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혈맹, 엑셈 연합군을 아십니까
12월 17일 저녁 6시 서울시 염창동에 있는 한 사무실로 일군의 아저씨(?)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화려한 행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두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이거나 주요 임직원이었다.
이들의 발길이 멈춘 곳은 코스닥에 상장된 소프트웨어 회사 ‘엑셈’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엑셈 연합군’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이었다. 도시락 하나씩 앞에 들고 마주앉은 이들은 연합군의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엑셈 연합군의 등장
엑셈은 데이터베이스 성능 모니터링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이다. 올해 코스닥에 상장됐다.
최근 엑셈의 행보를 보는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비딱했다. 이미 많은 국내 소프트웨어 상장사들이 보였던 예의 그 안 좋은 모습을 모습을 재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었다. 상장으로 확충한 돈을 연구개발이나 시장 개척에 투자하는 대신 다른 회사의 지분을 매입하는 데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상장 이후 본질이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공개(상장)라는 건 본래의 기업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 외부의 자본을 얻어오는 것인데,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는 상장 그 자체가 최종 목표가 될 때가 있다.
상장할 정도로 규모가 성장하면 더이상의 국내 시장은 없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장이 작기 때문이다. 상장으로 얻은 확충한 자본으로 해외 시장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지만, 큰 성과를 본 회사는 없다.
그러다보니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보다 돈 놓고 돈 먹는 자본시장 활동에 더 적극적이 되거나, 사모펀드나 헤지펀드와 같은 이들과 가까워지고 우회상장을 노리는 이들에게 회사를 대주기도 한다. 소위 ‘돈 맛’을 보고 변했다는 비판도 받게 된다.
엑셈의 행보는 마치 이와 유사하게 느껴졌다. 지난 6월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을 통해 코스닥에 우회상장한 이후, 여러 개의 회사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인수했다. 엑셈도 돈 놓고 돈 먹기에 들어가는 것일까?
엑셈 조종암 대표는 스스로 “코스닥 상장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자체적인 연구개발, 시장개척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 대표는 “기존에는 우리(엑셈)의 핵심역량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우리의 역량만으로는 변화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바뀌고 있다. 빅데이터와 클라우드으로 인해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엑셈은 오라클과 같은 관계형 DB 성능관리에 특화돼 있는데, 이 시장은 빅데이터와 클라우드로 인해 점차 축소될 수 있는 분야다.
그래서 조 대표가 생각한 것이 엑셈 연합군이다. 엑셈에 없는 역량을 가진 회사들을 인수하거나 지분투자 해서 연합군을 형성한 후 빅데이터와 클라우드라는 소프트웨어 산업계의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즉 상장사인 엑셈의 자본력을 이용해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분야에서 특출난 기술을 보유한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역량을 한 데 모으겠다는 비전이다.
엑셈 연합군은 현재 신시웨이(DB보안), 선재소프트(인메모리 DB), 아임클라우드(로그분석), 클라우다인(클라우드 및 빅데이터 플랫폼), 그루터(빅데이터 플랫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내년 초 데이터 분석 컨설팅 회사 인수를 예정해 두고 있다.
연합군 엿보기
엑셈 연합군은 16일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엑셈 연합군 1차 사업 전략 세미나’라는 이름을 달았다. 각기 다른 역량과 기술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함께 연합해 나갈 지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4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세미나를 지켜보니 몇 가지 느낄 수가 있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자신의 영역 이외의 다른 분야에는 관심도 없고, 정보도 없다는 점이었다. 이런 자세는 전문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우물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엑셈 박재호 상무는 다양한 하둡을 활용한 분석 플랫폼(데이터웨어하우스)를 테스트 해 본 결과를 발표했는데, 테스트 결과 현재 나와 있는 SQL온하둡(SQL on Hadoop) 기술이 SQL 호환성이 너무 낮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피보탈 호크의 존재를 몰랐다. 피보탈 호크는 ANSI-SQL과의 100% 호환성을 내세우는 SQL on Hadoop 기술로, 올초 오픈소스로 풀렸다. 박 상무는 성능모니터링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하둡과 같은 오프소스 쪽 소식은 잘 접하지 못한 듯 싶었다.
하지만 SQL on Hadoop 과 ANSI-SQL과의 호환성 문제에 대한 박 상무의 고민은 이 자리에서 금방 풀렸다. 빅데이터 전문회사인 클라우다인의 김병곤 대표가 호크의 존재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선재소프트 김기완 대표는 “데이터의 정합성(consistency)이 보장되지 않는 시스템(예를 들어 NoSQL)을 어떻게 DB라고 부를 수 있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안된다”면서 “오늘 세미나를 보니 내가 이제 꼰대가 됐나 싶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빅데이터 트렌드는 데이터의 정합성보다 분석의 성능, 확장성을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이해 안된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관계형 DB 최고 전문가이지만, 혼자만으로는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쪽의 흐름에는 뒤쳐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회사가 가진 문제를 공동으로 풀어보려는 논의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내부정보통제 솔루션을 공급하는 신시웨이는 너무 많은 보안로그 때문에 고민을 털어놨다. 로그가 3개월만 쌓이면 분석하기 힘든 규모가 된다는 것이 신시웨이 정재훈 대표의 솔직한 고민이었다.
이 세미나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이 이것저것 제안됐다. 당장 해결책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연합군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연합군이 내부적으로 공동의 개발자 인력 풀(Pool)을 운영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몇몇 회사가 힘을 모아보자는 시도를 엑셈 연합군이 처음하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IBM,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 공룡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벅차다. 이 때문에 싸이밸류 얼라이언스( 와이즈넛·투비소프트·야인소프트·알티베이스·큐브리드 등) 등 동맹을 시도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각 기업들이 각기의 사업에 바쁘고 사정이 있어 동맹의 성과가 크지는 않았다.
엑셈 연합군이 기존의 동맹과 다른 점은 지분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기존 회사들의 협력을 동맹이라고 한다면, 엑셈 연합군은 혈맹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혈맹에는 엑셈이라는 리더가 있다. 기존 동맹보다 좀더 기민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최초로 시도되는 연합 전략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그야말로 귀추가 주목된다.
<심재석 기자> 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