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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석의 입장] 이해진이 네이버 총수일까

고 스티브잡스 애플 CEO는 회사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었다. 그의 동의를 받지 않은 신제품 출시는 불가능했고, 그의 신임을 얻지 못한 임원이 회사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힘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이런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을까? 애플의 지분을 많이 갖고 있어서?

스티브 잡스가 상속자에게 남긴 애플 지분은 0.59%에 불과하다. 1985년 그가 애플에서 쫓겨나던 시점에는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지분 10%를 가진 최대주주 시절에도 회사에서 쫓겨났는데 0.59%의 힘으로 회사를 지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은 ‘능력과 신뢰’이다. 스티브 잡스는 몰락의 길을 걷던 애플을 수렁에서 건져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재탄생시켰다. 직원들과 주주들은 스티브 잡스의 실력을 믿었고, 그의 의견을 따랐다. 이것이 스티브 잡스가 사내에서 가진 파워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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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네이버 글로벌 투자 책임자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해진 네이버 GIO(Global Investment Officer, 글로벌 투자 책임자)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외부 활동에 소극적인 이 GIO가 스스로 공정위를 찾아갔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 GIO가 공정위를 찾아간 것은 본인이 네이버 총수가 아님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법적 용어로 말하자면 본인이 네이버라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의 ‘동일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공정위는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10조원 이하의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이 되면 동일인이라는 것을 정하게 되는데, 동일인은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오너, 즉 ‘총수’를 의미한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거래를 공시하는 등 규제를 받게 된다.

즉 네이버 자산이 5조원을 넘게 되면 이해진 GIO가 네이버의 총수가 된다는 의미다.

(준)대기업집단과 동일인 제도는 매우 한국적인 제도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기업 총수 일가가 기업을 사유물처럼 전횡해 왔고, 순환출자 등을 통해 편법적으로 지배력을 높여왔다. 또 본인이나 친인척이 소유한 계열사(관계사)에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공정하지 않게 부를 축적해왔다. 이를 막기 위해 이런 한국적인 규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일가친척으로 구성된 자본가 집단’이란 의미의 재벌 규제를 위한 잣대로 네이버를 재단하는 것은 다소 무리다.

이해진 GIO의 네이버 지분율은 4.64%에 불과하다. 네이버와 계열사에는 이해진 GIO 친인척이 전혀 근무하지 않고 있으며, 친인척의 지분도 없다. 이해진 GIO는 라인의 스톡옵션을 제외하면 계열사 지분을 1주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이 GIO가 가진 것은 오직 네이버 지분 4.64%뿐이다.

네이버 지배구조
네이버 지배구조

또 네이버의 지배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순환출자는 전혀 없다. 대부분의 자회사 지분 100%를 모회사인 네이버가 소유하고 있으며, 손자회사는 자회사가 100% 소유하고 있다. 100% 소유하지 않은 계열사는 라인과 같은 상장사이거나 외부 회사의 지분 일부를 인수한 경우다.

이런 지배구조 때문에 총수 일가의 사적 이득을 위해 일감몰아주기를 할 수도, 할 이유도 없다. ‘갓뚜기’라 불리는 오뚜기의 함영준 회장조차 오뚜기라면에 일감을 몰아주고 17억원의 배당을 받는 한국 기업의 현실에서 네이버는 일종의 이단아와 같다.

네이버의 지배구조는 유사한 규모의 다른 한국 회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 만약 공정위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기업 지배구조의 상(像)이 있다면, 그것은 네이버 지배구조와 비슷할 것이다.

물론 이해진 GIO 가 네이버에서 목소리가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파워의 원천은 지분이 아니다. 그는 지분이 많지도 않고, 복잡한 지배구조나 순환출자로 지분의 힘을 부풀리지도 않았다.

그가 사내에서 가진 힘의 원천은 스티브 잡스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해진 GIO의 파워도 직원들과 주주들의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이해진이라는 인물이 이끈 네이버는 삼성SDS 사내벤처에서 시작해 대한민국 최대의 인터넷 회사로 성장했고 이제는 일본과 대만, 태국의 모바일메신저 시장을 평정했다. 주주들과 임직원들은 이해진이 이끌면 성공한다는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신뢰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이 의장은 지금 유럽 시장 개척에 매진하고 있는데 그의 도전이 실패로 귀결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다면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네이버라는 회사를 기존에 재벌 견제를 위해 만든 제도로 규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 지배구조 측면만을 보자면 공정위가 오히려 이해진 GIO와 네이버에게 상을 줘도 모자랄 지경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상적인(?) 지배구조 가진 회사를 일군 이 GIO에게 (준)대기업집단 ‘총수’라는 딱지는 왠지 지나치게 불명예스럽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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