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 작가(왼쪽)와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드라마에는 왜 잘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만 나오나 불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반성을 하게 됐다. TV에 노동자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창작하는 내가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이야기가 재밌다는 것을 누군가 증명한다면 다음에 또 그런 이야기가 생기지 않겠나. 재벌과, 노조위원장이 주인공인 삼각관계 이야기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규석 작가

우리는 모두 노동을 하고 산다. 이 글을 읽는 대다수는 임금 노동자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은 때론 생경한 단어로 느껴진다. 다수가 소비하는 대중문화는 노동 대신 주로 판타지를 그린다. 하루 여덟시간 이상 일하고 월급받아 먹고사는 우리네에게 노동은 삶과 뗄 수 없는 것인데, 노동을 말 하는 것, 그리고 노동 환경을 문제 삼는 것은 금기시된다.

노동운동가가 주인공인 만화 ‘송곳’을 그린 최규석 작가와 오랜기간 노동상담을 해왔던 성공회대 노동대학 하종강 학장이 지난 8일 저녁, 서울 삼성동 구글캠퍼스에서 함께 강연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상품기획연구회’가 준비한 올해 네번째 ‘세일즈 컨퍼런스’에 참석한 두 사람은 ‘5천만에게 노동 정신을 세일즈한다’는 주제로 ‘우리가 아는 노동’과 ‘우리가 모르는 노동’을 말했다.

강연 서두는 최규석 작가의 만화 ‘송곳’으로 시작했다. ‘송곳’은 조금 특별한 만화다. 노동조합위원장과 노동운동가가 주인공이다. ‘송곳’은 “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는 대중문화에서 다뤄지지 않는가”를 고민하다 나온 작품이다. 최 작가는 6년을 노동현장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끝에야 웹툰 ‘송곳’을 내놨고, 최근 종이만화로도 전 6권을 완간했다. 물론, 재미도 있다. JTBC는 최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동명의 드라마 ‘송곳’을 제작하기도 했다.

하종강 학장은 “불편할 정도로 사실적인 만화”라고 ‘송곳’을 설명했다. 그는 최 작가가 처음 ‘송곳’을 기획할 때 자문을 위해 처음 만난 사람이기도 하다. 하 학장은 “한국 사회에서 자기의 임금을 거의 포기하고 노동조합 간부를 맡는 사람들은 대게 진지하고 삶에 대해 성찰이 깊은 사람들인데 실제 이 만화에선 그렇게 정확하게 그렸다”고 말했다.

반대로, 최규석 작가는 ‘송곳’이 현실보다 온건하게 다듬어진 만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측이) 포크레인으로 영안실 벽을 뚫고 들어와 (노조 조합원의) 시신을 가져간다거나, 회사 임원이 병원에 찾아와 (입원한 노동자의) 아킬레스 건을 끊는 것 같은 자극적 사건은 만화에서 뺐다”며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노동 문제로 대중의 공감을 사려 했다”고 설명했다.

송곳이 대중적 인기를 얻은 데는, 그간 우리 사회에 노동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깨트렸기 때문도 한 몫한다. 만화의 주인공인 이수인과 구고신은 훤칠한 호남형이다. 최 작가는 “일부러 만화 주인공을 잘 생기게 그렸다”고 말했다. 노동자는 거칠고 무식하다는 편견을 깼으며, 인간적이고 지적이다. 무엇보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은 꼭 착해야 한다, 공익을 위해서 활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깨줬다.

노조는 노동조합원의 것이다. 애초에 공익이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위해 결성됐다. 노조가 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단을 결성하고, 그것이 통용될 때 전반적인 공동체의 삶의 질도 올라간다. 사익의 추구가 공익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 아닌가. 도덕적 결벽증에 대한 강박을 깨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하종강 학장도 같은 의미로 노동자 연대와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컨대, 촛불집회가 한참이었을 때 한국에 방문한 핀란드 보건복지부 차관은 자국 국가경쟁력과 장기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이유에 대해 한국 기자들에게 “노동조합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나도 노동조합원”이라 강조했다.

하 학장은 “차관이 노동조합원이라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한국에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우리나가 경제 규모가 세계 11위인데 출산률은 220위인 것은 노동문제에 굉장히 취약한 인식을 가진 것과 관계가 깊다고 본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선 이미 경찰, 소방관, 판검사, 군인 등 모든 계급과 계층이 자신의 이익에 맞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들이 모두 각자의 이익에 맞게 연대하고, 그 힘을 발휘할 때 개인과 사회의 삶의 질이 올라간다. 그것이 노조가 중요한 이유다.

대중문화가 노동을 다룰 때 일어나는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많은 이들에게 시작해 볼 용기를 준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을지병원이다. 하 학장은 ” (지난해 간호사들이 대다수 파업에 참여했던) 캘리포니아 주는 간호사 한명 당 맡아야할 환자 수가 다섯명이다. 서울대병은 열다섯명, 을지대병원은 스물다섯명”이라며 “을지대 노조가 18년 만에 다시 만들어졌다. ‘송곳’을 보고 다시 한 번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노동과 노동운동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됐을까. 우선 언론이다. 우리 사회 수많은 노동문제에 대해 언론은 입을 닫아왔고, 때로는 왜곡해왔다. 하 학장은 “언론이 노동 문제를 보도하지 않고, 또는 아예 왜곡되게 보도해왔다”며 “몇몇 신문의 경우에는 아예 기사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는 노동3권을 가르치며, 교섭과 파업 등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우리는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먼저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하 학장은 일갈했다.

하 학장은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사회교과서 17종에서 최저임금을 언급하는데, 지나치게 인상하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인상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며 “미국의 전형적인 시장 경제에서도 교과서가 그렇게 설명하지 않는데 한국 교과서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노동 환경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을 준비한 김승현 상품기획연구회장은 노동 세미나를 기획한 것에 대해 “우리 모두가 당사자이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의 범위와 해석’에 대해, 대중적으로 그것을 일깨워준 웹툰 ‘송곳’을 매개로 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를 가져보고 싶었다”며 “이제 노동 정신은 더 이상 못사는 사람들의 무기가아닌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갖고 또 누려야할 기본”이라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