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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현 기자가 이정헌 넥슨 대표에게 빙의해서 쓴 기사

다음은 이정헌 넥슨코리아 신임대표가 25일 ‘넥슨 개발자데이(NDC)’ 행사 중 열린 ‘신임 경영진 미디어토크’에 참석, 신기주 에스콰이어 편집장과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것을 합쳐 하나의 스토리로 만든 것입니다.

이정헌 대표가 언제 넥슨 대표자리를 맡기로 결정됐는지, 또 김정주 넥슨 창업자(NXC 회장)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그리고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담았습니다.

이 대표는 회사 내부에서 ‘사람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임인 박지원 대표가 숫자에 능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이였다면 이 대표는 그와는 조금 달리 사람과 조직에 포커싱을 두는 인물이라는 평가입니다.

저는 그보다도, 이정헌 대표가 옷을 꽤나 트렌디하고 깔끔하게 입는다는 인상을 먼저 받았습니다만.

이 대표는 부임 석달만에, 스튜디오를 7개로 개편하고 개발에 대한 전권을 스튜디오 단에 전적으로 맡겨서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모두 이정헌 대표의 발언에서 발췌했지만, 표현 방식은 원활한 스토리 진행을 위해 조금 바뀌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재밌게 읽어주세요. 고맙습니다. [기자 주]

(왼쪽부터) 넥슨코리아 이정헌 대표, 정상원 부사장, 강대현 부사장.

안녕하세요, 이정헌입니다.

제가 넥슨 대표로 취임한 게 벌써 지난 1월이네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2003년에 넥슨에 사원으로 입사했어요.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변화를 지켜봐왔죠. 그런 제가 대표가 될 줄이야. 대표가 되고 나서 진짜 고민 많이 했어요. 넥슨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면서요. 최근에 넥슨이 7개 개발 스튜디오 중심의 조직 개편을 했잖아요? 제가 취임하고 난 이후 고민의 결실이 여기에 반영된거라 봐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박지원 전 (넥슨) 대표로부터 “대표 한 번 해봐”라는 말을 들은 건, 지난해 12월 초였어요. 처음에 10초 정도는 진짜 좋았어요. 대표란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예요? 가족 생각도 나고요. 그런데 막상 그날 밤부터는 좋기보다는, 걱정이 굉장히 심해지는 거예요. 내 임기 중에 회사가 망하면 어쩌나, 지금 잘 되고 있는 게임에 갑자기 무슨 사고라도 터지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이요. 심지어 회사에서 주는 핵심성과지표(KPI)도 없대요. 그러니까 두렵기까지 하더라고요.

하여튼, 저보고 대표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금요일에 하루 휴가를 썼어요. 가족들이랑 제주도에 놀러 갔죠. 그때 박지원 대표한테 전화가 왔어요. “김정주 사장님이 연락할거야, 잠깐 만나봐” 하고요. 아, 솔직히 여러분이 안 믿으실지 모르겠는데 김정주 회장님이랑 이야기 나눠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2003년에 입사해서, 14년 만에 처음이요.

둘이 무슨 이야길 했냐고요? 아… 너무 많은 주제가 있었죠. 근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하신 이야기가 “뭐 하고 싶으냐?”였어요. 두 시간 정도 이야길 나누다 보니까 제 옷이 낱낱이 벗겨지는 것 같더라고요.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여기예요. 김정주 사장님이 “회사 매출이 2조원 대인데, 무엇을 할 거예요?”라고 물었죠. 그때 나름 고민했던 거, 그러니까 “IP도 중요하고 게임도 중요하고, AI도 중요합니다. 많은 것에 관심 있습니다”같은 대답을 완전 진지하게 하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김정주 사장님이 웃으면서 그런 이야길 하시더라고요.

정말 회사가 변하려고 한다면, 지금보다 매출이 한 10분의 1, 100분의 1 정도 되면 변하지 않겠어요?”

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하,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하나. 다음날, 그리고 또 다음날이 지나도록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그랬더니, 모든 고정관념이나 압박 같은 걸 내려놓고 원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라, 라는 말씀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말이죠, 2조원대 규모 회사를 이끌어가는 자리에 있으면 지키려는 습성이 강해질테니까 그러지말고 주어진 임기 안에서 네 생각을 마음껏 펼쳐봐라, 이런 뜻이었을거라고요. 물론, 이게 맞는 해석일진 모르겠지만요.

언제 다시 뵐 지 모르겠지만 그 질문에 이제는 책임지고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책임지고 매출을 10분의 1로 만들어보겠습니다(웃음).

대표가 되고 나서, 몇 가지 사람들이 얘기하는게 있더라고요. 넥슨은 전임이었던 박지원 대표 때부터 저까지 모두 사원에서 시작했잖아요? 그러니까 잘만하면 사원에서 대표가 될 수 있다는 샐러리맨 신화를 만드는 기업 아니냐고요.

그리고는 또 묻죠. 어떻게 하면 넥슨에서 대표가 될 수 있냐고요. 글쎄요, 저는 기본적으로는 넥슨의 DNA 자체가 “나와 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을 전반적으로 좋게 평가하는 것”에 있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저처럼, 아무런 백그라운드 없는 사람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 기회가 있다는 거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좋게 보고,  또 기회를 준다는 것은 회사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예요. 다양성 측면에서 특히 그래요. 정상원 부사장님이 이런 말을 종종 하세요. 생태계에서 서로 다른 종이 섞여야 더 오랜 기간 종족을 번식한다고, 넥슨의 문화도 마찬가지라고요. 전 그 철학에 완전히 동의해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4년은 넥슨의 신규 개발이 다양성을 표방할 수 있도록 조직구조나 프로젝트가 진행됐어요.

앞으로 제가 맡은 임기 동안은 그 다양함 안에서 조금 구성원들이 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로 조직개편도 했고요.

투자도 그런 부분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어떤 장르, 어떤 플랫폼이 잘 될 것 같다고 해서 거기로 쏠려서 투자할 생각은 없어요.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요. 세상에 없던 것들, 재밌는 게임을 만들고 있는 멤버라면 얼마든지 투자의 기회는 열려 있어요. 큰 규모의 투자도 물론이고요.

이런 측면에서 넥슨을 좋게 봐주는 분들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물론 있죠. 대표적인게 ‘돈슨‘이란 말이잖아요. 이전 대표시절부터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죠. 오히려 그러다보니까 ‘듀랑고’ 같은 히트게임이 나왔지만, 사업적으로는 큰 돈을 벌지는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낳았고요.

네, 저희도 알아요. 듀랑고가, 유저 트래픽은 상당한데 비해서 매출이 많이 나진 않는다는 걸요.

이용자들에게 우리 이미지를 개선한다기보다, 과금을 많이 안하고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내부에 강하게 주고 싶다고 경영진들이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단순히 지금 돈 잠깐 많이 벌고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로벌 출시부터 시작해서, 한국 서비스까지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듀랑고는 처음 기획부터 10년 이상 가는 게임이라 생각했어요.

제 생각으로는 그래요,

지금같이 랜덤 확률(가차) 뽑기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로 천년만년 수익 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 안해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지난 몇년간 넥슨 내부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이런 고민은 사실, 세계 모든 게임 회사들이 고뇌하는 부분일 거예요.

네오플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냐는 우려도 많이 하세요. 저도 네오플에서도 일했었기 때문에, 한편으론 기분 좋으면서도 제일 두려운 부분이기도 하죠. 정상에 있으면 언젠가는 내려올 수 밖에 없으니까요. 어떻게 대비하고 무엇을 해야 하나, 제가 요즘 잠을 못 자는 이유 중 하나죠.

얼마전에 사내 공지를 썼는데요, 그 내용 중 하나가 ‘넥슨도 게임 회사로 새로운 IP가 필요하다’였어요. 모멘텀을 위해선 당연히 필요한 거죠. 빨리 위대한 IP를 개발하자!가, 제 우선 계획이에요.

두번째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넥슨만이 가진 무기가 무얼까예요. 국내 경쟁은 사실 큰 의미가 없어요. 다른 나라 유수 게임과 당당히 싸울수 있게 우리가 가진 무기! 그게 중요하죠.

넥슨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10년 간 PC 온라인 게임 라이브를 해왔어요. 그리고 10년 이상 성장해왔죠. 우리만 가진 노하우가 있어요.

지금 우리 게임이 주로 PC에 한정되어 있지만, 사실 게임 습성은 근본적으로 같지 않나요? 우리 노하우를 콘솔이든 모바일이든, 아니면 미래의 새로운 플랫폼이든 어디든간에 상관없이 원활하게 이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에 고도화된 프로세스를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있어요. 인텔리전스랩스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고요.

제 임기가 끝날 때, 넥슨이 어떤 회사가 되어 있으면 좋겠냐고요? 5년 후의 넥슨이 지금 같은 문화를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양성, 세상에 없는 것들을 탐구하고 만들어내려는 열정, 그런게 계속되길 바라요. 바람이긴 하지만, 글로벌에서 열심히 경쟁해서 좋은 실적도 내야죠. 개인적으로는 세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IP나 게임,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해요.

아, 제가 밖에서 “나 넥슨 사랑해” 이러면 낯간지럽다고 하시기도 하는 데요, 어떻게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좋아할 수도 있냐고도 하시고요. 그런데 이건 저한테 매우 중요한 질문이에요. 제가 1998년에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게임이란걸 해봤어요. 그때 진짜로 너무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아니, 이런 세상이 있다니!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때랑 비교해도 그보다 열배, 아니 스무배나 더 감동했던거 같아요. 와, 대학때 내내 게임만 했다니까요.

그때 이 회사, 넥슨의 로고를 PC카페에서 봤죠. 그리고 저 회사에 무조건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알게 된지 20년이 넘었네요. 넥슨이라는 회사에 제 인생의 반절을 쏟았어요.

넥슨은, 그냥 저한테는 첫사랑인거 같아요. 이게 사랑인지 모르겠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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