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이어 또다시 인해전술…‘자비스’ 김범섭 대표
2년 전 쯤 ‘리멤버’라는 명함 관리 애플리케이션(앱)을 알게 됐을 때 나의 첫 느낌은 ‘황당하다’는 것이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명함을 찍어서 리멤버에 올리면, 회사(드라마앤컴퍼니) 측이 고용한 직원이 직접 명함의 정보를 타이핑해서 DB화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닌 인해전술로 사용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라니…
솔직히 잘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기술은 한 번 개발하기는 어렵지만, 개발된 이후에는 비용이 급격히 줄어든다. 하지만 리멤버처럼 인력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는 지속적으로 비용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리멤버는 꽤나 성공한 앱이 됐다. 현재는 가장 인기 있는 명함관리 앱으로 꼽힌다. 100만 명 이상이 리멤버 앱을 통해 명함을 관리하고 있다.
리멤버의 사례에서 적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IT 서비스의 본질은 이용자의 애로사항(pain point)을 해결하는 데 달려있다. 그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술을 개발하든, 사람이 몸빵을 하든 서비스 이용자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애로사항이 해결됐느냐 해결되지 않았느냐 여부만이 중요할 뿐이다.
리멤버 이전까지 명함관리 앱은 모두 문자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이 앱들의 문제점은 인식의 정확도가 100%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잘못된 글자가 입력되기도 하고, DB 필드가 바뀌어 입력되기도 했다. 앱 이용자들은 명함 사진을 찍은 후 잘 인식됐는지 확인하고, 틀린 부분이 있으면 수정해야 했다. 당연히 사용자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리멤버는 이런 애로사항을 모두 해소했다. 더이상 사진을 찍고 혹시 틀린 데이터가 저장되지 않았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리멤버를 만든 드라마앤컴퍼니 창업자였던 김범섭 대표 역시 이 과정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서비스는 사용자의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점, 이를 위해서 무조건 기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김범섭 대표는 지난 해 드라마앤컴퍼니를 퇴사하고 자비스앤빌런즈라는 회사를 새로 창업했다. 올초에는 ‘자비스’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리멤버에서 얻은 그 교훈(!)을 다시 자비스에 적용시켰다.
자비스는 간단히 말하면 기업의 세무회계업무와 같은 비본질적인 서비스를 대행해주는 서비스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직원이 스마트폰 앱으로 경비 영수증 사진을 찍어 올리면 전문 타이피스트가 데이터를 입력, 내역서를 자동으로 생성해준다. 사진을 찍어 올린 직원은 영수증처리를 위해 업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영수증 처리 대행에서 시작한 자비스는 세무, 회계, 노무 등 기업의 백엔드 업무 전반으로 영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김 대표는 “공부를 더 하려고 대학원에 입학했더니 가장 먼저 배운 것이 영수증 처리하는 법이었고, 창업을 했더니 서비스 고민보다 부수적인 일 처리에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더라”면서 “세무, 노무, 총무 등 경영지원 업무는 자비스에 맡기고 기업들은 제품과 서비스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창업 취지를 설명했다.
자비스는 사람과 기술의 조화를 표방한다. 김 대표가 리멤버를 통해 얻었던 교훈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세무기장과 같은 업무를 세무사무소에 외주를 주거나 더존비즈온 등의 회계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내부적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세무사무소에 외주를 주는 것은 비싸고, 회계프로그램은 문제를 대신 풀어주지 못한다.
자비스는 세무사무소에 맡기는 것보다 저렴하게, 회계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쉽게 세무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 대표는 “사람만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있고, 기술만으로 하는 서비스의 수준이 있는데, 저희는 이 둘을 조합해서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만들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자비스는 최근 머신러닝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서비스에 결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회계처리를 좀더 자동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수증을 찍어 올리면 인공지능 컴퓨터가 회계 계정 과목을 자동으로 입력해준다. 자동화된 회계처리를 하면서도 자비스 내부의 회계사가 이를 검증한다. 또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금과 현금흐름, 미수금 회수 시기 및 가능성을 예측하고, 부당하거나 불필요한 비용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부분과 기술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조합해서 현재 구현 가능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 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