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신이 먹는 삼겹살, 그 뒤에 로봇이 들어왔다
삼겹살은 맛있지만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다. 돼지는 도축부터 발골·가공·포장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공정을 거친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물론이고 도축 과정에서 작업자가 받는 정신적 부담도 크다.
아직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샤클링(고리에 매달기)’과 ‘방혈(피빼기)’ 공정만 봐도 그렇다. 전살(기절)된 돼지의 다리에 고리를 걸어 라인에 매단 후 방혈 작업자가 칼로 혈관을 절개해 피를 빼야 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라인에 맞춰 같은 작업을 장시간 반복해야 하고, 살아있는 동물을 상대로 매일 같은 절개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소진되는 작업자도 적지 않다.
안전 문제도 있다. 고중량의 지육(몸통)이 공중에서 이동하는 데다 곳곳에서 칼과 절단 장비가 사용된다. 돼지의 경우 150kg에 육박해 작업자는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로보스는 도축 과정의 이런 문제를 로봇으로 해결하고 자동화하고자 하는 기업이다. 크기와 형태, 물성이 일정하지 않은 생체를 인식하는 ‘비정형 생체 AI’와 로보틱스 기술을 결합해 도축 자동화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도축 특화 로봇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아 이미 판매에도 돌입했다.
로보스는 현재 목절개 로봇(PNC), 복부절개 로봇(PBO), 척추를 따라 도체를 절반으로 가르는 이분도체 로봇(PSP) 등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올해 7월 농식품 테크 스타트업 창업박람회(AFPRO 2026)에서는 방혈이나 발골처럼 사람의 섬세한 동작이 필요한 공정을 위한 양팔 휴머노이드형 연구 플랫폼 ‘PEV’를 공개했다.
김정훈 로보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돼지를 기준으로 현재 주요 공정의 61% 정도를 자동화한 상태”라며 “이미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로보스의 로봇을 실제로 사용하는 도축장도 있다”고 말했다.
로봇 도입에 따른 효과는 처리 속도보다 ‘균일성’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사람은 작업자의 숙련도나 컨디션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지만 로봇은 상대적으로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CTO는 “현장에서 ‘누가 고기를 이 따위로 잘랐어’라는 말이 확실히 줄었다”며 “사람이 작업할 때보다 일정한 성능을 내는 것이 로봇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경기도 판교의 로보스 R&D 센터에서 김 CTO를 만나 로보스의 기술과 앞으로의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로보스에 합류하게 된 이유는
원래 삼성전자에서 21년을 근무했습니다. 기술원에서만 15년 넘게 있었고요. 로보틱스는 돈이 많이 드는 분야입니다. 아무리 큰 조직에 있어도 연간 100억원 이상을 쓸 수 있는 조직은 한정돼 있어 항상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로보스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습니다. 육가공이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자동화 사업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국내에는 이 분야의 자동화 장치를 만드는 기업도 많지 않았고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지난해 11월 로보스에 합류했습니다.
육가공 로봇은 다른 산업의 로봇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축산업 분야라고 해서 로봇의 기반 기술 자체가 완전히 다르지는 않습니다. 휴머노이드 역시 부품 단위로 보면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의 조합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기술을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수행 능력이 달라집니다.
다만 도축 현장에는 특수한 조건이 있습니다. 수분이나 지방 등이 로봇과 작업 도구에 묻을 수 있어 방수·방진 설계가 중요합니다. 칼과 같은 도구는 계속 사용하면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유지보수와 교체가 필요하고, 공정 도중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모니터링하는 기술도 중요합니다.
식품을 다루는 만큼 위생도 중요합니다. 돼지와 직접 접촉하거나 절단에 사용하는 부품에는 위생 규격에 맞는 재질을 적용해야 합니다. 실제로 식품 접촉 부위에는 세척과 관리가 용이한 스테인리스 계열 재질을 많이 사용합니다.
합류한 이후 로보스의 로봇 연구개발 방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제가 합류하기 전 로보스가 1차적으로 집중했던 분야는 산업용 로봇에 장착하는 엔드이펙터(로봇 팔 끝에 장착하는 작업 도구) 개발이었습니다. 이렇게 개발한 엔드이펙터를 산업용 로봇에 장착한 덕분에, 소나 돼지를 큰 단위로 절단해야 하는 작업은 기존 로봇만으로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보스는 도축·육가공·분류·포장 공정의 90% 이상 무인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산업용 로봇만으로는 모든 공정을 자동화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방혈이나 샤클링처럼 자동화가 완성되지 않은 공정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방혈이 어렵습니다. 일종의 ‘손맛’이 필요한 작업이라 어떤 각도와 힘으로 절개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샤클링 역시 한쪽 손으로 돼지의 다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 고리를 당겨 걸어야 합니다. 두 팔을 동시에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공정에는 양팔 로봇이 적합합니다. 휴머노이드 형태의 연구 플랫폼을 개발하게 된 이유입니다.

AFPRO에서 공개한 도축 로봇이 두 팔을 이용하는 휴머노이드 형태인 이유가 있나요
공간이 제한된 환경에서 양팔을 동시에 써야 하는 작업은 사람과 비슷한 상반신 구조가 효율적입니다. 물론 천장에서 여러 개의 로봇 팔이 내려오는 방식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설계하면 로봇이 차지하는 작업 공간이 훨씬 커집니다.
새로운 공장을 처음부터 로봇에 맞춰 짓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사람이 일하던 공간에 로봇이 들어가야 합니다. 기존 작업 공간 자체가 사람의 크기와 동선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양팔 로봇이 유리합니다.
머리 부분에 카메라를 단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손이나 작업 도구와 같은 높이에 카메라를 두면 작업 도중 목표물이 가려지는 오클루전(occlusion)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사람의 눈과 비슷한 높이에서 내려다봐야 작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목표물을 계속 추적하고 모니터링하기 수월합니다.
AFPRO에서 공개한 PEV는 일종의 연구 플랫폼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플랫폼에서 데이터를 학습시키며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구축해두면, 향후 다른 형태의 로봇을 개발할 때도 같은 구조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여러 분야로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도축이나 육가공을 넘어 농산물 수확 자동화나 바이오 분야에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로보스의 핵심 기술은 무엇인가요
비정형 생체를 다루는 AI 기술과 로보틱스 기술입니다. 비정형 생체 데이터에는 카메라로 얻는 시각 정보뿐 아니라 촉각이나 힘·토크 센서를 통해 얻는 물리적 정보도 포함됩니다. 이런 데이터를 모아 로봇의 인식 체계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로보틱스는 자동화 기업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기술입니다. 로봇 산업 전체를 놓고 ‘탑티어 기술’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농축산 분야로 한정하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로보스는 실제 솔루션을 가지고 산업 현장과 상호작용하며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로보스가 구상 중인 스마트팩토리에는 산업용 대형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함께 들어갈 예정입니다. 투입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엔비디아 아이작 심(Isaac Sim)으로 훈련한 피지컬 AI 체계를 적용해 산업용 로봇과 상호작용 데이터를 쌓아 나가면서 시뮬레이션과 실제 환경 간의 차이(Sim-to-Real Gap)를 줄여나가는 방향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비정형 생체 데이터로는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나요
축산 관련 기관과 협회가 축적한 돼지의 체중이나 규격 관련 데이터는 있습니다. 하지만 로봇을 설계하고 움직이는 데 직접 필요한 데이터는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돼지 다리를 들어 올리는 공정이라고 했을 때 150kg짜리 돼지라고 해도 몸 전체를 들어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리 한쪽만 들면 됩니다. 하지만 돼지 다리를 들 때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 나와 있는 데이터는 없습니다.
방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칼을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어떤 각도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데이터가 없습니다. 사람은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로봇을 설계하려면 이를 수치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로보스는 비전 데이터와 함께 작업자의 손 움직임도 수집하고 있습니다. 로코코(Rokoko) 글로브(손가락 움직임을 추적하는 모션캡처 장갑)를 이용해 손과 손가락의 움직임·위치·각도 등 모션 데이터를 얻고, 칼에도 힘·토크(FT) 센서를 부착해 도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힘과 방향을 측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데이터가 발생한 시점을 정확히 맞추는 것입니다. 손을 움직인 시점, 칼에 힘이 가해진 시점, 비전에서 인식한 위치 등을 동기화해 로보스의 데이터 통합 시스템으로 수집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은 실무자들이 직접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실제로 돼지 발골을 배운 직원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정부기관이나 관련 기관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전문가의 시연을 통해 데이터를 얻기도 합니다.
AI 모델은 어떤 것을 활용하고 있나요
비전 쪽에서는 YOLO와 CNN 계열 모델을 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특정 모델을 쓰는 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비정형 생체 데이터를 넣었을 때 원하는 좌표값이 나오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전체 모델이 됩니다.
그 과정에 로보스 자체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있고, 알려진 모델들을 조합해 목적에 맞는 결과값을 만들어냅니다. 이를 전체적으로 로보스의 AI 모델이라고 보면 됩니다.
현재 맡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미션은 양팔을 쓸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플랫폼 개발과 싱글 매니퓰레이터(사람의 팔과 유사한 구조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 팔 장치)를 동일한 시스템 아키텍처로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딥테크 팁스와 스케일업 팁스 등을 포함해 정부 과제 4~5개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딥테크 팁스에서는 내장 적출 로봇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올해 이 연구를 양팔형 로봇 플랫폼으로 확장했고, 그 과정에서 AFPRO에서 공개한 PEV를 선보였습니다.
현재 엔지니어를 채용 중인데 찾고 있는 인재상이 있나요
로보스는 형태와 물성이 일정하지 않은 생체를 다루는 AI와 로보틱스 기술을 기반으로 도축·육가공 전 공정 자동화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비전을 포함한 인식 분야, 실제 현장에서 정밀함과 안전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로보틱스 분야, 피지컬 AI의 학습과 검증을 뒷받침하는 시뮬레이션·데이터 인프라 분야에서 함께할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각 영역의 경계를 스스로 넘나들며 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주도적이고 책임감 있는 인재입니다.
이론이나 논문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에서 피지컬 AI를 증명하고 싶은 분들이 지원해주셨으면 합니다.
로보스 R&D센터의 향후 로드맵은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양팔 로봇 플랫폼입니다. 플랫폼 개발이 더 진행되면 현재 자동화되지 않은 전·후지 발골, 항문 적출, 검인 같은 도축·육가공 공정에 적용해 실증해야 합니다.
수확 자동화나 자율실험실 같은 바이오·농업 분야 과제도 정부 과제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확보한 기술을 이런 분야와 연결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R&D센터가 앞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오민선 기자>omsoms94@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