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바이라인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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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뒤흔드는 노동시장, ‘고용·복지·교육’ 정책 전환 방향은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운명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The future is not set. There is no fate but what we make for ourselves.)”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명대사다. 인공지능 스카이넷의 지배에 인류가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철희 서울대학교 교수는 재정경제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9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일의 미래: AI와 공존하는 새로운 노동시장’ 정책 포럼에서 영화에 나오는 이 대사를 인용했다. 이날 포럼에서 다른 발표자들 역시 AI가 노동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그 결과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우리 사회의 대응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았다. AI가 가져올 충격의 방향과 크기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가 결정한다는 공통 의견이다.

구조적 변화 대응할 새로운 사회계약 필요

김세직 KDI 원장은 개회사에서 “AI 기술은 일시적인 기술 유행이 아니라 노동시장과 산업구조, 나아가 우리 경제 성장 기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구조적 변화”라며 “AI가 성장률 정체 흐름을 심화시킬 수도, 반대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 시대의 성패가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대비해 얼마나 현명한 정책과 제도를 갖추느냐에 달려 있음을 강조했다. 사회 제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마련돼야 기술 발전이 실질적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제1차관은 축사에서 AI가 단순 반복업무 자동화 단계를 넘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업무 조율하는 ‘에이전틱’ 단계로 진화하며 일자리 대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청년 세대는 인구구조 변화와 경력직 중심 수시채용 확대가 겹치며 이중고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 차관은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취·창업 지원과 사회안전망 강화, 반도체·피지컬 AI 같은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한 신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준비된 자에게 AI 대전환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것”이라며 “기술과 인간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논의의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AI가 일자리를 얼마나 대체할 것이냐는 양적인 논쟁을 넘어, 누구의 일자리가 어떻게 변할 것이며 성과는 어떻게 나누어야 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질문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때맞춰 정부가 발표한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언급하며, AI로 인한 전환의 충격이 노동시장 약자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고용안정 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이 파고를 넘어설 수 없다”며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AI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복지 모델 전환: 노동 중심에서 보편적 권리 중심으로

기조발제에 나선 이한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현 상황의 긴박함을 IMF 위기에 비유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디지털 전환(정보화)을 아젠다로 내걸고 위기를 정면 돌파했듯이, AI 시대에도 기술과 제도의 거리를 좁힐 의제 설정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한주 이사장은 AI로 인한 노동시장 충격에 대응할 틀로 ‘기본사회’를 제시했다. 노동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 복지국가 모델로는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우며, 노동이 아닌 보편적 권리 중심의 기본사회 모델로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우리 헌법 10조가 인권과 행복추구권 보장을 국가의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기본사회가 이미 헌법에 내포된 가치라고 해석했다.

이 이사장은 1999년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기본사회의 현대적 효시로 평가하면서도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사회의 조건 2가지를 새로 제안했다. 하나는 ‘금융기본권’이다.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금융시장 진입 자체가 제한돼서는 안 되며, 기초생활을 보장하듯 자산 형성의 출발선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구체적으로는 금융시장으로의 진입, 과잉 이자로부터의 보호, 실패 이후 재기할 권리를 뒷받침하는 ‘국민기초금융보장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학습기본권’이다. 국가가 시혜적으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주도적으로 학습할 기회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기존 ‘교육기본권’과 개념적으로 구분된다. 그는 “의무교육을 넘어,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는 국가가 언제든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구가 급속히 줄어드는 시대인 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역량과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국가 생산력을 지키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교육정책 전환: 직업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역량, 즉 교육훈련 측면의 근본적 문제를 짚었다. 그는 OECD가 최근 발표한 ‘스킬 평가 및 전망(SAA, Skills Assessment and Anticipation)’ 보고서 조사 대상국에 한국이 빠져 있는 현실을 짚었다. 이 보고서에는 각국이 미래에 중요해질 스킬(역량) 수요를 예측하고 교육정책과 연계한 사례가 담겨 있다.

장 위원은 한국 사회가 직업이라는 틀에 갇혀 스킬을 기준으로 노동시장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5년 뒤 어떤 스킬이 필요할지 전망하기는 어려워도 당장 올해 필요한 스킬을 파악하는 지속적 모니터링 체계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전병유 한신대학교 교수 역시 지난 20~30년간 한국의 직업훈련 정책이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수출 주도 성장 아래 대외 불확실성이 컸던 탓에 특정 직업에만 특화된 훈련이 효과를 내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전 교수는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기술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직업에 특화된 훈련보다 범용적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정책의 축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이를 “직업훈련에서 평생교육훈련 체제로의 확대”로 표현하며, 개인이 필요에 따라 대학을 두세 번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는 수준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별 직업의 과업 수행 역량인 ‘숙련’보다, 다양한 과업을 아우르는 ‘능력’ 중심으로 교육훈련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슬찬 기자>seulba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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