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상자산 커스터디 기업 비댁스가 서클과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법
국내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기업 비댁스가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USDC) 발행사 서클과 협력해 국내 최초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나선다. 비댁스는 서클의 스테이블 코인 전용 블록체인 메인넷(정식 블록체인 네트워크) ‘아크(Arc)’의 한국 파트너로 선정됐다.
아크 블록체인은 기존 블록체인의 확장성과 거래 속도, 수수료 문제를 개선하고 스테이블 코인 금융에 필요한 기능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거래 수수료를 USDC로 통일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이용 절차를 단순화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서클은 지난 28일(현지 시간) 아크 퍼블릭 테스트넷(공개 테스트망) 출시를 발표하며 전 세계 100여개 기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참여 기업에는 블랙록, 비자(VISA) 등 주요 금융·기술 기업이 포함됐다. 국내에서는 비댁스(스테이블 코인과 자산 발행자 부분) 외에 헥토이노베이션(개발자 지원-디지털 지갑 부분), 헥토파이낸셜(글로벌 결제, 기술, 핀테크 생태계 부분), 교보생명(은행, 자산운용사, 보험사 부분) 등이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비댁스는 아크 네트워크의 파트너 그룹에 합류하며, 아크 블록체인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KRW1’을 발행할 예정이다. KRW1은 비댁스가 2023년 12월 상표 등록을 완료한 독자적 원화 스테이블 코인으로, 현재 아발란체 블록체인에서 발행되고 있다. 앞으로는 서클의 아크 블록체인에서도 발행될 예정이다.
류홍열 비댁스 대표는 한국을 디지털 금융 허브로 도약시키는 데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류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클이 비댁스를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로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커스터디 기업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KRW1 발행사로 합류한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 비댁스는 KRW1 발행 관리 시스템과 사용자 간 이체 및 검증이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앱)까지 개발해 실제 유통 환경을 구현했다. 증거금 구조 또한 100% 원화 담보율을 기반으로 하며, 증거금은 전략적 파트너인 우리은행 계좌에 예치된다.
API 연동(응용 프로그램 간 통신)을 통해 담보금 상태가 실시간으로 확인·검증되며, 이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국내에서는 기술적으로 이를 완비한 회사가 아직 없기에, 그것이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서클의 확장 움직임이다. 테더에서 발행하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인 USDT가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앞서 있었다. 과거에는 거의 80~90%가 USDT였고, 서클은 한 10% 수준이었다. 지금은 거의 6 대 4 정도로 서클이 따라왔다.
USDC를 계속 확장하고자 하는 서클이 한국에서 직접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것은 부담일 것이다. 한국에 진출한다고 하면 법인 설립과 관련 라이선스 확보 등 모든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서클이 굳이 어려움을 떠안기보다는 믿을 만한 로컬(지역) 파트너를 찾아 협업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서클이 시장 점유율을 뒤집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일종의 얼라이언스(연합)를 구축해 확장을 시도하는 것이다. 서클이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었던 계기는 규제 측면의 신뢰성이다. 국내에서도 테더가 아닌 서클이어서 거부감도 덜할 거라고 생각한다.
KRW1은 다른 스테이블 코인과 무엇이 다른가
KRW1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방성과 거버넌스(운영·관리 체계)에 있다. 국내에서는 보통 메인넷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모든 것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것을 만들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쓰면 된다는 방식이다. 문제는 비용과 시간, 노력이 너무 많이 든다. 또 기술이 시장에서 인정받고 채택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비댁스의 KRW1은 해외에서도 여러 메인넷을 활용할 수 있도록 상호운용성(호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퍼블릭(공개형) 체인뿐만 아니라 프라이빗(비공개형) 체인에서도 발행할 수 있는 기술적 개방성을 갖춘 것이 KRW1의 가장 큰 강점이다. 기존에 만들어진 체인이나 앞으로 만들어질 체인에서도 KRW1이 발행되고 유통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두 번째는 거버넌스 측면이다. 단독으로 모든 것을 내부에서 처리하기보다는, 투명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운영위원회, 감사위원회, 외부 자문위원회 등 세 가지 위원회를 두고 있다. 최소 5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하며, 규제 리스크를 점검하고 내부 의견만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외부 목소리도 반영한다. 백서 단계에서부터 이 같은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과 관리가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했다.
글로벌 블록체인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부담은 없나
지금처럼 KRW1을 아발란체에서 발행하거나 추후 이더리움 등 다른 블록체인 위에서도 발행할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 특정 인프라에 종속되거나, 몇몇 블록체인과만 협업하는 구조가 아니다. 서클의 아크 블록체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특정 블록체인에 종속될까 하는 우려가 가장 큰 것 같은데, 그런 관계는 아니다.
글로벌 프로젝트를 택하지 않으면 모든 메인넷을 직접 만들고 발행해야 한다. 결국 국내에만 종속될 수밖에 없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핵심은 얼마나 ‘잘 사용될 수 있는가’이며, 한국에 특화된 메인넷에서만 발행하라는 것은 사실상 글로벌화를 제한하는 것과 같다. 활용성과 확장성을 고려한다면 국내에만 머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상호운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내에 좋은 메인넷이 나오면 해당 블록체인에서도 발행할 계획이다. 특정 블록체인에서만 발행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발행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용자가 어떤 메인넷에서 사용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당국에서도 많은 문의가 오고 있다. 아크는 현재 테스트 단계이며, 프로덕션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발행한다고 해도 유통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기술 검증과 연구 단계다. 추후 규제가 나오면 기술적 요건이 반영될 수 있다. 서클 아크가 적합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고, 적합하면 계속할 수 있다. 규제 틀 밖에서 하려는 계획은 없다. 커스터디 기업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경우 이해상충이나 이용자 보호 문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KRW1을 스테이블 코인 광풍 전부터 준비한 이유
KRW1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이유는 스테이블 코인이 단순히 잘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존 코인은 일종의 사치품처럼 이용자들이 임의로 가치를 부여하며 유통됐지만 다음 단계는 실물 연계 자산(RWA)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RWA의 한 종류로, 앞으로 유망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RWA에는 토큰증권(STO)도 있다. 토큰증권은 24시간 전 세계에서 거래될 것이며, 이를 사고팔기 위해서는 결제 수단이 필요하다. 원화나 달러를 쓰면 되지만, 결국 기존 금융 시스템과 동일하게 돌아가게 된다. 토큰증권과 맞물려 스테이블 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스테이블 코인도 단순한 수익 모델이라기보다는 커스터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인프라라고 생각했다. 커스터디가 하나의 인프라 역할을 하듯, 스테이블 코인도 RWA가 활용되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커스터디가 단순 보관이 아닌 금융 인프라인 이유
커스터디를 단순히 보관이나 수탁 서비스로만 보면 안 된다. 은행도 처음에는 큰 금고를 설치하고 사용료를 받는 수준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이용자의 자금을 금융을 통해 활용하고 신용 창출 기능까지 확대했다.
보관 기능 자체가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자산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예를 들어 스테이킹(예치)이나 디파이(탈중앙금융) 상품을 만들 때 기본적으로 커스터디가 필요하다.
커스터디를 잘 구축해 놓으면 이를 활용해 상품만 만들면 된다. 전통 금융권도 은행 계좌의 자금이 증권사와 연동돼 예치금으로 나타나는 등 시스템이 발전해 왔다. 디지털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용자들이 저희 커스터디를 기반으로 다양한 외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자산을 각각의 플랫폼으로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과 유스케이스(실 사용처) 확장이 가능하다.
서클과의 프로젝트 현재 상황은
KRW1을 아크 블록체인에서 발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개발이 필요하다. 실제 테스트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을 이전하고 거래를 발생시키며, 에러나 특이 케이스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오류는 서클과 공유하면서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이용자 편의성을 높일 방법과 거래 처리 속도, 안정성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스테이블 코인의 규모 확장이다. 규모가 커지고 이용자와 사용처가 많아져야 비로소 존재 의의가 있다. 아크에서 발행이 원활해지면, 메인넷을 통해 다양한 유스케이스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비댁스는 협업을 통해 KRW1의 활용 사례를 찾아갈 계획이다. 가령 결제대행(PG)사가 있다면 실제 결제가 가능하도록 기술적 검증을 진행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헥토이노베이션, 헥토파이낸셜도 참여했다. KRW1을 헥토그룹의 가상자산 지갑 서비스(월렛원)를 통해 결제하는 과정까지 테스트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 기한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최소 6개월 이상 길게는 1년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비댁스는 이번 서클과의 프로젝트로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서클 같은 대형 기업의 기술력과 준비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특히 기존에는 스테이블 코인에 특화된 메인넷이 없었기에 기술적으로 궁금한 점이 많았다. 어떤 장점이 있는지, 이 같은 기술을 우리가 어떻게 배워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기존 발행 방식에서는 USDC를 옮기려 할 때, 발행 네트워크가 이더리움이면 거래 수수료(가스비)를 이더리움으로 내야 했다. USDC만 쓰고 싶어도 별도의 코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제약이 있었다.
아크에 1차적으로 참여한 기업들과의 네트워크도 구축할 수 있으며, 협업 모델을 찾아볼 수도 있다. 특히 USDC가 아닌 다른 스테이블 코인 기업들과도 해외 송금, 외환(FX), 결제 프로덕트 개발 등에서 협업 기회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프로젝트 이후 은행권과의 협업은 어떻게 되나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이 서클과 만나 협업 모델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로 비댁스가 기술적 레일을 깔아놓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향후 서클과의 협업이 보다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다. 기술 기업들이 먼저 인프라를 구축하면 은행이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는 은행이 필수적인 인프라 역할을 한다. 예치금 보관이 필요하고, 해외 송금이나 결제 과정에서도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수요가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할 필요도 있다.
향후 국내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법제화돼 은행 중심의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결정된다면, 비댁스가 기술과 유스케이스를 모두 확보한 상태에서 협업 가능한 은행과 손잡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비댁스의 목표와 바라는 점은
KRW1을 통해 원화의 해외 수출 역할을 하고 싶다. 가령 외국인 노동자가 월급을 받아 해외로 송금할 때, 지금은 달러로 환전하거나 USDT, USDC로 바꿔 송금한다. 그러나 KRW1을 활용하면, 이용자가 KRW1을 그대로 전달하고 현지 통화와 바로 교환할 수 있다. 굳이 달러 시스템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원화가 해외로 확산되며 국내 금융 영향력도 확대될 수 있다.
기업 차원에서 미국이나 유럽에 직접 진출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KRW1을 결제 수단으로 삼으면 원화 주도권을 바탕으로 해외 확장이 가능하다. KRW1을 사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원화를 사용하게 된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는 어렵던 원화의 글로벌 확장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은행이 아닌 기술 혁신 기업이 주도하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대해 많은 걱정이 있는 것으로 안다. 신뢰 문제는 기업의 규모나 자본력보다 규제를 잘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움직이게 하면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생각한다. 특정 분야 기업만 기회를 갖기보다는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에도 충분히 기회가 돌아갔으면 한다. 혁신을 한 기업가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창업자 생태계가 활성화된다.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저희 같은 기업들의 도전과 용기가 꺾이지 않도록 계속 응원하고 지지하며 제도적 지원을 해 줬으면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