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툴 시대는 끝났다”…플로우가 AI를 받아들이는 방법
“협업 툴 비즈니스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25일 서울 페어몬트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AX 페스타 2026’ 무대에서 이학준 마드라스체크 대표가 꺼낸 말이었다. 창업 11년, 국내 협업 툴 1위를 자처해 온 기업의 대표가 약 1000명의 청중 앞에서 스스로 자사 비즈니스 효용성의 종언을 선언한 셈이었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이 행사에서는 항상 새로운 기능들을 공유했는데,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혁신적이고 고민이 가장 많이 담긴 내용을 발표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고민은 SaaS(Software as a Service)가 가치를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그가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5년까지 글로벌 SaaS 시장 규모는 수직으로 치솟았지만, 사무직의 ‘일을 위한 일’ 비중은 그 기간 내내 60%대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툴은 늘었는데 일이 빨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는 세 가지 단절을 원인으로 짚었다. 첫째는 데이터와 가치의 단절이다. 예를 들어 협업 툴에 쌓인 데이터의 90% 이상이 데이터베이스 어딘가에 잠든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프로세스와 프로세스의 단절이다. 도구는 늘었지만 연결은 늘 사용자의 몫이었다. 셋째는 목표와 실행의 단절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실린 카플란·노턴 연구에 따르면 직원의 95%는 회사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조직의 90%는 전략 실행에 실패한다.
여기에 AI라는 변수가 더해졌다. 이 대표는 올해 초 직접 바이브 코딩을 시작하면서 위기감을 느꼈다고 했다.
“소프트웨어가 너무 쉽게 대체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는 근거 없는 두려움이 아니다.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SaaS 기업들이 구독료를 받던 기능을 에이전트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이른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 공포가 IT 업계에 떠돌고 있다. 실제로 세일즈포스, 서비스나우 등 주요 SaaS 기업의 주가가 에이전틱 AI 확산에 대한 우려로 폭락하기도 했다. 협업 툴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대표는 같은 위기 앞에서 다른 걸 발견했다.
그는 ‘거울과 유리창’이라는 비유를 꺼냈다. 거울로 자신의 단점을 보고, 강점은 경쟁사의 눈으로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거울로 본 플로우의 반성은 앞서 말한 세 가지 단절이었다. 그런데 유리창 너머로 플로우를 바라봤더니 다른 풍경이 보였다.
플로우가 가진 자산은 데이터였다. 현재 1만여 개 기업이 플로우에서 매일 협업 소통, 프로젝트·일정, 지식·문서, 목표·보고서 데이터를 쌓고 있다. 삼성전기, 현대모비스, KRX 한국거래소, 현대해상, BNK부산은행, 김앤장 법률사무소까지 대기업·금융사·공공기관이 고루 섞인 고객사들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건, 11년 치 데이터가 탑재된 플로우 AI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 데이터가 지금까지 제대로 쓰인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대표가 말한 세 가지 단절이 바로 그 이유였다. 마드라스체크는 이날 그 단절을 끊는 것을 목표로 설계한 AI 엔진 ‘리패턴(Repattern) AI’를 공개했다.
리패턴 AI는 플로우에 축적된 업무 데이터를 학습해 실무를 대신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플랫폼이다. 단순한 생성형 AI 기능이 아니라, 업무를 이해하고 직접 실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무 실행(Mate Agent), 업무 자동 생성(Smart Agent), 반복 업무 자동화(Automation Agent), AI 활용 전략 제안(Consulting Agent) 등 네 가지 에이전트로 구성된다.
리패턴 AI를 활용할 때 가장 먼저 달라지는 건 데이터를 꺼내 쓰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영업 담당자가 고객사 미팅 전 플로우에 “기존에 어떤 불만을 가졌고 뭘 기대하는지 알려줘”라고 입력하면, 그동안 쌓인 회의록과 VOC 데이터를 바탕으로 브리핑 보고서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이 대표는 “과거에는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미팅에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A급 인재가 정리해준 것 같은 보고서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외부 툴과의 연결이다. 플로우는 이날 MCP(Model Context Protocol) 프로토콜을 활용해 클로드, 챗GPT 등 주요 AI 툴과의 연동 기능을 공개했다. 클로드에서 “지난주 회의록 요약해줘”라고 입력하면 플로우 문서를 분석해 결정사항을 정리하고 후속 업무를 자동 등록하는 식이다. 슬랙, 구글 워크스페이스, 지라, 세일즈포스 등 기존 업무 도구와도 양방향으로 연동된다. 도구는 그대로 쓰되, 플로우가 그 중심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구조다.
세 번째는 사람과 에이전트가 함께 일하는 공간이다. 플로우 프로젝트에 사람 대신 AI 에이전트를 팀원으로 초대해 업무를 배정하고 결과물을 받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요즘 아침이 달라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새벽에 직원들이 일을 안 하니까 아침에 플로우를 열면 새로운 알림이 별로 없었어요. 이제는 에이전트가 밤새 버그를 20~30개 처리하고 댓글로 보고까지 해놓습니다.”
에이전트가 처리한 이력도 플로우 데이터베이스에 고스란히 쌓이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협업 공간 자체가 더 정교해지는 구조다.
마드라스체크는 이날 개발자 포털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기존에는 관리자만 API 키를 발급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개별 직원도 직접 키를 발급받아 바이브 코딩으로 맞춤 툴을 만들 수 있다. 플로우의 백엔드를 빌려 쓰는 방식이라, 개발 지식이 없어도 자신의 직무에 맞는 도구를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일례로 플로우 영업팀은 개발자 포털에 허브스팟(HubSpot) API와 클로드 코드를 결합해 CRM(고객관계관리) 통합 대시보드를 단 3일 만에 구축했다. 경비처리 SaaS 업체 ‘비즈플레이’도 같은 방식으로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을 일주일 만에 만들었다. 기획하고 개발자에게 넘기고 디자인하고 구현하던 과정이, 해당 직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직접 만드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 대표는 이런 변화가 조직의 모습 자체를 바꿀 것이라고 봤다.
“흩어진 직무는 사라지고, 고객의 문제를 푸는 솔루션 빌더만 남을 것입니다. CX 담당자, 영업, 교육 담당자, 개발자가 각각 따로 존재하던 시대와 달리, 이제는 이 역할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마드라스체크는 이에 맞춰 고객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업무 자동화를 구현해주는 솔루션 빌더 조직을 운영하고, 도메인 전문가·AX 전문가로 구성된 파트너 생태계도 확대할 계획이다.
연설의 끝에서 이 대표는 11년 전 창업할 때 만들었다는 비전 문구를 다시 꺼냈다.
“연결의 힘으로 일을 쉽고 빠르고 가치 있게.”
문장은 그대로였지만 연결의 대상은 이제 사람만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넘어 사람과 에이전트, 에이전트와 에이전트가 연결될 때, 11년 전 이 대표가 품었던 비전이 비로소 완성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