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한국 AI] 박태웅 “AI 맨해튼 프로젝트 시작하자”
“AI 코리아, 어디로 가야 하나”
이재명 정부가 AI를 국정 핵심 의제로 내세우며, 한국의 AI 산업은 새로운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기술을 넘어 경제·안보의 전략 자산이 된 AI. 그러나 글로벌 시장은 빅테크의 질주, 공급망 재편, 소버린 AI 등으로 빠르게 변화 중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한국 AI 정책, 이대로 충분한가?
진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바이라인네트워크는 정치, 산업, 학계, 스타트업 등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대한민국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실질적 해법을 모색합니다.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시리즈가 ‘AI 강국’ 코리아의 새로운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시리즈 ② 박태웅 한빛미디어 의장
인터뷰 시리즈 ➀ 임문영 미래전환 대표
“GPU는 AI 입장료입니다. 10만 장 정도 일단 확보해야 합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해야 합니다. 전 세계에 있는 한국계 AI 개발자들 다 모여야 합니다”
“재생에너지 부문에서는 우리나라가 서방 진영의 제1 제조창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해야 할 게 AX(기업의 AI 전환)입니다.”
박태웅 한빛미디어 의장의 별명은 ‘IT 현자’다.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 기술이 우리 사회와 현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설해 주고, 철학적 시각을 제시하는 흔치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 의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을 돕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장을 맡아 ‘모두의질문Q’라는 집단지성 플랫폼을 운영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이 대통령의 AI 책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대통령이 AI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배경에도 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박 의장은 소버린 AI에 대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AI가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될 것이기 때문에 AI를 외부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소신이다.
그는 AI 개발 방법론으로 “AI 맨해튼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2차 대전 당시 핵 개발을 위한 비밀 프로젝트다. 미국 주요 대학, 국립 연구소, 군 산하 연구소 등에 있던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 박 의장은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한국계 AI 개발자를 모아 소버린 AI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자본과 인력 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에 대응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태웅은 누구?
한겨레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인티즌이라는 국내 최초의 온라인 허브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IT업계에 뛰어들었다. 인티즌은 하나의 사이트에서 쇼핑, 이메일, 커뮤니티 활동 등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최초의 포털 사이트였다. 이후 안철수연구소, 엠파스, KTH 등 IT업계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기술 관련 전문서적을 출판하는 한빛미디어의 의장을 맡고 있다.
<눈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연락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불어민주당 씽크탱크 조직인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장을 역임했고, 시민들의 의견과 질문을 모은 ‘더불어민주당 녹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매불쇼> 등 유명 유튜브 채널에서 AI에 대한 기초 지식과 사회적 의미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역할로도 유명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이 좀 넘었는데요.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 방향에 대해 어떻게 보세요?
AI와 관련해서 아직 특별히 나온 건 없지만, 대체로 방향은 잘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법인데, 다행스럽게도 과기정통부 장관, 대통령실 AI 수석 등에 실제로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해 본 사람들, 디테일을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 들어갔잖아요. 그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과기부 공무원만 앉아서 계획을 짜면 빠뜨릴 게 엄청 많거든요. 예를 들어서 AI 데이터센터만 만들면 끝이라고 생각하거나 GPU만 많이 사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디테일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달라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GPU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가 붙지 않으면 못 써요. 대용량 분산 처리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가 몇 명이나 되나, AI옵스 쪽 엔지니어는 얼마나 있나 등 온갖 것들을 다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 책임을 맡았으니까 잘 모르는 것에서 비롯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겠죠.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지만, 좋은 사람들이 들어갔으니까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도 워낙 의지가 굳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아요.
글로벌 수준으로 볼 때 현재 우리나라 AI는 어느 정도 레벨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게 큰 의미가 없어요. 딥시크가 나온 뒤로 미국이 100이면 중국이 85에서 90까지 붙었다고 보는데요, 나머지 국가들은 30 수준이니까 그냥 미국, 중국 둘 밖에 없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는 사실상 제로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이해해야 하나요?
그런 거죠, 뭐. 프랑스 미스트랄AI가 좀 따라붙어서 75~80은 될 거예요. 프랑스가 EU에서 콧대를 세우는 이유죠.
우리나라 기업들도 LLM 가지고 있잖아요. 네이버 하이퍼클로바나 LG의 엑사원 같은 거요
제가 듣기로 이 모델들은 엔비디아 GPU A100 2천몇백 장 가지고 만든 거라고 하더군요. 이 정도로는 애초에 경쟁이 어렵죠.
요즘 소버린 AI에 대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반드시 해야 하는 거죠. ‘소버린 AI’는 AI에서 주권을 갖자는 얘기인데, 이걸 자꾸 ‘한국형’으로 오해하거나, 아래아한글의 AI 버전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과는 아무 관계 없는 얘기예요.
한국에 자칭 AI 회사들이 많은데요. 대부분 메타의 라마(Llama) 모델을 가지고 와서 파인튜닝 한 거거든요. 그런데 메타가 ASI(Artificial Superintelligence)로 방향을 틀면서 라마가 붕 떴어요. (라마 기반으로 하던 건) 이제 망한 거죠. (오픈소스 중에) 남은 게 알리바바 Qwen정도인데 알리바바는 라이선스 안 바꾼다고 누가 보장해요? 만약 Qwen으로 뭔가를 열심히 만들었다고 했을 때, 알리바바가 “그동안 즐거웠다~”라고 하면 어떻게 하죠?
딥시크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딥시크도 마찬가지죠. 딥시크가 오픈하는 이유는 자기들 목표가 AGI(인공일반지능)이기 때문인데, AGI를 이뤘을 때는 오픈 안 하겠죠. 샘 올트먼이 그랬잖아요. AGI를 넘어서는 ASI는 오직 미국 정부만이 가져야 한다고.
‘오픈소스로 잘 만들면 되지 않냐’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내가 볼 때는 세상에 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픈소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오픈웨이트(Open Weight)가 몇 개 있을 뿐이죠.
오픈소스는 소스코드와 학습방법론, 학습데이터까지 완전히 공개된 AI 모델을 의미하며, 오픈웨이트는 학습 가중치만 공개된 모델을 말한다. 학습 데이터가 공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재훈련이 불가능하다.
AI 기술을 사서 쓰면 되지 않느냐, 라는 의견도 있는데요
AI는 전기나 증기기관 같은 거예요. 보편 기술, 범용 기술이라 모든 산업에 다 붙어요. 자동차는 자율주행차가 되고 청소기는 로봇 청소기가 되는 식으로 바뀐다는 말이에요.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는 기술이라, 이걸 빼버리면 그 산업이 망하게 되죠. 지금부터 한 1년 반만 지나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차는 안 팔릴 거예요. 중고차 값이 0이 될 텐데 누가 사겠어요?
마치 전기를 해외에서 사 오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북한도 착하고 중국도 착하고 러시아도 착하니까 전기선 연결해서 우리가 잘 쓰면 돼,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 나라에서 끊으면 대책이 없잖아요.
그리고 국방 쪽도 지금 다 AI로 하잖아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보면 전쟁의 양태가 바뀌었잖아요. AI 전쟁이에요. 외국에서 우리나라 국방에 잘 쓰라고 최고 품질 AI를 주겠어요? 미국에 F22라는 전투기가 있어요. 이거 해외에는 안 팔아요. 그렇게 하시는 분들(미국)이 최고 품질 AI를 잘도 주겠네요.
근데 소버린 AI가 필요하다는 것과 잘할 수 있냐는 것은 다른 얘기잖아요? 경쟁 열위의 AI를 만들기 위해 혈세를 많이 쓰는 게 낭비가 될 수도 있고, 또 우리 기업이 품질 낮은 AI를 쓰면 경쟁력이 낮아질 수도 있고요
그건 선택지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말 같아요. 그럼 ‘AI 개발 안 해도 되나’ ‘우리 거 없어도 되나’라고 물어봐야죠. 이게 선택지인가, 아니면 안 가면 죽는 길인가라고 물어봐야 되는 거라고 봐요. 우리 거 갖고 있을 때와 우리 게 없을 때는 딜 파워도 완전히 달라져요. 내 것이 있어야 돼요.
현대 AI의 가장 큰 특징은 규모의 법칙이에요. 컴퓨팅 파워를 많이 집어넣으면 많이 집어넣을수록, 학습 데이터를 많이 넣으면 많이 넣을수록, 매개 변수를 크게 잡으면 크게 잡을수록 일관되게 성능이 좋아져요. 일론 머스크의 xAI가 늦게 출발했지만 6개월 만에 GPU 팜 20만 장 깔고, 그로부터 7개월 만인가 그록(Grok)을 내놨어요. 규모의 법칙이 가장 큰 변수였기 때문에 따라잡는 게 가능했던 거예요.
모든 LLM은 다 트랜스포머라는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엔지니어링 경험과 뛰어난 AI 과학자들이 있다면 돈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게 현대 AI의 특징이에요.
세금과 인재 등 리소스는 한정적이잖아요? 소버린 AI, GPT 같은 LLM을 만들면 좋겠지만 1등을 하지 못할 거면 우리가 1등 할 수 있는 특화된 영역, 예를 들어 산업별 솔루션 같은 걸 특출나게 만드는 거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게 AI 기술에 대한 오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딥시크가 R1이라는 추론 모델을 내놨잖아요. 굉장히 성능이 뛰어나고 가성비 좋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 뒤에 있는 V3를 안 봐요. V3라는 LLM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베이스로 R1이 나올 수가 있었던 거예요.
sLLM(소형 언어모델)을 잘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는데 소형 모델도 파운데이션 모델이 있어야 나오는 거예요. 파운데이션 모델이 없이 소형 모델을 잘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지 말고 소형 모델 합시다’라는 주장은 헛소리에 가까워요. 지금 소형 모델을 한다는 국내 기업은 대부분 라마나 Qwen 같은 공개된 파운데이션 모델 가져와서 한 거예요.
심지어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인터뷰를 보면 알파폴드(단백질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AI 모델)조차 LLM이 중요하다고 해요. ‘LLM이 뛰어나야 알파폴드도 뛰어나게 된다, 또 알파폴드가 이룬 성취를 다시 LLM으로 전해서 LLM 더 똑똑해진다’고 설명해요.
소버린 AI의 핵심은 LLM 같은 파운데이션 모델을 보유하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나요?
네, AI에서 주권을 가져야 된다. 그리고 충분히 가질 수 있어야 하죠.
우리나라에 LLM을 잘 만들 수 있는 인재가 많이 있다고 보시나요?
한국의 AI 과학자들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를테면 지금 다 트랜스포머라는 모델을 쓰는데, 이 모델은 구글에서 내놓은 역사적인 논문(Attention Is All You Need)에서 시작했어요.
이 논문의 주저자 중 한 명이 조경현 교수라고, 뉴욕대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에요. 조 교수는 우리나라가 거대 AI를 만들면 반드시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예요. 오픈AI의 보드 멤버 중에도 한 명이 한국 사람이 있어요. 구글 AI에도 한국인이 많고, 현재 한국에 있는 석박사 중에도 똑똑한 연구자가 엄청 많아요. 다 모이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소버린 AI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저는 맨해튼 프로젝트 같이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뛰어난 과학자들 모두 모여라, 겸직도 허용하겠다, 이런 식으로… 급여와 연구비는 전부 다 나라에서 대주고.
그래서 세계 최고의 인클루시브(포용적) AI를 만들자. 역량이 부족해 소버린 AI를 직접 가지기 어려운 나라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 나라를 모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와서 같이 하자. GPU 팜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태라. 그리고 너희 과학자 보내라.
한국은 디지털화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하고 있지만, 후발 국가들은 데이터가 디지털화돼 있지 않아요. 인클루시브 AI를 하려면 아날로그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는 것부터 도와줘야 해요. 우리는 ODA(공적개발원조)도 있고, 아날로그로 쌓여 있는 많은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는 지원을 해줄 수 있어요.
AI라는 게 기본적으로 다국어를 공부하면 더 똑똑해지거든요. 챗GPT나 제미나이가 우리 쓰라고 한국어를 그렇게 많이 공부하는 게 아니에요. 다국어를 공부해야 똑똑해지기 때문에 온갖 언어를 다 공부하는 거거든요. 후발 국가들의 아날로그 데이터를 우리가 디지털로 전환해주면, 우리도 훌륭한 학습 데이터를 갖는 효과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제국주의를 해보지 않은 유일한 선진국이에요.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는 경계하지 않아요. 이게 외교적으로 굉장한 강점이 돼요. 중국이나 미국이 “우리 AI 써”라고 하면 경계감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GPU 팜 같이 만들자, 그리고 너희 아날로그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는 걸 도와줄게. 그리고 같이 만들어서 오픈 소스로 나눠 갖자. 이렇게 제안하면 굉장히 비적대적이고 믿을 만하죠. 이런 식으로 인클루시브 AI 쪽에서 외교적인 주도권을 가지고 나갈 수가 있어요.
우리는 외교적인 강점이 뚜렷해요. AI 과학자 충분하죠. 또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에요. GPU 살 돈 충분해요. GPU 한 10만 장 20만 장 사고, 인클루시브 AI라는 이니셔티브를 쥐고 그걸 끌고 나가면 1년 반 정도면 충분히 세계 최고 수준의 AI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어텐션 이즈 올 유 니드’ 메인 저자가 와서 이끌면 왜 안 되겠어요?
정부가 AI를 만들면, 개발된 모델은 정부가 소유하게 되는 건가요?
그거는 앞으로 이야기해 봐야 할 텐데요. 저는 정부 소유였으면 좋겠어요. (국내 기업들이) 무료로 이용하고 성공하면 이용료를 내라, 이런 조건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AI 모델을 하나 만든다고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계속 운영을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텐데, 조경현 교수 같은 분들이 처음 개발에는 함께 한다고 해도 공무원처럼 계속 남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국책으로 ASI 연구소 같은 게 하나 생겨야해요. 상근하는 연구원들도 있고, 몇 달씩 와서 연구하고 떠나는 이들도 있고, 그런 식이 될 수도 있겠죠. 또 일정 수준이 되면, 업그레이드나 치고 나가는 거는 기업들이 하게 해야죠. 돈 되는 일이면 열심히 할 거예요.
그럼, 지금까지 네이버나 LG 등이 만든 LLM 모델은 쓸모가 없네요?
현재로서는 쓸모없다고 봐야죠. 일단 GPU 개수가 답이 안 나와요.
정부 입장에서 소버린 AI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GPU 확보라고 봐야 하나요?
GPU를 10만 장, 20만 정도 확보하는 게 급하죠. 그래야 일단 입장을 할 수 있어요.
입장료가 상당히 비싸네요.
그러니까 미국, 중국밖에 못 했죠. 딥시크를 항저우에 있는 조그마한 회사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회사가 GPU 5만 장 갖고 있어요. 한국에 있는 A100 탈탈 털어야 2만 장이 안 될걸요. 한반도 전체에 있는 GPU보다 더 많은 GPU를 딥시크가 갖고 있다고요.
‘GPU 10만 장 일단 사고 보자, 입장료를 내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일각에서는 엔비디아만 돈 벌어주는 일 하지 말고 그거 살 돈 있으면 우리나라 AI 반도체(NPU) 회사에 지원을 해서 발전시키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것도 정말 기술을 모르는 소리예요. 지금 우리나라 NPU는 전부 다 학습용이 아니라 추론용이에요. NPU는 특수 목적용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예를 들어 구글 TPU는 구글의 모델이 텐서를 굉장히 많이 쓰니까 텐서 계산을 하드웨어 구워버린 거예요. 텐서 전용 칩으로 하드웨어를 묶은 거죠. 그러니까 장점은 텐서 계산이 무지하게 빠르다는 거고, 단점은 모델이 조금 바뀌면 다시 구워야 해요. 구글은 자기들 전용 칩이니까 그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모델 좀 바뀌어서 퍼포먼스 떨어지면 다시 구우면 되니까.
또 엔비디아 GPU는 위에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들이 다 갖춰져 있어요. 근데 대부분의 NPU는 소프트웨어가 없어요. 다 만들어 써야 해요. 우리 엔지니어의 인건비와 투자한 돈의 감가상각을 고려하면 그럴 시간에 엔비디아 GPU 사는 게 낫다는 거죠.
NPU는 커스터마이징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모델 변경에 취약해지고, 적게 하면 엔비디아 GPU보다 성능이 나을 게 없어요. 그래서 아주 좁은 틈새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NPU의 가치는 있어요. 학습이 끝난 모델은 매개 변수를 고칠 일이 없잖아요. 그럼 비싼 GPU를 쓸 이유가 없는 거죠. 추론에 최적화된 NPU가 있으면 그걸 쓰는 게 훨씬 싸죠. 전기료도 훨씬 적게 들고요.
그리고 또 NPU를 개발할 때는 반드시 그 위에서 돌아갈 소프트웨어 풀 스택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같이 돌아야 돼요. 같이 돌지 않으면 모든 NPU 지원 프로그램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대규모 AI 클라이언트랑 손을 잡고 개발해야 해요. 이런 게 없는 NPU 개발 프로젝트는 허당이에요. 지금 우리나라에 NPU 프로젝트가 많은데 절반은 붕 떠 있는 거예요. 소프트웨어 풀 스택 개발 프로젝트가 안 보이고, 그걸 사용할 수요자 고객하고 붙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요.
이런 점도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는 건데, 지금 배 장관이나 하 수석이 이런 걸 다 굉장히 잘 아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안심이 된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리벨리온이나 퓨리오사AI 같은 NPU 스타트업은 정부가 AI 데이터센터 만들 때 NPU를 일정 부분 할당해서 사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소프트웨어 스택을 정부 차원에서 오픈소스로 밀어주고, 한국에 있는 NPU 업체들이 공동으로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만들면 좋겠어요. 그럼 그런 회사들은 NPU만 개발하면 되죠. 그런데 이 경우에도 같이 할 클라이언트는 필요해요. 가령 우리는 네이버하고 같이 하겠다, 우리는 LG랑 같이 하겠다, 아니면 우리 새로 만들 거대 AI 모델하고 같이 하겠다, 이렇게 가줘야 돼요.
커스터마이징을 할수록 효율이 올라가니까요. 그리고 보통 학습용 GPU 시장보다 추론용 GP 시장이 10배 커요. 그래서 NPU는 시장이 있어요.
정부가 그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요. 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세 개의 프로젝트가 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LLM 만드는 프로젝트, 소프트웨어 풀 스택을 오픈소스로 만드는 프로젝트, NPU 지원하는 프로젝트, 이렇게 세 개가 돌아야 합니다.
오픈소스를 여러 차례 언급하셨는데, 오픈소스를 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이런 종류의 공공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오픈소스가 유리합니다. 물론 AI에서는 오픈소스보다는 오픈웨이트라고 부르는 게 맞을 테죠. 학습 데이터까지 싹 다 공개할 이유는 없으니까. 우리 세금이 수십 조 들어갈 거니까 오프웨이트 정도로 가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굳이 오픈해야 될 이유가 있나요?
협업하기 위해서요. 메타가 라마를 왜 오픈했겠어요? 후발 주자였잖아요. 라마 프로젝트가 1억 다운로드 정도 했거든요. 엄청나게 많은 기여(contribution)를 받은 거예요. 사용자가 많으니까 피드백도 어마어마하게 받았겠죠. 한정된 리소스의 몇천 배를 쓸 수 있게 된 거죠. 그런 점에서 후발 주자들이 취하기 아주 좋은 전략이 오픈 웨이트 전략이죠. 그래서 딥시크도 공개한 거예요.
우리가 ‘포용적 AI’를 하겠다면 오픈에이트가 필수예요. 많은 사람들이 기여를 해 주면 우리가 시간을 엄청 줄일 수 있어요. 따라잡는 시간을 굉장히 줄일 수 있죠. 전 세계 AI 과학자들의 피드백도 받을 수 있고요. 온갖 사람들이 온갖 희한한 방식으로 뭘 해보니까요. 공개한다고 해서 우리가 별로 잃을 게 없어요.
우리나라에 AI 인재가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소수의 특출난 엘리트 이외에 보편적으로는 어떻다고 보세요?
석박사 과정 연구원들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GPU가 없어요. 예를 들면 2023년을 고점으로 한국의 석박사들이 톱티어 학술지 등재 논문 개수가 매년 줄고 있어요. 2024년부터 꺾입니다. GPU가 없어서 그럽니다.
그전까지는 후진 GPU 몇 장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논문을 쓸 수 있었는데 2~3년이 지나면 도저히 그런 거 가지고는 논문을 쓸 수도 없는 거예요. 그때를 고비로 쭉 꺾입니다. 네이버에 이동수 전무가 올린 글을 보면, 인텔하고 협업하면서 국내 10개 대학에 GPU를 지원했대요. 그랬더니 서너 달 후부터 톱티어 학술지에 논문들이 막 쏟아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슬펐대요. 애들한테 노트와 볼펜도 사주지 않고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처럼 너무 서글프더래요.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돈 없다고 연구를 못 하는 게…
우리가 밥은 굶어도 애들 학교는 보내던 그런 나라인데, 이런 건 말도 안 되죠.
결론은 다시 GPU 사는 걸로 가는군요
규모의 법칙이니까요. 일단 입장은 해야죠. AI는 보편 기술이고 범용 기술인데, 자칫 모든 산업의 경쟁력이 나락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죠.
전력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기 없어서 AI 못 한다는 교수님들도 계시더라고요
그 점에서 한국에 굉장히 큰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배터리, 변전기, 변압기, 전선, 해저 케이블, 풍력 발전기, 조선 모든 걸 갖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중국밖에 없어요.
소형원자로(SMR) 개발 얘기도 논쟁이 되던데요
지금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려면 10년 걸리잖아요. 당장 대안이 못 되죠. 그래서 나온 대안이 SMR입니다. 그런데 당장 가장 빠른 건 태양광이에요. 그다음에 풍력이고…
SMR은 규모의 법칙이 안 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어요. 작은 집에도 화장실, 주방 같은 필수공간이 필요하듯이, SMR도 규모는 작지만 필수적인 게 다 들어가야 해서 기본적으로 발전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가 급하게 필요하다, 이럴 때는 SMR을 쓸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SMR 연구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연구하고 단가를 낮추면 굉장한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에너지 믹스에서는 후순위에 놓는 게 맞다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비싸니까.
글로벌 빅테크들은 SMR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요
모든 옵션을 동시에 고려하는 거죠. 풍력이든 가스발전이든 SMR이든 다 고려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우리가 또 기회예요.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이 필수가 되거든요. GPU는 전력 사용량이 널을 뛰어요. ESS 같은 기술이 이 충격파를 다 받아주지 않으면 기존 그리드가 엄청난 부하를 갖게 돼요. 그래서 대용량 ESS가 필수인데 이것도 한국이 제일 잘할 수 있어요.
정리를 좀 해볼게요. 우리나라가 AI 강국이 되기 위해서 첫 번째 할 일은 GPU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그다음 스텝은 뭐가 돼야 할까요?
그다음에 AI를 개발하고, 재생에너지 쪽에 투자를 해서 서방 진영의 제1 제조창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해야 될 게 AX(기업의 AI 전환)입니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제조 강국이잖아요. 쇠부터 반도체까지 라인업을 갖고 있는 유이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중국하고 우리나라죠. 지금은 중국과 비교해 깻잎 한 장 정도로 앞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2~3년도 안 남았다고 보거든요. 중국이 지금 어마어마해요. 중국 스마트 공장은 한국 뺨칠 수준이고 그래서 AX를 미친 듯이 해야 돼요.
AX를 할 때는 세 가지를 명심해야 돼요. 첫 번째 AX라고 하지만 DX(디지털 전환)도 안 돼 있다. 그러니까 AX는 DX를 같이 하는 거다. 두 번째는 할 사람이 없다. 세 번째는 할 돈이 없다. 이게 지금 한국 제조업의 현실이에요.
AX와 DX 전략을 같이 펼쳐야 되고, 도메인 전문가들한테 AI 활용법을 아주 잘 가르쳐야 합니다. 함께 할 파트너로 AX 전문 기업들을 매칭 해줘야 되고, 사모펀드나 벤처캐피털, 산업은행이 붙어야 합니다
사모펀드는 기존의 공장을 스마트 공장화하는 데 필요한 펀드를 내고, VC들은 AI 전문 기업들의 펀딩을 해주고, 전체 프로젝트 돌아가는 거의 펀드를 산업은행이 대줘야 합니다. 이게 다 맞아야 돼요.
그리고 지역거점국립대를 확실히 육성을 해야 합니다. 지방의 기업들이 자꾸 서울로 올라오는데 이유 중 하나는 R&D가 없어서 그래요. 지역에 연구 거점 대학이 있어 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쪽에서 AX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어요.
거기서 도메인 전문가들을 AI 교육도 시켜줘야 되고 공장이 스마트화됐을 때 거기서 일할 젊은 친구들도 육성해서 보내줘야 합니다. 아주 큰 생태계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AX는 실패해요.
한국의 스마트 공장 프로젝트가 많았는데 이 세 가지를 무시하고 들어가니까 대부분 실패했고, (정부는) 스마트 공장 개수만 셌어요. 이거는 생태계 관점에서 지역 살리기 관점에서 접근해주지 않으면 망합니다.
너무 거대해서 불가능한 미션처럼 느껴지네요
그걸 잘 아는 사람들이 지금 정부에 다 들어갔잖아요. 그리고 이 대통령은 이 정도는 이해하고 있을 거예요.
결국 AX를 하겠다고 하면 메가시티까지 가줘야 돼요. 예를 들어 부울경을 메가시티로 만들면 남편은 마산창원에서 일하고, 부인은 부산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전철로 연결해 줘야 합니다. 마산창원은 중공업 중심이어서 여성이 다닐만한 직장이 많지 않거든요.
부산 정도 되면 교육 여건도 충분히 서울 수준을 만들 수 있고, 사회주택을 제대로 공급해 주면 젊은이들도 집에 대한 부담 없이 거기서 일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생태계 관점에서 전체를 같이 봐주지 않으면 AX가 성공할 수 없어요.
나라의 전체 구조를 바꾸는 거대한 이야기네요
다 바뀌어야죠. 생태계를 만들려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한국의 엔비디아 펀드와 같은 국부 펀드 얘기를 좀 했잖아요. 이게 논란이 좀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사례로 신안에 햇빛 연금 있어요. 전남 신안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늘고 있는 군이에요. 태양광 설치할 때 군민들에게 지분을 나눠줘서 1인당 일 년에 몇백만 원씩 받아요. 풍력은 시작도 안 했는데도요.
여주 어느 마을도 태양광 수익으로 마을버스가 공짜고 점심을 무료로 줍니다. 모든 지역의 재생에너지는 다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AI는 왜 그러면 안 되는데? 라고 물어보고 싶어요. 세금으로 훌륭한 AI를 개발하고 그거를 네이버도 쓰고 LG도 쓰고 KT도 쓰고 SKT도 쓰면, 이걸 이용해서 얻은 이익 일부를 내라고 할 수 있죠. 사용료가 아니라 그걸로 돈 벌었으면 수익의 일부를 내라는 거죠.
만약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하게 되면 LG나 네이버에 있는 슈퍼 개발자들이 모여야 할 거예요. 그렇게 만든 결과물을 회사에 가져가서 쓰는 게 낫죠. GPU 몇천 장 들고 코피 터지면서 하는 거보다 10만 장 들고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연구원들에게도 좋은 기횝니다. 전 세계에서 GPU 10만 장 돌려본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예요. 그런 경험을 나눠 가질 수 있어요. 그러면 연구원 실력이 급격히 올라가겠죠. 모든 연구원이 슈퍼 엔지니어링의 현장을 같이 경험하게 될 겁니다.
한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게 가능하다면 좋을 거 같은데, 지금 진행되는 월드베스트LLM 이런 걸 보면 각 회사에서 각자 만들고 그걸 지원해 주는 방식인 것 같아요
이건 지난 정부에서 기획된 겁니다. 전 정부의 마지막 프로젝트인데, 그래도 세련된 형태로 나왔어요. 하 수석 같은 분들이 힘을 써서 그렇게 꽤 괜찮은 그림으로 나온 겁니다. 그냥 몸 푸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통령 공약 중에 ‘모두의 AI’라는 게 있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두의 AI 같은 경우는 해석이 분분해요. 제가 해석을 하자면 첫 번째로 그 AI 리터러시를 높여야 된다. 모든 국민이 AI 리터러시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거고요. 두 번째로는 AI를 기본권으로 보는 관점이에요.
아마 지금은 AI가 기본권이나 보편적인 권리로는 안 보일 거예요. 그런데 스마트폰을 생각해 보죠. 이제 스마트폰 없으면 알바 자리 하나 구하기도 힘들죠. 그래서 정부는 취약계층에 데이터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안경형 디바이스가 나올 텐데 이걸 끼면 해외여행 가도 간판이 다 한글로 보이고, 실시간으로 통역되고 그런 게 가능해질 거예요. 이 안경을 낀 사람과 끼지 않은 사람 간의 계급적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중에는 틀림없이 그 안경을 끼지 않고 외출하는 게 벌거벗고 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지금 스마트폰 없이 나갈 수 없는 것처럼.
그 경우에는 AI가 기본권이 되지 않을까요? 그 안경을 살 돈이 없는 취약계층에는 안경을 지원해 주는 이 법이 생기지 않을까, 라고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죠. 그때는 모두의 AI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거예요. 그런 날이 2~3년도 안 남았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