인 FIDO를 준수하고, 스푸핑을 방지하는 설계를 적용했다. 혹시 모를 카메라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 폼팩터 안에 카메라 셔터를 완결성 있게 집어넣었다. 튀어나오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자체 소프트웨어 Vantage로 2번 터치 내 카메라, 통신망 공유, 마이크를 끌 수 있다. 스마트폰 제어센터 수준의 편의성이다. IR 카메라 옵션을 선택한다면 안면인식 기능을 사용할 수도.

 

City of Stars

이 키보드는 기계식처럼 활자를 숭덩숭덩 썰어내는 맛은 없다. 온몸의 힘을 빼야만 속주가 가능한 맥북들과도 다르다. 델의 것처럼 아늑하면서 물러터지지도 않았다. 이들은 어딘가 익숙하지만 벗어나고 싶지 않은 부드러운 탄성이 있다. 구식이지만 더 나아질 것도 없었다. 공격하지도 방어하지도 않지만 늘 제자리에 있다. 그 곡선으로 손목과 손가락을 보호한다. 누군가는 씽크패드의 예전 버전 13을 두고 빌리 조엘이 돼서 그랜드 피아노를 치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렇게 화려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을 조용히 준비하는 라라랜드의 한 장면과 더 가까웠다. You never shined so brightly.

 

AI 레디/트랜스폼 PC

360도 4m 거리 인식의 마이크가 탑재돼 있고 코타나와 알렉사를 모두 지원해 해외에선 인공지능 스피커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코타나와 알렉사 자체의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무용지물이다. 어디에서든 말해도 귀가 열려있지만 대답은 할 줄 모른다.

씽크패드의 특징인 도킹이 가능하다. 데스크톱으로 빠르게 변신한다. 부족한 포트들도 한번에 해결 가능.

켄싱턴 락, USB-A, USB-C 충전 포트, 이더넷, 도킹용 단자, HDMI가 빼곡하다

 

파괴자를 위한 선택

어떤 기기든 파괴하고야 마는 파괴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씽크패드의 존재 자체는 희소식이다. 군용 등급이나 빡빡한 품질 검사를 만족한다. 계단에서 굴리는 실험을 할 정도. 물을 흘려보내는 설계도 돼 있어 간단하게 물을 엎어도 별다른 응답은 없다.

실버 코팅을 줄이고 모든 눈에 띄는 부분을 유광 블랙 코팅으로 대체했다

 

갈 곳 잃은 트랙포인터

바야흐로 터치패드의 시대다. 트랙포인터는 점점 갈 길을 잃고 있다. 느긋하고 손목에 무리를 덜 주는 방향의 포인팅에는 제격이지만, 빠르고 즉각적인 피드백에서 점차 트랙패드에 자리를 내주는 느낌. 숙련자가 아닌 이는 자꾸 마우스를 찾아 가방을 뒤적거린다.

 

결코 저렴하지 않다

이 제품은 맥북과 이름을 댈 수 있는 마지막 랩톱이다. 즉, 맥북만큼 비싼 것이 정상이다. 성능은 맥북 프로지만 무게는 맥북 에어 11형 정도(1.13kg)다. 15시간을 눈뜨고 있는 지구력도 있다. 어린 소비자들은 그러나 이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윈도우 자체의 빠른 성능저하도 있다. 따라서 중고가 가격이 맥북에 비해 유지되지 않는다. 기다렸다 중고를 살까 하는 고민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