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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석의 입장] 넷플릭스의 꽃놀이패

img_20170513110612_210ee1b8-1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오는 29일 개봉한다. 그런데 ‘개봉’이라는 단어가 왠지 좀 어색하다. ‘개봉’보다는 ‘서비스 개시’나 ‘론칭’이 더 잘어울릴 것 같다. 옥자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옥자’는 넷플릭스가 총 제작비 600억원을 투자해 제작한 영화다. 그런데 과연 옥자를 영화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보통 영화란 극장에서 상영하기 위해 만든 영상 콘텐츠를 의미한다. TV나 컴퓨터, 모바일로 영화를 볼 수는 있지만 이는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난 후의 이야기다.

반면 옥자는 6월 29일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동시에 개봉한다. OTT(over the top)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에서 영화를 동시에 개봉하는 사례는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는 넷플릭스에서만 서비스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봉준호 감독의 특별 요청으로 옥자는 극장에서도 동시에 개봉을 하게됐다고 한다.

문제는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은 옥자 상영을 거부하고 있다. 영화가 극장에 걸린 후 3주가 지나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할 수 있는 ‘홀드백’ 원칙을 위배했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옥자는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중소 멀티플렉스와 단관 영화관 등에만 걸린다. CGV 측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개봉을 동시에 한다는 건 영화 생태계를 교란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플랫폼의 성장을 막기 위한 대한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단체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극장과 배급을 독점하며 국내 영화산업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 노릇을 해온 이들에게 넷플릭스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옥자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넷플릭스가 혜택을 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옥자를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아도 넷플릭스가 손해볼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옥자는 원래 넷플릭스 회원 보라고 만든 영화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회원들에게 받은 돈으로 제작한 영화를 비회원들이 볼 수 있도록 극장상영을 허락했다.

넷플릭스가 착한 기업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넷플릭스로서는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옥자가 극장에서 흥행을 하게 되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파워를 증명하는 셈이다. 옥자를 보고 난 후 더 많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지가 보고 싶은 관객은 넷플릭스에 가입할 것이다.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의 방해로 옥자를 극장에서 보기 어려워져도 넷플릭스는 이득이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옥자를 찾아 넷플릭스로 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넷플릭스에 가입하면 옥자뿐 아니라 하우스오브카드와 같은 다른 오리지널 시리즈도 보게 될 것이다.

극장과 같은 전통적인 플랫폼이 기술을 기반으로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의 성장을 막기 위해 방해공작(?)을 펼치는 일은 매우 흔한 광경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이 싸움에서 기술 기반의 새로운 플랫폼이 이긴다는 점이다. 더 편하고 저렴한 방식을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넷플릭스는 영화 산업에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며 차세대 포식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회사다. 올해 전 세계 190개국에서 총 가입자 1억 명을 돌파했다. 1분기 매출은 26억 4000만 달러고, 콘텐츠 부문에 60억 달러를 쓸 계획이다.

넷플릭스가 준비하고 있는 6조6000억원의 콘텐츠 제작비는 봉준호 등 흥행 보증수표 감독들에게 투입될 것이다. 감독들에게도 넷플릭스는 매력적이다. 넷플릭스는 편집권을 감독이 갖고 있음을 보장하며, 개런티를 선지급한다. 콘텐츠 별 시청자 수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흥행에 대한 부담도 없다. 유명 영화감독들의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극장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까지 극장은 영화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을 무기로 삼았다. 그러나 이번 ‘옥자’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 전통적인 무기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극장은 이제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무기 대신 새로운 무기를 찾아야 할 것이다. 최선은 관람객에게 넷플릭스가 절대 제공할 수 없는 경험을 극장이 주는 것이다. 그것이 4D와 같은 하드웨어 설비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고, 음식이나 분위기 등 영화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부수적인 서비스일 수도 있다.

그것을 찾아내서 강화해야 하는 것이 기존 극장산업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옥자를 스크린에 안 올린다고 해서 막아질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재벌 멀티플렉스 극장이 옥자를 거부할수록 넷플릭스를 마케팅해주는 꼴이다. 넷플릭스는 꽃놀이패를 쥐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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