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헛개 숙취 해소음료’로 85억원 투자 받기
이시선(28)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만 9살에 캐나다로 이민 갔다. 취업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했다. 페이스북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우버, 테슬라를 거쳐 창업했다. 아이템은 ‘숙취해소제’. 테슬라를 그만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던 그도, 날개돋힌 듯 팔리는 숙취해소제 앞에선 사표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실리콘밸리에서 ‘모닝 리커버리’라는 숙취해소제를 만들어 파는 ’82랩스’ 창업자 이시선 대표가 3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정자동 네이버팩토리에서 연 ‘실리콘밸리의 한국인들’ 컨퍼런스에 연사로 섰다. 82랩스는 전날인 2일 숙취 음료 신제품을 선보이면서 알토스벤처스와 슬로우벤처로부터 800만달러(약 85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82랩스가 평가받은 투자후 기업가치는 3300만달러(약 350억원)다.
“한국 사람들이 특이하고 잘 하는게 술을 잘 마시는 문화에요. 나라별 평균 음주량을 보면, 러시아가 술 많이 마신다는데 한국이 그 두배에요. 일주일에 평균 14잔의 소주를 마신다는 통계 자료가 있어요”
창업 전, 한국에 놀러 왔다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행오버(숙취)를 겼었다. 친구들이 편의점에서 “이거 마시면 숙취에 도움된다”고 해서 헛개를 알았다. 그때는 창업 아이디어고 뭐고, 소비자로서 그 음료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실제로 이걸 마시고 나니 몸도 좋아졌다고 느꼈다. 미국에 몇 개 가져가고 싶다, 처음엔 딱 그정도였다.
호기심이 모든 것의 원천이었다. 온라인으로 숙취 음료를 두 세박스 구매해선 직장 동료 -테슬라- 들한테 나눠줬다. 친구들이 신기해 했다. 이게 왜 술을 깨게 하는 걸까, (검색으로) 찾아봤다. 처음 키워드는 ‘헛개’였다. 과학적 근거를 찾다가 “헛개 추출물이 숙취에 도움이 된다”는 논문을 발견했다. UCLA 신경 약리학자 징 리앙 박사가 쓴 논문이었다. 전화도 하고 이메일도 주고 받으며 소비자로서 물었다.
“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는 헛개 음료가 없나요?”
미국 사람들이 술을 안마셔서 인가? 아니다. 어느 조사 결과에 보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료의 60%가 주류다. 물이나 커피보다 더 많이 팔린다는 이야기다. 만약 이 시장을 상대로 숙취 해소 음료를 판다면 어떻게 될까. 테슬라에 풀타임으로 근무하면서 이시선 씨는 수요 조사를 해보기로 했다. 간단한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5달러에 숙취해소 음료 판매”를 내걸었다. 그때 들어온 돈이 2000달러다.
“2000달러를 벌었는데, 모두 환불해줬어요. 아직 물건을 안 만들었으니, 팔 게 없잖아요? 시장 조사를 한 거예요. 수요가 있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일단 수요는 있다. 그 이후에 ‘헛개’에 대해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는 징 리앙 박사를 수차례 만났다. 헛개에서 숙취를 해소하는 성분을 어떻게 추출하고 혼합하고 저장하고 팔 수 있을지를 의논했다. 그러다 샘플을 만들어 팔아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당장 샘플을 만들 공장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평생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한 이가 제품 만들 공장을 알 리가 없었다.
“파이버(fiver)라고, 한국말로 ‘잡일’을 해주는 사이트가 있어요. 내가 만약 “공장을 찾고 있는데, 이걸 찾아주면 얼마를 드리겠다”고 하면, 신기하게도 찾아줘요. 어떻게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주더라고요. 이런 방식으로 공장을 여덟군데 찾았고, 10만원이 들었어요.”
공장 가서 기죽지 않으려고 평소 안 입던 슈트를 입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 등의 공장을 돌아봤는데 그중 한국에 있는 공장 세 군데와 샘플 계약을 맺었다. 한 달 후인 지난해 3월, 실리콘밸리로 샘플이 배달됐다. 디자인, 맛, 생산, 유통 과정 같은 복잡한 것은 생각 안하고 무조건 페이스북에 “실리콘밸리 친구들아, 숙취 해소제 만들었다”는 공지를 올렸다. 얼리 테스터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피드백이 왔다. 이 대표 자신도 매일 테스트를 했다. 이 말인즉슨, 매일 술을 마시고 숙취 해소제를 먹고 기록하고 블로그에 올렸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심장에 문제가 와서 병원에도 갔어요.”
그렇게 다시 한 달. 수백명의 테스터가 생겼고,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는 친구들이 아닌 타인을 상대로 샘플을 보내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갖고 있는 샘플 물량은 1000병인데 몰려든 수요가 2만명.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82랩스를 숙취를 과학적으로 풀어주는 ‘바이오 테크놀로지 컴퍼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에 숙취 해소 스타트업이 뜨고 있다는 소문이 이때부터 났다.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샘플 말고 진짜 제품을 팔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샘플 수요는 있어도, 판매 수요는 있는지 모르니까요. 이걸 과연 내 돈 주고 살까? 하는게 궁금했죠.”
클라우드 펀딩을 열었다. OEM 주문 제작을 하려면 공장에 맡겨야 하고, 그러려면 최소 주문량을 맞춰줘야 한다. 큰 돈이 필요하다. 만약 클라우드 펀딩에 돈이 안 모이면? 그럼 그것대로 “지금까지 재밌는 프로젝트 했다”고 접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모였다. 이때 확신이 왔다. 이거 되겠다. 사표를 냈다.
“회사를 열면 사람들에 주는 가치가 정확해야 해요. 우리는 ‘행오버 솔브’ 였어요. 숙취는 큰 문제고, 이상적으로는 술을 안 마시면 해결될 일이죠. 그런데 미국 음료 마켓의 60%는 술이에요.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게 엉뚱한 솔루션이죠. 오히려 숙취해소제가 더 이상적이라고 말했죠.”
이 말이 먹혔다. 창업한지 6.5개월차. 첫 달 매출이 한국돈으로 10억원에 달했다. 6개월 후엔 30억원이 넘었다. 아직 1년이 채 안됐기 때문에, 지금의 성장세를 기준으로 1년 매출을 짐작해 보니 700만달러(약 75억원)가 나왔다. 긍정적인 지표는 재구매율이었다. 올 1월 재구매율이 40%에 달했다.
물론 어려운 점도 많았다고 했다. 샘플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생겨 주문량을 못 맞출 뻔한 적도 있다. 아직까지도 이러저러한 사건사고가 일어난다. 그리고,
“테슬라를 그만 둘 생각은 없었어요.”
귀기울여 들을만한 이야기다. 그는 테슬라에 정규직으로 다니면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샘플 테스트까지 마쳤지만 섣불리 사표 내지 않았다. 자기 돈 내고 이 음료를 사먹을 사람들이 있다는 확신을 충분한 데이터로 검증받을 때까지 회사를 다녔다. 창업하려는 이들이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다.
이시선 대표의 발표 후 짤막한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이 대표와 나눈 1문1답
언제 실리콘밸리로 돌아가나
내일 간다. 지난 목요일(29일) 한국에 들어왔고, (숙취해소 음료를 OEM으로 만드는) 공장을 둘러봤다. 원래는 바로 돌아가려 했는데,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컨퍼런스 참여로 비행기 편을 늦췄다.
발표를 들으면서, ‘숙취 해소 음료’라는 타이틀이 미국 현지에서 법적 이슈는 없을지 궁금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약으로 갈지, 아니면 누구나 섭취할 수 있는 ‘다이어트 서플라이먼트’ 형태로 갈지. 약으로 하면 장점은 “이 음료가 얼마나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테스트 결과를 말할 수 있다. 단점은, 아무데서나 못 판다는 거다. 의사한테 처방을 받아야 하니까. 그런데 이 음료는 사람들이 약처럼 먹는 게 아니라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다가 재미로 마시는 거라 편의점이나 술집, 이커머스 등에서 못 팔면 안 된다. 그래서 다이어트 서플라이먼트로 가기로 했다. 그러면 우리의 제조 공정 등을 밝혀서 FDA에 보내면 된다. 대신, ‘숙취 해소 음료’ 이런 말을 쓰진 못한다.
현 시점에서 매출은 어떻게 되나
어제 새 제품을 론칭했기 때문에, 이 제품으로 말하긴 어렵다. 전 제품(모닝 리커버리)은 지금까지 매달 이커머스로 판매해 조금씩 커지는 규모가 5억~6억원이다.
숙취 해소 음료란 타이틀이 없는데 사람들이 이게 무엇인지 어떻게 알고 사나? 혹시 특별한 마케팅 문구가 있나
숙취음료란 말은 못하지만 사람들은 이해한다. 그리고 우리가 말을 못할 뿐이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도 된다. 얼마전에 한 매거진에서 우리 음료를 ‘행오버(숙취)를 킬한다’고 썼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걸 보고 웹사이트에 찾아온다. 크게 문제는 없다. 우리도 상품 설명에 ‘술마시고 마시라’고 쓰기도 했고(웃음).
시리즈A 투자 소식도 공개했다
어제 신제품 발표와 시리즈A 발표를 같이 했다. 시리즈A 투자는 그보다 먼저 받았지만 일부로 신제품 발표와 때를 같이 했다. 그래야 신제품 홍보가 더 잘 될거라고 생각했다.
마케팅에도 밝은 것 같다. 발표에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곤 숙취 해소 음료가 거의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세계 모든 시장이 82랩스의 타깃이 될 수도 있겠다
(숙취 해소 음료가) 없지는 않다. 다만 한국이나 일본처럼 크게 알려진 것은 없다. 어디서나 살 수 있는게 아니고 있긴 있는데 (대부분) 조그만 브랜드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올해 계획은 판매 스케일을 높이는 것이다. 돈(투자) 받아서 마케팅을 많이 할 것이다. 해외에도 진출한다. 특히 유럽 시장을 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