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맵은 왜 무료가 됐을까
T맵이 무료화됐다. 심지어 기존에 결제한 이용자들에게는 대대적으로 환불까지 해준다. 파격적인 일이다. 그리고 T맵의 무료화는 기대했던대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SK텔레콤은 일주일 새 가입자가 43만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단순히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무료화를 선택한 것일까?
이제 국내에서 쓸 수 있는 내비게이션 앱은 모두 무료가 됐다. 자동차를 사면 으레 수 십 만원씩 들여서 달던 거치형 내비게이션의 역할을 화면 큰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 대체하기 시작했고, 그마저도 유료다. 사실상 거치형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사이의 차이도 별로 없고, 오히려 실시간 업데이트를 비롯해 스마트폰이 태생적으로 훨씬 유연하기 때문에 내비게이션 업체들 사이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 업계는 여전히 뜨겁다. 김기사(현 카카오내비)는 지난해 626억원 가치로 카카오에 인수됐다. 적지 않은 돈이다. 과하다는 평가와 납득할 만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가치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 대신 이용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료로 쓰면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내비게이션 시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SK텔레콤이 가입자들에게 주는 혜택 중 하나로 꼽혔던 T맵도 타 통신사에 무료로 풀렸다. 통신 시장 관점에서 보면 일반적인 무료 내비게이션과는 결이 다르다. SK텔레콤이 KT와 LG유플러스 이용자들을 위해 무료 서비스를 시작한 셈이기 때문이다. 대체 내비게이션 시장 뒤에 뭐가 있길래 고가에 팔리고, 타사 가입자를 끌어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사이에 무료로 풀어서 얻는 이득은 뭘까.
위치정보는 정보 중에서도 가치가 높은 편에 속한다. 이용자들은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궁금해하게 마련이다. 내비게이션 역시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서비스다. 또 하나는 지도에 뜨는 정보다. 지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광고판이다. 이는 사실 내비게이션 서비스의 오랜 수익모델이기도 하다.
최근 내비게이션은 단순한 길 안내 도구가 아니라 자동차와 무선 통신이 결합되는 텔레매틱스의 한 분류로 진화하고 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들은 차량의 정보를 분석하는 단말기 역할을 한다. SK텔레콤이 T맵을 개방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SK텔레콤은 보도자료를 통해 ‘T맵을 교통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낸 바 있다. 보도자료를 조금 더 옮겨보자.
T맵’의 가입자 기반 확대 및 플랫폼화를 통해 생활가치/IoT플랫폼 및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전기차 사업 등 잠재적 미래성장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결정 – SK텔레콤 보도자료
T맵은 지금처럼 통신사 가입자를 잡아두거나, 유료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로 쭉 이어갈 수도 있다. 그래도 T맵의 인지도는 높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존 결제분까지 모두 환불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건 이 사업 자체를 완전히 새로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가입자를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광고를 보여주기 위한 무료화로는 답이 안 나온다.
단적으로 SK텔레콤은 데이터 기반의 플랫폼을 노리는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부터 살펴보면 ‘운전 습관’ 메뉴다. T맵을 켜고 주행하면 스마트폰에 담긴 가속도 센서 등을 이용해 얼마나 차량을 안전하게 운전하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 정보를 고객 동의하에 자동차 보험사에 제공하고, 운전자는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보험료를 환급받는다. 안전하게 운전하면 보험료를 할인해 준다는 이야기다. 보험사는 이 평점 시스템으로 인해 사고율을 낮추고, 더 길게 보면 이 서비스 때문에 보험 서비스를 옮기는 그림을 보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지도 기반의 텔레매틱스가 효과적인 마케팅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 차량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가 타이어에 구멍이 났다거나 엔진오일을 바꿔야 하는 등 정비가 필요하면 경고와 함께 이동 경로에 있는 정비 센터를 안내해주는 것이다. 이용자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되고, 차량은 더 안전해진다. 마케팅은 덤이다. 차량 정보에 위치 정보가 더해졌을 때 가치가 단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이다.
SK텔레콤은 더 나아가 이용자가 늘어나면 T맵의 실시간 길 안내가 교통 분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더 나아가 사물인터넷이나 커넥티드 카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 이미 SK텔레콤은 르노삼성을 비롯해 차량들에 직접적으로 접목되고 있다. 통신과 길 안내 서비스를 모두 갖고 있는 SK텔레콤으로서는 아주 당연한 플랫폼 전략이다.
물론 이게 딱 하나의 정답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SK텔레콤이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지도를 어떻게 쓰느냐는 회사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전략은 그 만큼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카카오는 기존의 다음지도 서비스에 내비게이션을 붙이고자 카카오내비를 인수했고, 그 길안내를 통해 카카오택시와 카카오대리운전 등의 서비스를 확장했다. 카카오내비에서 수집되는 도로 정보는 다시 지도의 정확도를 높여준다. 똑같은 내비게이션 서비스지만 기업의 플랫폼에 따라 사용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구글이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하는 건 또 다른 이유다. 구글의 모든 서비스는 검색을 목적으로 한다. 검색 결과에 위치 정보를 함께 보여주거나, 혹은 그 반대로 지도에서 위치를 검색하면 그 결과에 구글 검색 결과를 덧붙이는 식이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 지도를 고도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구글의 내비게이션이다. 그리고 구글은 이를 기반으로 ‘안드로이드 오토’를 내놓고 차량 내부의 인터넷 환경을 끌어 안고자 한다. 애플이 온갖 불편과 불만을 감수하면서도 지도 서비스를 끌고 가는 것 역시 운영체제 플랫폼에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도와 위치 정보를 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은 이제 그저 단순한 길 안내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작은 기업들이 기술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운 시장이 됐다. 위치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다른 서비스와 접목하느냐에 대한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로 넘어가는 단계다. 모두가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무료라고 해서 공짜는 아니고, 길안내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서비스가 아닌 셈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호섭 기자> hs.choi@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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