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질경이 회장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나선 이유는
핀테크 기업 피니버스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앞세워 글로벌 무역 결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무역 현장에서의 적용 사례와 해외 협력 모델을 잇달아 공개하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실사용처를 확보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피니버스는 자체 발행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여성 건강브랜드 질경이의 무역 결제에 시범 적용하고 있다.
피니버스는 인도네시아 디지털자산거래소 NOBI(노비)와의 협력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자동 발행 인프라’를 해외 시장에 처음 적용했다.
피니버스가 공개한 자동 발행 인프라는 원화 입금부터 정보 검증, 스테이블코인 발행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한 시스템이다. 블록체인 보안 기술인 zkTLS(영지식 기반 전송 보안 기술)를 활용한 ‘웹 프루프(WebProof)’ 구조를 적용했다. 민감한 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면서 거래의 진위 여부를 검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금융기관은 별도의 블록체인 전문 인력 없이도 규제 친화적 스테이블코인을 자체 발행할 수 있다.
질경이 회장 겸 피니버스 최원석 대표는 일본, 중국, 라오스, 말레이시아 등과의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율 변동, 달러 유동성 부족, 송금 지연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꼽고 있다.
최원석 대표는 중소기업에게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행 중심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실질적 운영 능력과 현장 적용 사례를 갖춘 주체에게 발행 기회를 주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그를 만나 피니버스의 전략과 실제 현장 적용 사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질경이 회장이 피니버스를 창업하게 된 배경은
그간 사업을 하며 겪어온 경험이 피니버스 창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질경이는 2016~2017년 가상자산이 크게 주목받던 시기를 경험하며, 여성 제품으로 특화된 브랜드를 가상자산화하면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다. ICO(가상자산공개) 참여 권유도 있었지만 기술 이해가 쉽지 않아 실행하지 못했다.
질경이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충성 고객층이 있었다. 충성고객들이 다른 고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냈고, 충성고객 1만명을 대상으로 상징적 의미로 주식을 나눠주고 싶다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또한 동네 마트 배달 플랫폼 ‘로마켓’을 운영하며 전국에 있는 마트를 융합하는 방식을 구상했다. 동네 마트를 작은 쿠팡으로 보는 방식으로, 쿠팡과 달리 로마켓은 각 지역 마트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조직이 뭉치면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동네 마트에 모이는 충성 고객들의 결속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주식을 나눠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현재로 보면 STO(증권형토큰)와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주식을 나눠주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가상자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기존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법을 찾으려 했지만 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질경이의 무역 과정에서도 한계를 체감했다. 무역에서는 전환 수출과 대금 결제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고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결제는 스위프트망(글로벌 결제·통신망)을 통해 이뤄지지만, 불합리한 구조로 느껴졌다. 달러를 확보하기 어려워 무역 결제 대금이 지연되는 경험도 있었다. 이러한 실제 생활과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자산이 큰 해법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가 혁신기업이어야 하는 이유는
금융권이 맡게 되면 안정성은 확보할 수 있겠지만 글로벌 시장은 느리게 돌아가지 않는다. 특히 디지털자산은 개발 속도가 빠르고, 다양한 시도가 동시에 이뤄지는 영역이다. 은행권과 협업 논의를 해보면 어쩔 수 없이 의사결정이 보수적이다. 대표적인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 또한 은행이 아니다.
혁신기업이나 스타트업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문제와 수요를 바탕으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필요한 기능을 민첩하게 만들고, 변화에 적응하며 해결책을 곧바로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 의사결정 구조 역시 상대적으로 빠르다. 물론 금융권은 금융권만의 안정성이 있고 그 역할이 있다. 다만 동등한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피니버스는 무역에 활용될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중심에 두고 있다. 무역 결제 분야에 특화해 사업을 해오다 보니 그 안에서 이뤄지는 시스템 전반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허가되면 신속하게 대응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설계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나
피니버스는 기술적 구조와 운영 방식에서 차별점을 두고 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일이다. 안정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새로운 시도는 나오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미 시장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성만을 이유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발행 자체가 핵심은 아니다. 발행 이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얼마나 활성화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결국 운영 역량이 있는 곳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너무 많으면 혼선이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혼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는 스스로 정화하고 정제하는 기능이 있다. 기회는 열어주되 엄격한 심사 기준을 갖추고 운영 능력과 기술적 역량을 검증해야 한다. 투명성은 국가가 관리·감독하며 보증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유통 물량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얼마나 많이 발행돼 전 세계에서 유통되느냐가 중요하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생사인 테더는 기관 거래처가 200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 물량은 기관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결국 기관을 얼마나 확보하고 유통 물량을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질경이 무역거래에 피니버스의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어떻게 적용했나
무역 결제대금을 피니버스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KORT(코트)로 결제하기로 합의하면 된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질경이 수입 업체는 인도네시아 통화인 루피아를 달러로 환전하지 않고, 디지털자산거래소 NOBI(노비)에서 루피아로 KORT를 매수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가령 수출업체가 10억원어치 질경이 제품을 공급할 경우, 수입업체는 10억원어치 KORT를 루피아로 매수해 수출업체 지갑으로 전송한다. 연기식 증명 방식을 통해 구체적인 신원 인증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송금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은 피니버스가 인도네시아 NOBI와 체결한 업무협약(MOU)을 기반으로 진행됐다. 향후 국내 법제화 과정에 맞춰 KORT를 해당 거래소에 상장할 예정이다. 또한 인도네시아 내 복수의 대형 거래소에도 상장을 추진할 예정이다.
피니버스가 발행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은 무엇인가
현재 구조에서는 원화를 달러로 환전한 뒤, 다시 달러를 인도네시아 통화인 루피아로 환전해야 한다. 은행에 결제대금이 입금돼도 실제 자금을 받기까지 며칠이 걸리고, 환전 수수료도 2~3% 수준이다. 반면 KORT를 활용하면 수수료를 0.04% 수준으로 낮출 수 있어 경쟁력이 높다.
기존 무역 결제 방식과 비교해 처리 속도도 크게 단축된다. 국제 송금은 시간이 걸리지만, KORT를 활용하면 결제가 분 단위로 가능하다. 달러를 직접 보유하거나 조달할 필요가 없고, 환율은 국제 거래소 시세에 따라 실시간으로 정해진다. 현재 원화와 루피아 간 거래 환율도 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질경이를 비롯해 다양한 국내 기업과 수출입 업체로 확장이 가능하다.
피니버스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로서 자격이 필요한 이유는, 현지 기업이 루피아로 KORT를 구매한 뒤 이를 한국으로 보내 원화로 교환·정산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피니버스는 KORT를 발행하고 국내 디지털자산거래소에 상장해 원화로 환전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가가 나오면 즉시 작동할 수 있도록, 피니버스는 유통·정산 시스템을 사전에 구축해둔 상태다.
질경이 이외에 다른 기업들로도 확장할 수 있나
현재 질경이와 거래하는 인도네시아 내 수출입 업체들은 모두 해당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전제로 논의해왔다. 또한 인도네시아 한인 상공회의소와도 접촉해왔다. 한국의 대한상공회의소와 유사한 성격으로, 대기업까지 포함돼 있다. 자원 수출입과 원자재 거래를 활발히 하는 기업들이 다수 소속돼 있다. 이들에게 피니버스를 소개하고 구조와 장점을 설명했다.
가상자산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는 않더라도, 무역 대금이 분 단위로 처리되고 수수료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반응을 얻었다. 회원사 회장단과 부회장단을 직접 만나 미팅을 진행했고, 발행만 되면 사용하겠다는 구두 약속도 확보했다. 구체적인 사안은 업무협약 체결로 이어지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베트남, 태국 등으로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 몽골 개발은행과도 이야기를 진행 중이다. 몽골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과 교역량이 많다. 해당 지역으로도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달러 확보가 어려운 비달러 국가들과의 거래에서 수요가 존재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시작되면 곧바로 해외 시장으로 나가는 전략이다.
현재 국내 은행과 협업한 내용은 무엇인가
운영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기술적 논의도 병행하고 있다. 영지식 증명을 적용한 다양한 방식을 시험하려 한다. 블록체인상에서 거래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기술은 존재하지만, 일부 고급 기술에서는 실제로 보내지 않고도 보낸 것처럼 허위 작성이 가능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보낸 사실’만 확인하고, 구체적인 정보는 노출하지 않는 방식을 채택한다. 가령, A가 B에게 100만원을 보냈을 때, 누구에게 보냈는지와 같은 개인정보는 전혀 공개하지 않으면서 실제로 100만원이 이동했다는 사실만 검증하는 구조다. 보내지 않았는데 받은 것처럼 처리되는 사기 거래를 방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은행과 함께 검증해야 하는 이유는 자금의 실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발행사 입장에서는 계좌에 자금이 입금되면 이를 확인하고 해당 금액만큼 코인을 발행하면 된다. 과거처럼 전화로 일일이 확인하는 아날로그 방식이 아니라, 은행 계좌로 자금이 들어오는 즉시 원하는 지갑으로 토큰을 보내는 구조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은행과의 제휴가 필수적이다. 계좌가 필요하기 때문에 별도의 사금고 방식으로 처리할 수 없다.
또한 은행은 고객확인제도(KYC)와 자금세탁방지(AML) 등 내부 통제 체계를 갖추고 있다. 무역 대금의 특성상 자금이 실제 거래에 기반한 것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영지식 증명 기술은 피니버스가 적용하고, 은행은 자금 입금과 거래 적법성을 동시에 검증하는 구조다. 중소기업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더라도 준비금은 결국 은행에 예치될 수밖에 없다. 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안정성과 기술적 검증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준비는 이미 마친 상태다. 현재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는 단계이며, 기회만 주어진다면 즉시 출발할 수 있도록 시동도 걸어둔 상태다. 다른 기업들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단계라면, 이 구조는 이미 실무에 필요한 수단으로 설계돼 있다. 필요한 제도적 기반만 마련되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특정 주체가 맡아야 한다는 형식적 구분이 아니라, 질적으로 준비돼 있고 충분한 수행 능력을 갖춘 곳에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경쟁력과 국가 차원의 금융 경쟁력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금융 안정성은 이미 국가가 인허가 권한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행 주체 단계에서 안정성만을 이유로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차라리 기술적 구현 가능성과 실제 운영 역량이 뛰어난 곳에 기회를 주고, 시장에서 검증받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도태될 영역이다.
손익분기점(BEP)을 맞추려면 발행 규모가 최소 1500억원 이상은 돼야 한다. 결국 그 수준의 발행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시장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1500억원 이상 발행을 위해서는 상당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옥석이 가려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