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철민 “암호화 화폐는 화폐 아니다, 용어 잘못됐다”
유시민 작가 : “최근에 비트코인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 본 적이 있습니까?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 : 말씀하시는 건 협의의 개념의 근대적 화폐입니다. 화폐는 세 세대가 있습니다. 금화 같은 상품기반 화폐, 현재의 정치기반 화폐, 미래의 화폐는 알고리즘 기반 화폐입니다. 알고리즘 기반 화폐가 현재의 정치기반 화폐가 하는 일을 못한다고 해서 알고리즘 기반 화폐가 하게 될 일에 대해서 화폐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은 화폐의 근대적 개념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유시민 : 그러니까 상품이나 서비스 거래는 안 해본 것이죠?
김진화 :저는 2년 전부터 비트코인이 컨수머 커런시(consumer currency)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유시민 :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비트코인이 현재 화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장래에 화폐가 될 수 있는가 토론하면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1월 18일 JTBC 뉴스룸 긴급토론 ‘가상통화,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의 한 장면이다.
토론회에서 보인 유 작가와 김 대표의 입장차이는 좁혀지기 어려워 보였다. 이는 현재 암호화 화폐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장면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가 있다. 블록체인 컴퍼니 빌더를 자처하고 있는 체인파트너스 표철민 대표다. 표 대표는 이 장면에서 “맞습니다.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화폐’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야 진전된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암호화 화폐가) 화폐로서 기능하려면 가치의 변동성이 크지 않아야 하는데, 현재 암호화 화폐는 변동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화폐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암호화 화폐로 결제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금으로 결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금으로 결제를 할 수도 있지만 편리한 현금과 카드가 있는데, 굳이 왜 금으로 하겠습니까”
그의 이 답변에 다소 놀랐다. 표 대표가 운영하는 체인파트너스는 최근 ‘코인덕’이라는 결제서비스를 출시했다. 이는 오프라인 상점에서 이더리움으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다. 암호화 화폐를 결제에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결제 서비스를 내놓다니. 이제 막 시작한 서비스의 장래성에 대해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발언이다.
그럼 체인파트너스는 왜 코인덕을 출시했을까? 하도 암호화 화폐 투기가 심하니까 투기 이외의 쓸모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표 대표의 대답이다.
“저희는 블록체인 컴퍼니 빌더입니다. 어떤 제품을 처음 내는 것이 의미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지금 암호화 화폐가 욕 먹는 이유는 투기 말고 쓸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코인덕은 코인의 쓸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내놓은 서비스입니다. 그 정도지, 저희 직원 중에 코인덕에 올인하자는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극히 상징적인 행보입니다.”
표 대표는 암호화 화폐를 ‘내부용 상품권’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과거에 아주 잘 알았던 싸이월드의 도토리와 비교해보자. 싸이월드에서 미니홈피에 백그라운드음악을 깔려면 음원을 구매해야 했다. 그 음원은 도토리로만 살 수 있었다. 이용자들은 도토리를 구매해서 음원을 구매하는 결제수단으로 이용했다. 도토리는 싸이월드라는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내부용 상품권’인 셈이다.
이는 암호화 화폐도 마찬가지다. 특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다. 물론 아직은 기업들이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계획을 발표하고 코인을 발행하는 단계(ICO, Initial Coin Offering)다. 서비스가 개발돼서 활발하게 이용되는 사례는 아직 흔치 않다. 앞으로는 이런 서비스가 나올 것이고, 그들 중 몇몇은 제2의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가 될 수 있다고 표 대표는 보고 있다.
도토리가 암호화 화폐와 다른 점은 발행량이 무제한이라는 점이다. 싸이월드는 사람들이 도토리 구매를 원하면 원하는 대로 팔았다. 도토리는 무제한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최초에 싸이월드 측이 정한 가격이 변하지 않는다.
이 점이 도토리와 암호화 화폐가 다르다. 암호화 화폐는 발행량이 한정적이다. 어떤 서비스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이용권이 한정적이라면 그 이용권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럽이 있는데 입장권을 1000장만 발행한다고 하자. 이 클럽에 가고 싶은 사람이 늘어날수록 가격은 올라간다. 즉 암호화 화폐의 가격은 그 서비스의 가치와 인기가 결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서비스가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코인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현상이다. 좋은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겠지만 투기적 요인이 강하다.
일부 업체들은 이 투기 심리를 이용해 무분별한 ICO를 진행한다. 투자자들은 어떤 서비스가 등장하고 그 서비스의 가치가 얼마나 될 것인지는 보지도 않고 묻지마 투자를 한다.
표 대표는 “벤처캐피탈에서 5억원도 투자받지 못할 사업모델로 ICO로 수천, 수조씩 돈을 끌어모는 경우도 있다”면서 시장 과열을 우려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신규 ICO를 금지하고 있다. ICO를 유사수신이라고 판단했다. ICO를 전면 금지한 나라는 우리와 중국밖에 없다.
표 대표는 정부의 현재 대처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찬성’이라는 입장이다. 너무 과열돼서 일단 막아놓을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생각보다 현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ICO를 이용한 유사수신, 다단계 사기가 너무 많아요. 카톡방에서 ICO한다고 1500억원을 모은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당국자라고 해도 일단 막아놓을 것 같습니다. 무분별한 ICO가 너무 많고, 가치가 별로 없는 코인을 무작정 팔았어요. 일부 기업이 투기 열풍을 이용해 돈을 끌어모을만큼 끌어모았는데, 거품이 터지는 날이 올 것이고, 터지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입니다. 갑자기 거품이 빵 터지면 재앙이 될 거에요.”
다만 ICO를 계속 막는 것은 국가적으로 마이너스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새로운 기업의 등장까지 막을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 창업할 스타트업이 해외로 다 나갈 수도 있다. 블록체인은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인데, 이를 스스로 차버리는 것과도 같다.
표 대표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의 상장심사처럼 일정 기준이상의 기업만 ICO를 할 수 있도록 하고, 미국처럼 일정 규모의 자산이나 수입이 있는 사람들만 ICO 에 투자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표 대표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암호화 화폐 및 ICO는) 앞으로 제도화 돼서 금융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체인파트너스가 아직 ICO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블록체인 한다는 회사들은 대부분 ICO를 했고, 수백억 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표 대표는 아직 ICO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개똥철학”이라고 말했다. 현재 투기열풍에는 편승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저희도 적절한 환경이 되면 ICO를 할 예정입니다. 다만 물 들어왔을 때 노 젓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표 대표는 무상 ICO도 제안했다. 현재처럼 토큰을 판매하는 ICO는 사기꾼들이 이용하기 쉽다. 무상 ICO를 하되, 일정비중의 코인을 회사가 갖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개발한 서비스가 인기를 얻을수록 코인 보유자는 돈을 벌고, 회사도 돈을 번다. 다만 이 경우 스타트업이 초기에 투자금을 확보하는 용도로 ICO를 사용하기 불가능하다.
표 대표는 블록체인이 앞으로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저작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인터넷 초창기 음원이나 영화, 만화 등이 불법적으로 유포돼 문제가 많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거의 정리가 된 상황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다시 불법 저작물을 활성화 시킬지도 모른다고 표 대표는 예상했다. P2P로 연결된 블록체인 안에서 불법 저작물이 유포되면 막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직토 토렌토를 막지 못하는 실정이다. 만약 개개인이 코인을 얻기 위해 불법저작물을 유포하기 시작하고 이용자는 합법 저작물보다 훨씬 싼 가격에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중간 관리자가 없는 P2P이기 때문에 제어하기도 힘들고 단속도 힘들 것이다. 표 대표는 “다시한번 20년만에 저작권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블록체인 상황은 1994년의 인터넷의 상황과 같아요. 아직 어떻게 쓰일지 정확하게는 모르고 상상만 하는 수준입니다. 초기 인터넷 시절처럼 혼란도 있을 것입니다.”
정부는 최근 암호화 화폐는 규제하고 블록체인 기술은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막고,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양성화 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표 대표는 이에 대해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시티폰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비교해 설명했다. 시티폰은 삐삐에 휴대폰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 기기다.
“처음에는 데이터를 외부에 저장하는 것에 대한 반발 때문에 프라이빗 클라우드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삼성전자가 AWS의 최대 고객이에요. 프라이빗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표 대표가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보안과 검열저항성이라는 블록체인의 강점을 역행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중은행끼리 블록체인을 구성한다고 해보자. 해커는 소수의 노드만 해킹하면 된다. 수십만, 수백만의 노드가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해킹이 불가능하지만 소수끼리 구성한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해킹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가치를 실현하는 형태는 퍼블릭 블록체인입니다. 프라이빗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마치 시티폰을 육성하겠다는 정책과 같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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