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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석의 입장] 카카오의 ‘구글 목에 방울 달기’

자,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글로벌 앱마켓 시장의 지배자 ‘구글’과 한국 모바일 시장의 지배자 ‘카카오’의 전쟁입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카카오가 방울을 들고 나섰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카카오톡 업데이트가 중단됐습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는 플레이스토어에서 카카오톡 최신 버전(v.9.8.6) 업데이트를 할 수 없습니다. 이용자가 최신버전을 원한다면 별도로 설치파일(APK)을 내려 받아 실행해야 합니다. 카카오 측은 APK 파일을 공식적으로 배포 중입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카카오가 구글의 인앱결제 정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6월 1일부터 새로운 인앱결제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이 정책에 따르면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는 앱의 경우, 앱 내에서 결제를 할 때 무조건 구글의 인앱결제 시스템을 이용해야 합니다. 웹 결제를 안내하는 링크를 앱 내에 삽입할 수도 없습니다. 구글 인앱결제를 이용할 때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카카오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정기구독 서비스인 ‘톡플러스’와 개인용 클라우드 데이터공간 구독 서비스인 ‘톡서랍 플러스’에서 외부결제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용 카카오톡에서는 이모티콘플러스 정기구독 웹결제 안내 링크가 제공된다.

구글의 새로운 인앱결제 정책이 발표되고 국내외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국회는 앱 마켓 운영자가 특정 결제 방식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카카오의 입장

혹시 카카오가 실수로, 미처 구글 정책에 대처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물론 아닙니다. 작정하고 시작한 전쟁입니다. 카카오의 공식입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구글의 결제 정책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신 버전 심사가 거절되었다.

카카오는 구글 인앱 결제 정책이 시작되는 6월 이전에라도 이용자에게 이모티콘 플러스 등 구독 상품을 기존 가격대로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웹결제 아웃링크를 추가해서 지난 5월말 카카오톡의 업데이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용자들이 결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앱결제 외 다른 결제 방법을 함께 안내하는 현재 방법을 당분간 유지하고자 한다.”

이 정도면 싸우자는 거? 네, 맞습니다. 한 번 해보자는 거죠.

카카오의 구글 목에 방울 달기

카카오의 이번 행동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에 나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서서 구글을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의 심판대에 구글을 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읽히기도 합니다.

지난 4월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과 관련 구글 본사의 공공정책 부문 총괄 임원을 만나 “다른 결제방식을 사용하는 앱의 업데이트를 막거나 삭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인앱결제를 강제하는 행위가 발생한다면 법령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사실 방통위의 이 발표를 보면서 ‘엄포(실속 없이 호령이나 위협으로 으르는 짓)’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앱 개발사가 앱의 업데이트가 막히거나 삭제 당할 것을 감수하고 구글에 반기를 들까’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구글이 새로운 인앱결제 정책을 강제하기 시작하면 ‘을’인 앱 개발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괜히 구글에 대항해 보겠다고 나섰다가 플레이스토어에서 앱이 삭제되면 그냥 회사 문 닫아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카카오가 나섰습니다. 국내 모바일 산업계 최강자가 구글과 맞짱을 떠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갑’과 ‘갑’의 전쟁인 셈입니다.

카카오는 왜 그랬을까?

카카오의 행보는 매우 전략적으로 보입니다. 우선 ‘카카오톡’을 전장에 세운 것부터 그렇습니다. 카카오가 인앱결제 수수료를 너무 내기 싫었다면 카카오톡보다는 카카오페이지를 전장에 세우는 게 더 어울릴 것입니다. 하지만 카카오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앱은 역시 ‘카카오톡’이죠.

웹결제 안내 링크가 제공되는 ‘이모티콘 플러스’와 ‘톡서랍 플러스’는 사실 아직 그렇게 유료 구독자가 많은 서비스는 아닙니다. 인앱결제 수수료를 좀 낸다고 해도 카카오가 크게 손해보는 서비스도 아닙니다. 심지어 구글은 카카오를 달래 보려 원래 30%인 수수료를 대폭 할인해 카카오에 15%만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카오는 여기서 구글에 물러나면 앞으로 인앱결제 수수료를 피할 길이 없다고 판단한 듯 보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도 통과시켜줬으니, 구글과 싸워 볼만한 환경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상황은 APK 배포 실험의 장이기도 합니다. 플레이스토어를 거치지 않고 직접 APK 파일을 배포하는 방식으로 앱을 제공한다면, 앱 개발사는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안드로이드 환경에서 플레이스토어를 거치지 않는 건 자해행위에 가까웠습니다. 카카오는 이번 실험을 통해 스스로 앱을 배포할 수 있는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실행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플은?

흥미로운 점은 카카오의 전쟁은 구글과만 벌어지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카카오는 이모티콘플러스와 톡서랍플러스 외부결제 링크를 안드로이드 앱에서만 제공합니다. iOS 앱은 웹결제 링크가 없습니다. 똑 같은 인앱결제 강제지만, 애플과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아이폰용 카카오톡 이모티콘플러스 구독 창에는 웹결제 안내 링크가 없다.

카카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애플(인앱결제 강제)의 경우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정책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마 다른 속내도 있을 겁니다. 구글과 애플의 가장 큰 차이는 애플의 경우 앱스토어 외부에서 앱 배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큽니다. 구글 안드로이드의 경우 APK를 직접 설치할 수 있는데, iOS는 이용자가 앱스토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앱을 설치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기업 내부용 테스트 앱만 가능). 이 때문에 iOS에서 카카오톡 업데이트가 중단되거나 앱이 삭제될 경우 카카오가 싸워볼 도리가 없습니다.

또 한국 모바일 플랫폼 시장을 구글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애플의 점유율은 20~30% 불과하죠. 한번 치러야 할 전쟁이라면, 한국에서 잃을 게 많은 구글과 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구글 입장에서도 카카오톡은 한국 시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킬러 앱이기 때문에 함부로 삭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점유율이 낮은 애플이라면 “그깟 한국시장”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구글은 그러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은 아마 법정 등 외부의 힘으로 결판이 날 듯 보입니다. 카카오는 칼을 빼 들었으니 무라도 썰어야 하는 입장이고, 구글은 카카오에 양보하면 전세계 개발사들이 너도나도 덤벼들 가능성이 있으니 차단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구글의 카톡 업데이트 거절, 방통위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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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이 작금의 세태를 지켜보다 보면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카카오는 지금 `을`의 위치를 자처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행동은 정말 소위 말하는 내로남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이모티콘이나 웹툰 사업, 모빌리티 사업에 적용한 정책만 보더라도 구글의 그것에 비하면 비율적으로 수수료를 높게 책정한게 사실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본인들이 만든 플랫폼 생태계에 매긴 높은 수수료율의 정책에 대해서는 관대하며, 구글이 본인들의 플랫폼에 수수료를 매기는 것에 대해서는 반기를 드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추태라고 생각합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라는 얼핏 누군가가 들으면 작은 이가 거대한 적에게 대항하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이해득실을 따지고 본다면, 구글은 애시당초 자선사업가가 아니기 때문에 수수료율 책정에 소비자의 입장을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보는게 제 의견입니다.

  2. 재밌네요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카카오가 회사 설립부터 행해온 온갖 추태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카카오가 과연 누구를 위해서 방울을 달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고 구글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지만,
    카카오 스스로 자정하는 노력없이 대중의 이해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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