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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 한국 AI] 이성엽 “G3? 경쟁력 직시해야…세계 최초 규제국은 안될 말”

바이라인네트워크 기획, <한국 AI의 길을 묻다> 인터뷰 시리즈

“AI 코리아, 어디로 가야 하나”

이재명 정부가 AI를 국정 핵심 의제로 내세우며, 한국의 AI 산업은 새로운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기술을 넘어 경제·안보의 전략 자산이 된 AI. 그러나 글로벌 시장은 빅테크의 질주, 공급망 재편, 소버린 AI 등으로 빠르게 변화 중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한국 AI 정책, 이대로 충분한가?
진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바이라인네트워크는 정치, 산업, 학계, 스타트업 등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대한민국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실질적 해법을 모색합니다.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시리즈가 ‘AI 강국’ 코리아의 새로운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시리즈 ⑧ 남경필 포니링크 대표
인터뷰 시리즈 ⑦ 류정혜 과실연 AI미래포럼 공동의장
인터뷰 시리즈 ⑥ 이성엽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
인터뷰 시리즈 ⑤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
인터뷰 시리즈 ④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시리즈 ③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인터뷰 시리즈 ② 박태웅 한빛미디어 의장
인터뷰 시리즈 ① 임문영 미래전환 대표

“AI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발전시키는 수평적 접근과 AI를 다른 분야와 결합하여 경쟁력을 확보하는 수직적 접근, 투트랙 전략이 필요합니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하지 않는 AI 기술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한국이 EU보다 먼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내년 1월 AI기본법 시행과 동시에 규제를 적용하면) 세계 최초의 고위험/고영향 AI 규제 국가가 되는 거예요.”

“기획 예산, 규제 개혁, 정부 혁신 기능을 같이 수행하는 부총리급의 가칭 ‘AI 디지털혁신부(Ministry of AI & Digital Innovation)’를 설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쿼바디스 한국 AI’ 기획을 준비하며 퍼뜩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사진>다. 그는 기술과 법정책의 조화를 꾸준히 설파해왔다. 정부와 국회가 디지털 플랫폼의 혁신과 규제를 저울질할 때, 이를 균형 있게 다뤄야 할 미디어들이 자문을 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달 이성엽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을 국정 핵심 의제로 내세워 여느 때보다 정책 전개에 관심이 뜨거울 때였다.

지난 6월 이 교수가 목소리를 냈다. 그는 한국정보통신법학회 초대 회장을 맡아 “한국의 IT강국 신화가 AI 강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노력하겠다”며 취임 일성을 밝힌 바 있다.

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AI 인프라 강조와 AI 대중화, 소버린 AI 등을 정책으로 내걸고 가는 것은 괜찮은 거 같다”면서도 “그런데 전략이 분명치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투트랙 전략’을 꺼내 들었다.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과 도메인별 특화 모델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제시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데이터 규제 완화도 불명확해 반드시 들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이어서 “AI 요소인 기술과 인프라, 데이터, 규제, 거버넌스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며 정책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이성엽 교수가 지난 7월 8일 고려대 미래성장연구원 AX전략포럼 창립 세미나에서 초대 위원장을 맡아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수평적-수직적 체계 정립 필요

“100조원 투자 계획과 모두의 AI 프로젝트는 참신한 면이 있지만, 단순한 정책의 나열을 넘어 보다 체계적인 방향 설정이 필요합니다”

이 교수는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미중 AI 패권 경쟁에서 우리나라의 AI 정책 방향 설정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수평적(horizontal), 수직적(vertical) 접근 전략으로 정책 방향성을 힘줘 설명했다.

첫째는 수평적 접근 내지 생태계 조성 전략입니다. 이는 AI가 작동하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발전시키는 전략으로 인프라 구축, 데이터 활용, 기술 및 모델 개발, 인재 양성, 윤리 및 안전 확보, 글로벌 협력 등을 구성 요소로 합니다. AI 투자의 경우 반도체-모델-플랫폼-서비스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Value Chain) 생태계 조성에 투자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은 AI 메모리 반도체와 AI 모델을 제외하면 어느 분야도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계 최초로 시행 예정인 AI 규제는 생태계 조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겠습니다.

둘째는 수직적(vertical) 접근입니다. 이는 AI를 다양한 산업과 융합(X)하여 국가 전반의 혁신과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AIX(AI로 전환) 전략입니다. 이는 AI를 다른 분야와 결합하여 새로운 제품,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특정 분야가 직면한 문제들을 AI의 분석, 예측, 자동화 능력을 활용하여 해결하는 것입니다. 제조, 금융, 법률, 의료, 교육 등 분야의 AIX를 통해 현재의 저성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이 강점이 있는 제조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율제조’는 AI, 로봇 등을 활용하여 사람의 개입 없이 공장과 설비가 스스로 제품을 기획, 설계, 생산, 공급하는 고도화된 제조 시스템입니다. 이는 인구 감소,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등 한국의 제조업이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제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전략입니다. 다만, 특정 분야 AIX 성공을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의 갈등 조정과 규제 혁신이 필수적입니다.

굳건한 G3 되려면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G3) 도약’을 내걸었다. 현재 멀찍이 앞서가는 미·중을 제외한 다음 경쟁 그룹에 한국이 속했다. 이 그룹 내에서도 경쟁이 치열해 순위를 지킬지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하버드 핵심·신흥 기술 인덱스 2025’ 조사에서 한국이 반도체 우위를 바탕으로 5위를 기록했지만, AI 분야에서는 9위라고 전했다.

프랑스나 캐나다 몇 개 국은 조금 더 앞선 것으로 보고 있고요. 굳건한 3위가 되면 좋겠는데,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부분 인력과 기술 문제 이야기를 합니다.

AI 인재 지표의 한국 점수는 2.6점으로 미국(19.1점), 중국(20점), 유럽(17.6점)과 차이가 나고요. 2025년 스탠포드대 AI 인덱스도 한국은 인재 순유출국이며, 민간 AI 투자 규모는 13.3억 달러로 11위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하락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민간 투자가 너무 없다고도 항상 이야기가 나옵니다. AI 인재가 없다는 건 이해가 될 수 있는데, 민간 투자가 적다는 건 좀 의아한 일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기업들이 AI 투자 수익 회수에 대한 기대가 떨어진다, 확신이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참, 큰일입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진단과 함께 기업 경영자들에게 분명한 현실 인식을 주문했다.

우리 기업들이 AI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전략, 의지가 있느냐에 좀 의문이 있습니다. 정부가 투자로 마중물 역할을 하면 따라가겠다는 식의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리스크를 헷지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AI 도입으로 인력이 축소되고, 이로 인한 노사 갈등에 대한 두려움, 잘 만들어진 외산 모델을 가져와 약간 개량하려는 생각도 있는 것 같고요.

이 교수는 이처럼 대형 기업들이 AI 투자에 소극적으로 비치는 이유 중 하나로 AI기본법이 포괄적 규제 법안으로 작동해 AI 투자로 인한 수익보다는 비용이 높을 우려가 있을 것으로 보이므로 이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EU법과 유사한 포괄적 규제 법안이 되면 규제가 상당히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AI는 어떤 특정 분야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이 되잖아요. AI 도입과 활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규제 리스크가 있다고 역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기술력을 보면 파운데이션 모델을 보유한 몇 개국 중 하나이고 인력 등은 경쟁력 순위에서 올라갈 수 있다지만, 우리가 도입하려는 AI 기본법은 미국, 중국, 일본 어디도 도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환기해봐야 합니다.

데이터 정책 정비해야

현재 AI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로 ‘데이터 부족’이 거론된다. 대기업들도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데이터가 태부족하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AI 학계에서는 생성형 AI 학습에 쓴 데이터로 나온 결과를 다시 학습에 여러 번 활용하면서 모델 성능이 크게 감소하는 ‘모델 컬랩스(붕괴)’ 우려가 제기됐다. 새로운 데이터가 부족해 나온 현상이다.

웹사이트에 있는 정보를 학습할 때 공개된 개인 정보라도 동의를 받아야 되느냐, 기업이 보유한 개인 정보를 AI 개발 목적으로 쓰려면 다른 목적이니까 동의를 받아야 되느냐, 원칙적으로 하면 다 동의를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원활한) 데이터 학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외를 좀 인정하자, 이번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가 전향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원본 데이터를 가명 처리하지 않고 원본 데이터를 AI 개발에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본 데이터 특례’도 법안이 나와 있습니다.

다만, 이게 공익 목적이어야 하고 개보위 심의의결을 받아야 하는 제한이 있는데요. 너무 세게 작용하면 또 (예외) 효과가 없어질 수 있죠. 저작권 이슈 관련해 공정 이용은 이미 법에 있습니다. 그걸 이용하면 되는데, 공정 이용이라는 게 법에 명확하지 않아서 법원에 가서 판결을 받아봐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 마이닝 면책’을 도입하자, 이건 EU, 일본, 영국에 다 도입이 돼 있습니다. 한국도 도입하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

AI 거버넌스, 산업 중심으로

최근 EU에서도 AI 규제 거버넌스의 전환이 포착된다. 프랑스에서 ‘미친 규제’라는 날 선 지적이 나왔고, 유럽 각국에서도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EU가 미국 빅테크를 규제로 막으려는 거버넌스의 한계를 인식하고, 산업과 시장 중심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최근 AI action plan을 통해 규제완화, AI 인프라 구축 지원 외에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자국의 AI 모델을 수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소버린 AI 개발을 지상목표로 하는 이재명 정부에게는 상당한 도전이 될 전망이라는 것이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AI기본법 중 규제 관련 조항들은 그대로 시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황정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3년 유예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EU법의 고위험 조항이 내년 1월에 시행되니까 좀 지켜보고 법을 합리적으로 개정해서 규제 조항을 시행하면 어떨까 생각을 가졌는데, 배경훈 장관은 청문회에서 과태료 조항은 유예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다만, 과태료 부과가 문제가 아니라 법 위반 딱지가 붙게 되면 기업으로서 큰 부담입니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하지 않는 AI 기술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한국이 EU보다 먼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내년 1월 AI기본법 시행과 동시에 규제를 적용하면) 세계 최초의 고위험/고영향 AI 규제 국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고위험 AI라고 분리할 만한 대상인 AI가 뭐가 있느냐 정부에 물어봤습니다. 자율주행이 당장 고영향이 될 수 있다고 하나, 이미 개별법에서 필요한 위험규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괄적 규제가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EU도 고민을 했던 것이고, 상황을 지켜보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AI 디지털혁신부’ 설치…유기적 협력 이끌어야

국회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해 AI 산업과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도, AI를 주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것엔 전문가들도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이 교수는 ‘AI 디지털혁신부’ 설치를 주장했다. 아울러 혁신을 실행할 조직과 예산을 가진, 이른바 힘 있는 슈퍼 부처였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AI를 기반으로 사회 전 분야의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 이 분야 기획 예산, 규제 개혁, 정부 혁신 기능을 같이 수행하는 부총리급의 가칭 ‘AI 디지털혁신부(Ministry of AI & Digital Innovation)’를 설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다 대통령실의 AI 미래기획 수석,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삼각체제를 구축해 AI 혁신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국가인공지능위원회의 사무국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AI 디지털 혁신부에 AI 정책실을 신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AI 최고의사 결정 기관으로서 대통령실, AI 기획 및 조정을 위한 위원회, AI 정책 실행을 위한 행정 부처의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분리하여 과학기술은 교육부에, 정보통신은 산업부와 합치는 방안은 이명박 정부의 분산형 ICT 정책추진 체계의 실패를 답습하는 것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최근 기재부가 AI국을 신설하는 등 AI 총괄부처로서 위상을 강화할 계획을 밝히고 있는데 혹시 과기정통부와 혼선이 있을 우려가 있는 만큼 대통령실에서 업무 조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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