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은 영감이 아니라 협력과 실행력에서 나온다”
좋든 싫든 보는 이의 머리 속에 한 번에 꽂히는 카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은 능력자다. 광고 전문가 박웅현은 그 부분의 대가다. ‘진심이 짓는다’ ‘생각이 에너지다’ ‘사람을 향합니다’ ‘잘자, 내 꿈 꿔!’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등, 귀에 척 달라 붙는 이 익숙한 문구들이 그의 작품이다.
이런 사람이 생각하는 창의력은 어떤 종류일까. 박웅현 TBWA 콘텐츠 대표(CCO)가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브랜드비즈 컨퍼런스 2017’에 연사로 섰다. 그런데, 그의 첫 마디가 예상을 빗나갔다. “나는 창의력이 없는 사람입니다”라니.
적어도 대중이 보는 박웅현은 반짝이는 영감과 발상을 가진 자다. 겸손한 듯 “30년 간 수많은 실패작을 만들었다, 한줌의 카피만 남았다”고 말하지만, 그 한 줌, 아니 한 줄의 히트작을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경험해 보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다.
박웅현이 보기에는 영감과 발상은, 창의력을 구성하는 자그마한 요소다. 그러니까, “당신의 발상은 천재적이야, 창의력이 뛰어나”라는 얘기는, 그에게 있어 창의력의 본질을 잘못 짚은 칭찬이다. 그에게 창의력의 핵심 구성 요소는 실행과 협력이다. 그를 칭찬하려면 그가 어떻게 발상을 실행으로 옮겼는지, 얼마나 좋은 파트너들과 제대로 협업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문학하는 시인에게 발상과 영감이 창의력의 본질이라면, 브랜드 마케팅에 있어서는 한 개인의 머릿속에 떠오른 발상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방송을 타는덴 실패했지만 그가 3년 전쯤 만든 ‘멍게’ 영상이 있다. 이 끔찍(?)하게 생긴 생물을 누가 제일 처음 입에 넣을 생각을 했을까, 하는 영상은 보는 사람의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박웅현은 그를 “사람의 입에 바다를 선물한 자”라고 칭한다. 그때, 사람들은 “아, 기발하다” 라고 느낀다.
멍게를 영상으로 만들자는 발상은 누가 생각해도 재밌다. 그런데 박웅현의 머리속에 아무리 혁신적인 멍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결과물로 내는 것은 그 혼자로는 불가능하다. 시나리오 짜는 것부터, 촬영, 편집, 음악 등등 전 분야에 걸쳐 그와 함께 할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멍게 영상은 기획과 제작 단계에서 어느 기업의 후원도 받지 않았다. 광고쟁이가 어떤 후원도, 혹은 방송을 타리라는 보장도 없이 수많은 파트너를 밀어붙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결국 이 영상이 태어난 계기는 여러 파트너의 협업 외에도 끝까지 프로젝트를 밀어붙여 현실로 만들어내는 실행력이다.
방송을 타진 않았지만 멍게 영상은 완전한 실패작이 아니다. 이 발상을 바탕으로 tvN과 함께 한 ‘오! 진짜 짧은 다큐’를 만들었고, 이 다큐가 그의 근작 ‘안녕 돈키호테’를 세상에 나오게 했다. 광고주들이 “비주얼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거부했던 이 영상이 새로운 창작물의 부모가 됐다.
이런 창의적 산물을 잘 만들어내기 위해, 기업의 또는 단체의 장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박웅현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그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주라는 것이다. 박웅현과 그의 팀은 ‘오! 진짜 짧은 다큐’의 세종대왕 편에 그런 생각을 담았다. 한글을 세종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다. 다만,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만들 수 있게 외부 탄압을 막고 멍석을 깔아줬다.
돈키호테적 발상은 창의력의 씨앗이 되지만, 그 발상의 싹이 대지를 뚫고 올라와 싹을 피고 열매를 맺으려면 실행과 파트너가 필요하다. 특히 그것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브랜드 마케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는 결과적으로 구상과 창조 사이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 그것이 브랜드 마케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박웅현이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있습니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