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인 에누마 대표

최근에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다. 구글 남성 엔지니어가 ‘여성 임원이 적은 건 생물학적 차이’ 운운한 글을 올려 해고된 사건이 국내 언론에도 오르내릴 때다. 진행자가 대본에 없는 질문을 했다. “여기자로 일하면서 직접 성차별이나 성희롱을 당해본 적은 없는가?‘라고.

아, 짧은 시간에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없겠나? 내 대답은 ‘당연히 있다’였고, 구체적 사례를 언급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유리천장’ 이야기를 하는 선에서 대답을 마무리 지었다. 이 뻔한 답이,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선 2017년인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다.

같은 얘기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제법 유명한 교육 스타트업 ‘에누마’를 창업한 이수인 대표에게서 들을 줄은 몰랐다. 이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또는 할 수 있는 이야기 거리 중 하나로 ‘실리콘밸리의 유리천장’을 꺼냈다. 그러니까 유리천장이 2017년의 실리콘밸리에서도 유효한 이야기라니.

이 대표와 인터뷰는 원래 지난달 27일, 그가 머물고 있는 버클리에서 진행키로 했었다. 내가 마침 새너제이에 출장 와 있을 때고, 우버를 타면 왕복 세 시간 정도 거리라 저녁에 짬을 내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대표를 지척에 두고, 인터뷰는 결국 전화로 이뤄졌다. 퇴근 시간 교통정체 탓에 일정 소화가 어려울 거란 현지인의 조언도 있었지만, 당일 아침 샌프란시스코에서 버클리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에 총격전이 벌어져 도로가 통제되기도 했다.

이수인 대표는 엔씨소프트 게임 기획자 출신으로, 부부가 버클리로 유학 왔다가 눌러 앉아 창업한 케이스다. 그가 창업한 ‘에누마’는 영유아, 초등생을 타깃으로 한 교육 앱 ‘토도수학’을 만들어 이름을 알렸다.

특수교육이 필요한 본인의 자녀를 위해 만든 이 앱이 장애와 비장애를 막론하고 세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앱 중 하나가 됐다. ‘토도수학’은 구글과 애플 양대 앱 마켓에서 교육용 앱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고, 미국 내 1천여 개 초등학교에 정규 수학교재로 채택됐다.

최근 촬영한 에누마 단체사진

에누마를 창업하면서 이 대표가 느낀 것은 실리콘밸리의 성차별이다. 예컨대 차량공유기업으로 이름난 우버의 경우 최근 2년 사이 여성 엔지니어 수가 크게 줄었다. 성희롱을 묵인하는 분위기에, 중요한 일을 여성에겐 맡기지 않아서다. 그런 우버가 최소한 샌프란시스코 안에서는 위기를 맞았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선 수많은 여성 소비자들이 우버의 성차별, 성희롱 이슈에 대한 불쾌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우버 앱을 삭제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우버의 경쟁사인 ‘리프트’다. 리프트는 상대적으로 여성 운전자가 많은 자동차 공유 앱이다.

“이 동네 소비자 절반이 여자에요. 우버를 사용하지 말자는 움직임이 있었죠. 실리콘밸리에서는 남성 중심 문화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어요. 장기적으로는 내부적으로 (남성중심) 문화가 쌓이면 어디선가 반드시 사고가 터지는데 이게 기업에 큰 리스크라는 걸 알게 된거죠.”

창업을 하고, 투자를 받는데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눈에 띈다. 실리콘밸리에서 여성이 투자받기는 남성보다 훨씬 어렵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창업 후 성공 확률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다. 왜 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경쟁률이 센 만큼 정말로 괜찮은 곳만 투자를 받아서다.

여성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 여성 벤처투자자(VC)를 조명하려는 시도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현지에서도 심사역이 여자인 경우가 여기도 아주 많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실리콘밸리 여성 창업자를 파워하기 위해서 여성 심사역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기사가 나온다.

“여성 심사역의 중요한 이유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어서에요. 창업자도 심사역의 편견에 대한 두려움이 덜해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어프로칭할 수 있죠.”

에누마는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등 꽤 많은 곳의 투자를 받았다. 이 대표의 경우엔 특히 여성 심사역이 많은 VC를 많이 만났다. 예컨대 뉴스쿨 벤처펀드는 심사역이 여성 셋에 남성 하나다. 여성 심사역이 더 많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이 회사가 투자한 창업자들이 모이면 전체의 3분의 1(때로는 5분의 1)이 여성이다.

에누마가 투자 받은 또 다른 VC의 공동 창업자는 사회학을 전공한 여성이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공평한 기회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투자 자체를 세상의 불공평한 격차를 줄이는 데 쓴다.

“이 VC의 경우 펀드 자체를 세상의 격차를 줄이는 놀라운 일에 사용해요. 하지만 우버의 초기 투자자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우버가 저렇게 문제가 됐을 때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죠. 초기 투자자로서 실망했다고, 바로 잡으라고 목소리를 세게 내는 타입입니다. 이분들 같은 경우 젠더 이퀄리티(성평등)에 신경 쓰죠.”

또 다른 투자자는 K9벤처스라는 VC다. 멤버의 80%가 이민자 출신이고, 창업자 본인도 인도에서 건너왔다. 비자나 네트워크 부족 같은 이민자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투자를 활발히 한다. 이 대표는 “이민사회에 훌륭한 엔지니어가 많다. 이들이 블루오션”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안그래도 투자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민자 여성이 어떻게 운좋게 투자자를 만났을까.

그는 “미국이라고 해서 여성에 대한 투자가 많은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엔젠펀드 등 의식적으로 여성들의 창업 롤모델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의 창업 장벽을 낮춰주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특히 창업을 하려는 이의 의지와 네트워크 형성을 강조했다.

“많은 VC가 ‘당신이 내 연락처를 모른다는 이야기는 날 만날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이라고 얘기하죠. 대체로 소개 기반이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합니다. 같은 국적의 동문회도 그런 네트워크 중 하나에요. 한인은 실리콘벨리에 그 수가 적어서 활발하게 소개가 일어나진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성이라는 부분, 특정한 이민자라는 부분 등 자기가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해요.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여자 VC가 여자 창업자를 눈여겨봅니다.”

이 대표와 에누마는 최근 아동 기초교육을 위한 앱 ‘킷킷스쿨’을 내놨다. 교사나 학교가 부족한 곳의 아이들을 위한 앱이다. 교사 양성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교육 환경 개선에는 몇십년 이상이 걸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금 당장 아이들의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양질의 앱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킷킷스쿨은 최근 비영리 벤처 재단인 엑스프라이즈 재단이 인류 공동 과제 해결을 위해 주최하는 기술 경진대회에 출전, 결선에 올라 100만 달러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낙후지역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컴퓨터를 가져다주는 등 시도들이 있었지만 결국 해결이 되지 않았죠. 제 생각엔 (문제 해결을 위한) 설계 자체가 잘못됐던 것 같아요.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맞춘 커리큘럼이 공부 못하는 애들한테 소용이 없는 것처럼요. 저희는 좋은 퀄리티의 디지털 교육 교재가 많은 아이들에게 한 번에 배포하는데 굉장히 효과적이라고 봐요. 아무리 낙후된 나라라도 휴대폰은 다 있으니까요. 테크를 갖고 세상 문제를 해결하는 게 지금 대세 중 하나니까요”

최근엔 예전 직장동료였던 김형진 상무도 엔씨소프트를 퇴사하고 에누마에 합류했다. 이 대표는 그를 “오랜 친구”라고 말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게임을 써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함께 믿은 친구”와 함께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게임이라는 형식을 써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니, 아름답다. 이수인 대표가 실리콘밸리라는 남성 중심의 바다에서, 후배 여성들에 좋은 롤모델이 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도 에누마를 응원련다. 그러니, 계속 성공해줘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