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 날아온 스타트업 축제 ‘슬러시드’, 관전 포인트 셋

부산 슬러시드(BUSAN Slush’D) 2024 현장 취재

핀란드 헬싱키의 세계 최대 스타트업 행사 ‘슬러시’가 부산으로 날아왔다.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개별 도시가 직면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쟁점과 이슈를 다루는 ‘로컬 네트워크’를 표방한 ‘슬러시드(Slush’D)’라는 이름으로.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주최로 열린 올해 슬러시디에서는 부울경(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황과, 이지역에서 부단히 노력해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이야기가 다뤄졌다. 또, 부울경 지역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1000억원 규모 펀드 조성도 발표됐다.

부산, 부산이라는 ‘지역’

“서울 생태계는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부산은 올해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부산 슬러시드에서 만난 박준상 시리즈벤처스 대표는 올해의 부산 스타트업 생태계가 작년보다는 두 배 이상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의 창업 여건이 서울보다 좋은 것은 아니겠으나, 그만큼 부산에 관심과 돈이 향하고 있다는 뜻으로 한 이야기다. 박 대표가 이끄는 시리즈벤처스는 3년 미만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를 하고 있는데, 총 50여개 포트폴리오 중 부울경에 위치한 곳의 비중이 90%다.

왜 요즘 부산의 분위기가 좋을까? 플랫폼이 창업 생태계를 주도했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부산에선 이런 활력이 드물었다. 박 대표는 “IT 플랫폼 서비스는 서울이 훨씬 더 잘하지만, 물류와 관광, 해양 수산, 조선, 기계, 방산, 2차전지와 같은 섹터는 부울경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들어 ‘제조 스타트업’의 창업과 역량 강화에 관심과 투자가 모이고 있는 것도 부울경 지역에 유리한 포인트다.

“사실은 원래 이 지역이 제조업 중심의 도시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주변에 제조 공장을 둔 곳이맣다. 창원도 기계 자동차 조선을 잘하고, 울산도 화학 조선 자동차를 다 잘한다. 지역에서 창업하면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을 구하는 건데, 그래도 제조 개발 엔지니어는 지역에 남아 있는 데다 제조에 특성화한 대학과 시니어도 있다. 게다가 예전에는 없던 ‘자금’이 지역의 뉴딜펀드나 은행 펀드 등으로 생겨나고 있다.”

요즘 뜨고 있는 키워드인  AI, 반도체, 핀테크, 콘텐츠는 모두 수도권이 강력한 역량을 가졌는데, 지역이 이걸 따라가는 것보다는 지역이 강점을 가진 경쟁력 있는 분야를 잘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모두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때’도 맞아야 한다. ‘제조’에 힘이 실리는 지금, 제조에 역량을 가진 부울경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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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 슬러시드에는 1000여명의 관람객이 모였다. 사진제공=코리아스타트업포럼

부산, 부산에서 창업한 ‘사람’

위성추적안테나시스템을 만드는 스타트업 지티엘은 경남 창원 사람 황건호 대표가 창업했다. 저궤도 위성 안테나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시제품은 완성한 상태로 실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역에서 창업해 성장하고 있으나 이들이 생각하는 무대는 글로벌이다. “저희는 시장이 해외가 더 많이 컸어요. 국내 시장이 1%도 안 되는 시장이기 때문에 땅값 비싼 서울에서 살 필요도, 경기도에서 (사업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났으니까 이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부산에서도 멋진 회사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박상화 푸드트래블 대표는 연예인 커피차와 같은 푸드 트럭 사업을 B2B 시장에서 키워내고 있다. 푸드 트럭이라고 규모가 작은게 아니라, 국내 100대 대기업 중 70% 이상은 푸드트래블의 서비스를 매년 사용하고 있고, 현재 2000여개 기업에서 이 회사의 서비스를 3년 간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를 보고 나서 사람들에게 행복 에너지를 채워주는 푸드 트럭에 대한 콘텐츠를 섭렵, 기어코 창업해 낸 의지의 부산인이다.

“서울에 가더라도 뉴욕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 또 부러울 거예요. 어딜 가든 상대적인 것이니까 부산에서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부산만의 방정식을 새롭게 써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울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지역 기업들의 좌담회. 가장 왼쪽은 사회를 맡은 한승민 비바인사이트 대표. 그리고, 황건호 지티엘 대표, 이진희 팀플백 대표, 박상화 푸드트래블 대표.

공교육이라는 어려운 시장에 ‘서술형 글쓰기’라는 더 어려운 아이템을 갖고 진입 중인 팀플백의 이진희 대표 역시 창원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창업한 인물이다. “내 고향에서 내가 갖고 싶은 아이템으로 시작하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그의 고향은 기계 제조 산업이 집중해 있는 지역이라 교육으로 창업하는 것은 다소 무모해보이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창원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고, “지역을 고정된 색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그 지역 안에서도 충분히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전체 산업 측면에서 굉장히 긍정적 아이템을 스스로 발굴할 수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 창발적 기업인이다. 이 대표가 만든 팀플백은 글쓰기 습관을 통해 아이들의 자아 정체성 확립과 습관 디자인을 돕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부산, 부산으로 향하는 ‘돈’

이날 중요한 발표도 있었다. 무려 1000억원이 넘는 돈이 부산 투자 생태계에 흘러들어온다. 부산 투자생태계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볼 수도 있는 ‘부산 미래성장 벤처펀드’의 모펀드 출범식이 슬러시드에서 열렸다. 모펀드의 최종 규모는 1011억원. 동남권 펀드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수도권과 지역 간 경제격차가 심화되고 수도권에 벤처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벤처투자 인프라 확충 필요성을 절감, 지역 여건에 맞는 맞춤형 펀드 설계를 통한 지역 투자 생태계 인프라의 질적, 양적 성장을 추진한다는 취지다. 행사장에는 박형준 부산 시장을 비롯해 강석훈 케이디비(KDB)산업은행 회장, 오기웅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빈대인 비엔케이(BNK) 금융지주 회장,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신상한 한국벤처투자 부대표 등 주요 출자자들이 모두 모였다.

모 펀드명은 ‘부산 미래성장 벤처펀드’. 1011억원으로 결성했으며, 자펀드는 2500억원 이상 규모로 결성을 추진한다. 부산시에서 50억원, KDB산업은행이 500억원, 모태펀드가 250억원, 부산은행이 100억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가 50억원, 한국벤처투자가 11억원, 기타 50억원을 출자했다. 투자기간은 5년이며, 존속기간은 12년이다. 한국벤처투자가 운영하는데, 부산지역 전략산업 유망 혁신 벤처와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에 돈이 투자될 예정이다.

출처=부산시
자펀드는 ▲지역 ▲수도권 ▲글로벌 리그로 나눠, 리그별 기능과 역할을 분담하게 된다. ▲지역 리그는 지역의 환경에 맞추어 지역 창업기획자(AC)/벤처투자사 (VC)를 중심으로 초기창업기업의 육성(액셀러레이팅)과 성장 기반 마련을, ▲수도권과 글로벌 리그에서는 성장지원과 해외 진출을 위한 우수한 투자 사의 지역 유인을 통한 지역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목표로 한다.

부산시는 7월 초 자펀드의 공모를 시작으로 9월까지 심사를 통해 선정이 완료 되면 연말까지 자펀드 결성이 마무리될 것으로 내다본다. 동시에 본격적인 투자도 올해 하반기에는 진행될 것으로 보고, 지역 혁신 신생기업(스타트 업)의 발굴과 투자가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속도감 있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은 “대한민국은 구조적 불균형에 빠져 있는데 이는 혁신 거점을 서울과 수도권이 독점하고 있는 현 체제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하반기부터 자펀드가 결성되면, 협력 기관들과 함께 유망한 신생기업을 발굴해 그들이 성장할 수있도록 모든 노력과 지원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부산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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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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