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재석의 입장] 카카오의 기업문화 딜레마

“신뢰” “충돌” “헌신” 줄여서 “신충헌”

과거에 카카오를 취재하면 항상 들을 수 있었던 단어였다. 카카오는 창업초기부터 자사만의 기업문화를 ‘신충헌’이라고 소개했다.

신충헌은 ‘신뢰 아래 충돌하되, 결정이 되면 헌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 직급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그 과정에서 충돌을 마다하지 않는다.
  2. 다만 충돌할 때 서로 의견이 다를 뿐, 상대 역시 조직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3. 그리고 충돌 끝에 의사결정이 이뤄지면 내 뜻과 다르더라도 충실하게 이행한다

카카오 사내에서 영어 이름을 쓰기로 한 것도 이런 문화의 일환이었다. 한국 본명을 부르면 한국인 특유의 위계 문화에서 벗어나기 힘드니, 영어이름을 쓰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자는 의지였다. 직원들에게 한도 없는 법인카드를 제공하는 것도 신뢰를 중요시 여기는 문화를 보여준다.

이런 모습에 대해 “조직 운영이 그렇게 낭만적으로 되지 않는다”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있기도 했지만, 카카오의 조직문화는 국내 다른 스타트업이나 산업계에 적지 않은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카카오로부터 ‘신충헌’이라는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기업문화’는 카카오의 최고 자랑거리였는데, 점차 그 자랑이 사라졌다. 오히려 계열사끼리 갈등이 심하다든가, 임원들에 대한 직원들의 불신이 크다는 등의 이야기가 비공식적으로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최근 카카오의 조직문화에 대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즈음부터 언론에는 카카오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자주 등장했다. 주가 폭락, 경영진의 주식 매각, 데이터 센터 장애, 독점 남용 논란, 주식 시세조종, 임원 구속 등 카카오 입장에서는 끔찍한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김정호 경영지원총괄을 둘러싼 최근의 이슈는 카카오의 신충헌이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개X신’이라는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단어가 임원 회의석상에 등장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김 총괄이 폭로한 부동산 개발 프로세스나 골프 문제는 카카오 내부 상황이 외부에서 본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련 기사 : 욕설 논란 나온 김정호 카카오 CA 경영총괄… SNS로 카카오 비리 지적

소셜미디어나 언론, 업계에 떠다니는 카카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신뢰나 헌신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불신과 자기보호와 같은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린다.

신충헌은 스타트업 단계에서나 가능한, 세상물정 모르는 낭만적인 구호였을까?

사람은 누구나 사춘기를 겪는다. 몸은 어른처럼 변해가는데 아직 마음은 자아형성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다. 기업도 비슷하다. 규모는 대기업처럼 커졌지만 내부 프로세스와 임직원의 태도가 아직 스타트업에 머물러 있으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게 된다. 지금 카카오가 겪고 있는 혼란의 원인이다.

자율성과 자기주도성을 상징하는 ‘신충헌’과 정반대의 의미로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과 시스템을 일사불란하게 관리해 효율성을 높이는 삼성 특유의 조직 문화를 빗댄 말이다.

지금 카카오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신충헌일까. 아니면 삼성 같은 철저한 관리일까.

카카오가 신충헌과 같은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기업 문화를 추구하는 것은 여전히 가치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른의 몸으로 어린이의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대기업인 카카오가 스타트업과 같은 다소 낭만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카카오에는 대기업다운 프로세스와 의사결정 구조, 리더십이 절실하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2 댓글

  1. 외부와의 소통을 안하는 기업 문화 ? 그러니 썩어 문드러지지요 고인물이 썩는법 돈도 경영도 흘고 채워야 나혼자산다냐?산속깊이 너희들만 살아가는 문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