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M과 게임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
5월7일, 저는 지금 시드니에 있습니다. 이 먼 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게임 대회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유럽을 대표하는 게임 ESL(Electronic Sports League)이 주최하고 인텔이 지원하는 ‘인텔 익스트림 마스터즈(이하 IEM)’입니다. 이 대회는 전 세계를 돌며 스타크래프트, 리그오브레전드, 도타2 등의 우승자를 가리는 대회로 지난해 말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오버워치 대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시드니에서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 글로벌 오펜시브’의 결승전이 열렸습니다. 6일에는 4팀의 준결승이 열렸고, 7일에는 브라질의 ‘SK게이밍’과 유럽의 ‘페이즈(Faze)클랜’이 맞붙어 SK게이밍이 최종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갑자기 게임 이야기가 뜬금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사실 시드니에 올 때까지는 게임 대회를 보고 뭘 이야기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가기 몇 시간 전, 결과적으로 뭔가 그 동안 게임을 좁은 생각 안에 가두어 두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풀어봅니다.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해서 e스포츠 대회나 경기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니 많은 사람들이 놀라더군요. 게임을 즐기긴 하지만 남이 게임하는 걸 보는 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직접 게임을 할 시간도 없는데 남이 게임하는 걸 볼 여유가 없었고, 어렸을 적 오락실에서 남이 게임하는 걸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던 모습이 겹치면서 다소 부정적인 인식도 있었던 듯 합니다. 극단적으로 ‘e스포츠가 정말 스포츠인가’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시드니에 오는 동안 막연히 머릿속에 맴돌았떤 ‘제대로 온 게 맞나’ 했던 생각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도 지금 이 순간에는 ‘굉장한 스포츠다’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과거 하프라이프의 모드(Mod : modification, 개조 게임)로 시작했을 때 정도의 기억만 있었고 요즘 대회에 쓰이는 글로벌 오펜시브(CS:GO)는 이번 기회로 처음 마주했습니다. 지금은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흠뻑 빠졌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그 열기와 즐거운 에너지도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6일, 대회가 열리기 전에 자그마한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주최측인 ESL과 인텔의 임원들이 나와서 시드니에서 왜 IEM이 열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사실 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습니다. ESL의 상무이사 랄프 레이첼트는 아주 유쾌한 사람이었는데, 인터뷰 사이사이에 농담과 웃음을 섞으면서 “e스포츠는 남녀의 구분도 없고, 피부색이나 성적 정체성, 사회적 지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인데 뭔가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임 안에서는 사실 나와 맞붙는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똑같은 조건이 주어지고, 그 안에서 실력만 보는 것이지요. 신체적 조건과 관계 없는 평등한 경기라는 겁니다. 우리가 ‘스포츠 정신’이라고 하는 그것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요.
게임이 즐거운 것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시드니 올림픽 공원 내에 있는 쿠도스뱅크 아레나는 이틀 내내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쿠도스뱅크 아레나는 시드니 올림픽 때 지어진 꽤 큰 경기장으로 1만8천명 정도가 입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경기장은 이틀 내내 유료 관객들로 가득찼고, 입장을 위해서 선 줄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큼직한 대회들도 비슷하겠지요.
입장하자 입구의 널찍한 공간에는 인텔이 채운 VR 게임들이 가득했습니다. VR 게임은 아직 집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는 아니기에 너도나도 줄을 서서 게임을 즐겼습니다. 물을 한 통 사는 데에도 한참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들은 몰려 들었고, 곧 대회가 개막됐습니다.
일단 이 큰 경기장이 가득 찬 데에 놀랐고, 선수들이 입장하자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또 놀랐습니다. 그 이후는 여느 스포츠 경기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환호와 탄성이 이어졌고, 총알 하나 하나에 이 큰 경기장이 들썩였습니다. 둘째날 열린 SK게이밍과 페이즈클랜의 결승전은 손에 땀을 쥔다는 식상한 표현으로밖에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팀원들의 호흡과 코치의 전략이 매 라운드마다 경기의 흐름을 결정하고,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도 필요했습니다. 선수들을 향한 팬들의 응원도 여느 운동 경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게임은 이미 하나의 스포츠 시장이 됐고, 실제로 축구나 수퍼볼 팀처럼 연구도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조지 우 인텔 e스포츠 마케팅 매니저는 경기를 앞두고 e스포츠에 대해 “누구나 선수가 될 수도, 시청자가 될 수도 있는 게 e스포츠의 매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경기를 끝나고 나오면서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몇 년 전까지 게임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20여년 전 인터넷을 만나 스포츠 산업으로 성장했고, 지금도 모바일을 타고 또 다른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ESL의 랄프 레이첼트나 인텔의 조지 우는 “게임이 전업(Full time job)이 됐다”고 말합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이 거머쥔 상금도 26만 호주달러, 우리돈으로 약 2억2천만원이나 됩니다. 경기장은 가득 채워졌고 경기를 생중계하는 플랫폼인 트위치를 통해서 14만 명이 동시에 지켜보는 거대한 산업입니다. 인텔을 비롯한 IT 기업들이 후원사로 따라붙고 VR같은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기에 충분한 행사였습니다.
게임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고, 그 규모를 더 키울 겁니다. 인텔의 프랭크 소퀴 게이밍, VR 총괄은 “지금까지 12년 동안 IEM을 이끌어 왔는데 앞으로 3~4년 뒤 게임 시장은 가상현실이나 인텔의 초고속 메모리 기술인 ‘옵테인’ 등이 더해져 그 형태를 또 달리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흔한 게임 대회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 알고 있는 식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가치와 e스포츠의 의미, 그리도 게임 자체가 축제가 되는 현장에 대해 되짚어볼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의 게임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