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RV·BC카드, 왜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에 나섰나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디에스알브이(DSRV)가 BC카드와 함께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를 공동 구축한다. 블록체인 기술과 전통 금융을 결합해 새로운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마련하려는 전략적 협업으로 해석된다.
2019년 설립된 DSRV는 현재 16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이더리움 스테이킹(가상자산 예치) 부문에서 국내 1위, 글로벌 9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4조원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또한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선스를 보유해 차세대 금융 인프라 기업으로서의 기반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두 기업은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송금이 실물 상거래에 적용될 수 있도록 블록체인 결제 기술의 새로운 표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상용화해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장을 조기에 활성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협업 범위는 ▲BC카드 결제 인프라와 DSRV 블록체인 인프라 간 상호운용성 구축 ▲페이북 플랫폼 내 월렛 솔루션 연동을 위한 공동 실증 사업 ▲디지털 자산 관련 추가 공동 사업 발굴 등으로 구성된다.
BC카드와의 협업은 정지윤 DSRV 사업총괄(COO) 이사가 이끌고 있다. 정 이사는 다올금융그룹 디지털금융본부, NHN 페이코(PAYCO) 페이먼트정책실, IBK기업은행 핀테크사업부를 거친 25년 경력의 금융권 전문가다.
현재 두 기업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매주 1~2회 회의를 진행하며 긴밀한 협업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 이사를 통해 두 인프라 기업의 협업 배경과 진행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봤다.
DSRV와 BC카드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나
협업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첫 번째는 BC카드의 플랫폼 ‘페이북’에 DSRV 지갑 연동 가능성을 실증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페이북 이용자가 블록체인 기반 월렛 기능을 별도의 절차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두 번째는 BC카드 인프라에 DSRV의 블록체인 기술 접목 가능성을 연구하는 방향이다.
현재는 월렛 연동 구조를 함께 검토하는 단계다. 국내 최고 수준의 결제 인프라를 운영해온 BC카드의 노하우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양측이 기술 구조와 서비스 흐름 전반을 함께 검토하며 카드시스템과 블록체인 서비스를 조율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DSRV 월렛의 특징은 무엇인가
DSRV 월렛은 MPC(다자간 개인키 분산 관리) 기반 구조로 설계돼 있다. 개인키를 하나의 장소에 보관하지 않고 여러 조각으로 분산해 관리하는 방식이어서 보안성과 복구 편의성이 모두 높아진 형태를 갖추고 있다. 사용자가 설정한 조건값에 따라 결제나 승인 절차가 자동으로 이뤄지도록 설계한 점도 특징이다. 특히 기존 월렛이 가진 가장 큰 문제인 키 분실 시 복구의 어려움을 MPC 방식으로 해소했다. 개인키가 조각난 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에 앱을 재설치하더라도 사용자가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끊김 없이 복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BC카드는 고객사들에게 DSRV의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하나
DSRV는 기업이 웹3.0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 서비스 경험이 끊기지 않도록 뒷단에서 인프라를 제공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웹2.0 기업이 지갑이나 노드 같은 블록체인 기능을 자체 개발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그렇기에 DSRV는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기반의 ‘포털’을 통해 금융사가 필요한 기능을 선택 즉시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포털에는 지갑, 노드, 커스터디, 스테이킹, 스테이블코인 매니저 등 핵심 블록체인 기능이 모듈 형태로 담겨 있다.
현재 BC카드는 포털 내 지갑 서비스 도입을 위한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DSRV의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BC카드는 자사 고객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지갑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모델이 유효한지 검증하게 된다. 이를 통해 BC카드는 향후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 분야 확장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전통 금융 서비스에 월렛이 연결되면 이용자에게 어떤 점이 좋은가
금융사가 월렛에 어떤 서비스를 담을지 치열하게 검토하고 있어 아직 구체적인 기능을 공개하기는 이른 시기다. 다만 내년 3월께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며, 단순히 기능을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용자가 하나의 흐름으로 끊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 시나리오까지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금융의 출발점은 계좌인데, 지금까지 그 계좌의 원천 주인은 은행이었다. 앞으로는 카드사가 이 계좌 기반을 확보하게 되면서 상상할 수 있는 활용 폭이 한층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카드사 서비스를 통해 더 다양한 금융·자산 기능을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는 구조가 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DSRV의 포털 지갑 서비스를 은행권 시스템에 내재화하는 건가
금융사가 제공된 인프라를 ‘내재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웹3.0의 원장을 구독해 활용하는 구조에 가깝다. 블록체인이 기본적으로 클라우드 기반으로 운영되는 만큼, 금융사가 과거처럼 온프레미스(자체 서버에 설치해 운영하는 방식) 형태로 솔루션을 들이거나, SI(시스템 통합) 업체가 대규모로 투입돼 시스템을 붙이던 기존 방식과는 다른 접근을 취하게 된다.
웹 2.0의 경험을 웹 3.0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하려면, 기술 기업이 중간 게이트웨이(통로)에서 온체인(블록체인 내 모든 데이터) 환경을 안정적으로 연결해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금융사의 레거시 시스템에 직접 솔루션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구현하는 모델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물론 금융사는 오랫동안 자체 데이터센터에 솔루션을 설치하는 온프레미스 방식을 기본으로 운영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클라우드 기반 모델이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금융권에서도 클라우드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어, 이러한 구독형 모델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전환이라 보고 있다. 슬랙이나 노션을 기업이 구독해 사용하는 방식과 유사한 구조다.
보안 측면에서는 내재화가 더 유리한 거 아닌가
과거에는 시스템을 내부에 가두는 내재화 방식이 더 안전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금융사 내부 서버에서 직접 운영하면 외부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금융사도 대규모 인프라를 클라우드로 이전하면서 보안성에 대한 기준과 검증 체계가 확립됐다. 클라우드 기반 금융 서비스는 반드시 금융권의 ‘클라우드 적합성 검토’를 통과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데이터 보호·접근 통제·암호화·모니터링 등 보안 요구사항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DSRV 역시 금융사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동일한 보안 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검증을 거친 상태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게 된다. 외부 구독형 모델이라고 해서 보안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금융권 규제 수준의 보안을 갖춘 상태에서 제공되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즉, 단순히 ‘내부에 두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시대는 지나고, 검증된 클라우드 인프라 기반 서비스 역시 금융사가 요구하는 보안성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DSRV가 금융 고객사에게 직접 제공하면 안 되나
은행·증권 등 전통 금융권에서는 인프라가 한 번에 ‘빅뱅’처럼 전환되는 일은 거의 없다. 간편결제가 이렇게 발달했는데도 여전히 카드 번호를 직접 입력해 결제하는 사례가 존재하듯, 이용자 경험과 시스템 구조가 한순간에 바뀌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궁극적으로는 웹3.0 기반의 통합 월렛 안에 디지털 예금토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토큰화된 채권과 펀드, 토큰증권(STO) 등 다양한 디지털 자산이 함께 담기게 된다. 대출과 투자 등 금융 상품 간의 전환 비용이 낮아지고,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금융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로 하나씩 단계를 밟아야 한다.
DSRV는 전통 금융사들이 웹 3.0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규제에 대한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특히 DSRV는 지난해 9월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선스를 취득하며, 자금세탁방지(AML) 와 금융 규제 준수 역량을 대외적으로 검증받았다. 이는 보안과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전통 금융사들이 안심하고 협업을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DSRV가 다른 기술 기업보다 갖는 강점은 무엇인가
DSRV의 강점은 70개 이상 프로토콜에서 검증인(밸리데이터) 역할을 맡으며 축적해온 운영 경험이다. 대규모 트래픽을 꾸준히 안정적으로 처리해 왔고,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미싱(블록 제안 누락)이나 슬래싱(규칙 위반에 따른 페널티)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다. 고객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해 온 이력 자체가 기술적 신뢰성과 서비스 안정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은 BC카드의 엄격한 내부 통제 기준을 충족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BC카드의 설계 구조에 맞춰 지갑을 안정적으로 연동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고 있으며, 실제로 해당 기준을 충족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완성도 역시 충분히 입증됐다는 평가다.
아울러 글로벌 최상위 수준으로 평가받는 검증인 기술력을 기반으로 커스터디와 스테이킹 등 블록체인 코어 인프라 전반으로 확장해 왔다. 이 경험은 웹2.0 기업이 웹3.0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웹 2.5 기관형 플랫폼’ 방식으로 지원하는 데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규제 친화성을 중시하는 내부 문화와 높은 정책 이해도도 빠르고 안정적인 도입을 가능하게 하는 차별 요소로 꼽힌다.
전통 금융권은 블록체인 기술 기업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남아 있지 않나
거부감은 실제로 존재한다. 다만 최근 분위기는 매우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은행·카드사·PG사 관계자들이 작년과 비교해 확연히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내부 인식이 이미 형성돼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제도권 친화적 대상이 등장하면서 웹3.0으로 진출할 때 무엇을 매개로 삼을지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제공하는 투명성·효율성·자동화는 기존 레거시 시스템의 비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영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통 금융권 역시 이 지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다양한 디지털 자산과 연결되는 기반이 마련되면서 블록체인에 진입해야 할 당위성도 명확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디지털 자산 시장이 약세임에도 스테이블코인은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디지털 금융 시대의 기축 통화로 자리 잡고 있다. 기축 통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제도권 안에서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제 기술의 ‘표준’을 마련한다는 건 왜 중요한가
결제 표준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깊이 체득해 왔다. 과거 서병윤 공동대표와 함께 오픈뱅킹의 전신인 ‘금융권 공동 오픈 플랫폼’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펌뱅킹을 쓰기 어려웠던 영세 핀테크 기업들에게 동일한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은행 6곳, 금융위원회, 금융결제원이 약 1년 동안 표준을 만드는 데 매달렸다. 그 과정에서 마련된 체계가 지금의 오픈뱅킹 확장에도 큰 사고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이때의 경험이 표준의 가치에 대한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개별 기업이 각자 실험을 이어가면 시장은 필연적으로 파편화되고, 생태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어렵다. 반면 표준은 다수의 플레이어가 같은 규칙 아래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이며, 이 장치가 마련돼야 시장 전체가 동일한 방향으로 속도감 있게 움직일 수 있다. 한국에서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제도권으로 진입했음에도 어떤 형태가 표준인지 합의가 없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
한 기업이 홀로 시장을 키울 수는 없다. 표준이 정립되지 않으면 생태계는 계속 쪼개지고, 그 자체가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 제약이 된다. 표준은 단순한 기술 사양이 아니라 규제 적합성과 시스템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기본 토대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기술 기업들이 이러한 표준 구축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DSRV는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인데, 은행이 되고 싶은 건가
DSRV가 지향하는 것은 ‘은행’이라는 물리적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금융을 수출하고 싶다는 오랜 바람처럼, 핵심은 은행의 역할을 기술 형태로 제공하는 ‘뱅킹’ 자체에 있다. 은행이라는 기관은 형태가 변할 수 있지만, 결제·정산·신뢰를 제공하는 뱅킹 기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DSRV가 제공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특정 기관의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의 신뢰와 포용성을 인프라로 구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 시스템을 물리적 조직이 아닌 기술 기반으로 전달하는 기업에 가깝고, 앞으로도 그 역할을 더 확장해 나가고자 하고 있다.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