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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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규제 샌드박스의 배신

금융위원회가 토큰증권(STO) 장외거래소 신규 인가 절차를 진행하는 가운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STO 시장을 개척해 온 루센트블록이 인가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제도 도입을 앞두고 가장 먼저 실험에 나섰던 기업이 오히려 제도권 문턱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융규제 샌드박스라는 제도의 본질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샌드박스의 취지는 분명하다. 기존 질서를 흔들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곧바로 제도권에 편입시키는 대신,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자유를 허용해 위험과 가능성을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험을 허용하되, 그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를 약속하는 제도다.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은 자발적으로 ‘실험체’가 된다. 제도가 요구하는 조건에 따라 사업을 설계하고, 제한된 환경 속에서 시장성과 안정성을 증명한다. 실험이 성공하면 제도권 진입이라는 보상이 뒤따를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가 공적 약속에 기반하고 있다는 믿음이 실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혁신은 개인의 용기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제도가 그 용기를 제도적으로 보증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문제는 실험이 끝난 이후다. 실험 과정에서 산업과 시장의 가능성이 확인됐음에도, 기존 시스템이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부담스러워하는 순간 약속은 쉽게 흔들린다. 이미 형성된 이해관계 속에서 기존 주체들이 자신의 몫을 나누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것이 의무가 아니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실험의 대가로 일정한 자유와 기회를 약속해 놓고, 이제 와 그 약속을 거둬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는 결국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루센트블록은 위험을 감수했고, 투자자와 파트너 역시 그 실험을 함께 감내했다. 이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혁신의 통로가 아니라 소모의 장치로 인식된다. 다음 실험에 나설 스타트업이 줄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루센트블록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럴 것이면 왜 실험체가 될 기회를 줬느냐는 것이다. 실험이 성공하면 부여하겠다고 했던 자유와 지위는 어디로 갔느냐는 물음이다. 산업과 시장의 존재를 증명했음에도 그 성과를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라면, 이는 특정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제도의 결함에 가깝다.

스타트업은 모르모트, 즉 기니피그가 아니다. 실험이 끝났다면 그 결과에 대한 평가와 약속의 이행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혁신을 키우는 제도가 아니라, 혁신을 시험만 하고 소진시키는 장치로 남는다. 그리고 다음 실험체는 더 이상 스스로 실험대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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