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없는데 공장이 어떻게 로봇을 써요?”

흔히들 말한다. 다음 대세는 피지컬 AI라고. 거대 자본이 싸우는 이 큰 판에서도, 손기술이 좋은 대한민국은 어떻게든 제조 부문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현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 로봇이 보고 배울 데이터가 없는데 어떻게 피지컬 AI를 잘 해?”

공장 현장에서 로봇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언어 모델을 학습시키는 것보다 수만 배 어렵다. 인터넷엔 우리가 떠드는 수많은 말이 무더기로 쌓여있지만, 로봇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보고 배울 공장에서의 행동 데이터는 인터넷에 없기 때문이다.

로봇 학습에 쓸 ‘고품질 데이터’ 부족 문제를 풀겠다는 스타트업 카본식스는 수아랩 창업자 출신인 문태연 대표가 만들었다. 다음 이정표는 피지컬 AI에서 찍겠다는 목표를 갖고 확실한 기술 파트너로 미국 MIT에서 로보틱스를 전공한 서형주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영입했다. 미국으로 직접 날아가 학계에 자리잡으려던 서 CTO를 꼬시면서 문 대표는 “피지컬 AI 현장에서 가장 고도화된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현장의 진짜 문제를 풀고 싶었다”는 서형주 CTO를 최근 서울 강남에 위치한 카본식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 CTO는 카본식스가 현재 제조업계의 가장 큰 숙제인 ‘데이터 부재’ 문제를 어떻게 정면 돌파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현장은 휘발되는 데이터의 광산, 어떻게 데이터를 캘 것인가”

카본식스가 바라보는 제조 현장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엄청난 가치를 지닌 데이터가 매일같이 버려지는 ‘광산’이다. 지금까지 공장 숙련공의 손기술은 ‘감’이라는 이름 아래 디지털화되지 못한 채 휘발되어 왔기 때문이다. 물건을 어떻게 만드는지, 공장에선 매일 노하우가 집약되지만 그 경험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서형주 CTO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데 필요한 데이터는 사람이 물건을 잡고 옮기는 미세한 모션 속에 숨겨져 있다”고 설명한다. 여러 기업이, 이 미세한 모션을 어떻게 로봇이 배울 수 있게 할 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누구도 ‘정답’이란 걸 갖고 나오진 못했다. 아주 많은 데이터를 모아서 학습을 시켜야 할 지, 양은 다소 적더라도 정확한 데이터만 가져와 로봇을 가르쳐야 할 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서형주 카본식스 CTO

카본식스는 이런 상황에서 나름의 무기로 ‘시그마 키트’란 걸 만들어 냈다.

“제조 현장마다 로봇이 하는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

시그마 키트의 전제 조건이다. 우리 공장은 자동차 도장만 할 수도 있고, 또 당신네 공장은 작은 부품을 잡아 섬세하게 조립하는 게 주력일 수도 있다. 또 건너 편 저 공장은 흔들리는 고리에 물건을 매다는 데 로봇을 쓰고 싶을 수도 있다. 이들 로봇에 공통으로 적용될 표준화된 작업이나 데이터란 없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제조 현장마다 필요로 하는 로봇의 역할을 그때 그때 가르치자”

이게 카본식스가 찾은 방법이자, 시그마 키트의 경쟁력이다. 데이터를 수천 수만개 모을 필요 없이 그 현장에 적합한 정확한 데이터를 수십개라도 모아 확실한 교육을 로봇에 시키는 거다. 영상을 찍고, 실제 로봇이 받는 저항과 좌표값을 동시에 수집해 교육 시킨다면, 최소한 그 현장에서 이 로봇은 제법 작업 좀 하는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카본식스의 주장이다. 이는 마치 테슬라가 수백만 대의 차량으로부터 주행 데이터를 수집해 자율주행을 고도화하듯, 제조 현장의 모든 움직임을 AI의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현장에서 로봇을 교육 시킬 데이터를 모아야 하므로, 시그마 키트의 조작이 어려워선 안 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로봇을 직관적으로 조종하며 데이터를 쌓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시그마 키트의 경쟁력이다. 사람이 특수한 그리퍼나 센서를 착용하고 직접 작업을 수행하면, AI는 사람의 손 근육 움직임과 로봇 팔의 관절값을 동기화해 학습하는 식이다. 마치 인형 뽑기를 하듯, 직관적으로 로봇을 조종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AI가 ‘실수했을 때 대처하는 법’을 어떻게 배우느냐다. 카본식스는 로봇이 실패하는 상황에서 사람이 개입해 수정해주는 데이터를 중시한다. 서 CTO는 “로봇이 잘하는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잘못됐을 때 어떻게 복구하는지를 가르치는 피드백 학습(Human-in-the-loop)이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데이터 플랫폼이 되겠다

카본식스는 스스로를 단순한 로봇 제조사가 아닌 ‘플랫폼 기업’으로 정의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그마 키트는 모든 현장에서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가서 배운다. 그덕에 특정 로봇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고, 어떤 로봇이든 카본식스의 소프트웨어를 입히면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서 CTO의 지론이다 .

조작이 비교적 쉽다는 것은 현장 작업자들이 복잡한 코딩 없이도 로봇에게 새로운 공정을 가르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웹사이트에 모든 제품 정보와 위치가 연동되어 관리된다”는 서 CTO의 설명처럼, 공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허브로 기능하게 될 가능성이 보인다.

최근 유행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해서 서 CTO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제조 현장은 매번 환경이 바뀌고 도구가 달라지는데, 범용적인 휴머노이드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하기엔 아직 비용 대비 효율(ROI)이 낮다는 판단이다. 카본식스가 당장 현장에 투입되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특정 공정용 AI 모델에 집중하는 이유다.

서 CTO는 “제조업은 투자한 만큼 뽑아내야 하는 냉정한 세계”라고 말하면서 “파트너사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실제 제품 품질을 높이고 불량률을 낮추는 데 데이터를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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