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팅 사례] “GS리테일 20년차가 스타트업에 들어가 가장 먼저 때려치운 것”

많은 스타트업이 화려한 아이디어로 시작하지만, 실제 시장의 벽에 부딪혀 자금난과 성장 정체라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피보팅(Pivoting, 사업 방향 전환)’입니다. 하지만 방향을 트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처절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GS리테일에서 20년간 유통의 본질을 경험하고 스타트업 현장으로 뛰어든 송재필 바바그라운드(노는법) CSO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 곳의 스타트업이 어떻게 체질 개선에 성공했는지 그 내밀한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송재필 CSO는?] GS리테일에서 20년간 근무하며 유통 산업의 격변기를 현장에서 겪었습니다. 편의점, 슈퍼마켓 사업부 외에 F&B(미스터도넛 프랜차이즈), H&B(랄라블라 뉴포맷 팀장), 스퀘어사업부 등 유통 전 영역을 거쳤습니다. 상품개발팀장, 마케팅팀장, 영업기획팀장, 사업기획팀장을 맡아 일했으며, 특히 ‘슈퍼사업부 중장기 전략 TFT 리더’로서 온라인 신선식품 전문몰 모델 등을 주도했습니다. 이후 닥터키친, 얌테이블, 미스터아빠, 바바그라운드 등의 스타트업에 대기업의 경험을 이식,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피보팅을 이끌고 있습니다.

사례 1) 미스터아빠
“B2C에 대한 환상” 버리고 “유통의 직선화”에 집중

신선식품 커머스인 미스터아빠는 온라인 B2C 커머스와 새벽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던 기업인데, 온라인 커머스의 구조적 수익성 한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송재필 CSO는 2023년 4월 합류해 유통 직선화 전략을 도입했습니다.

기존 5~6단계의 복잡한 유통 구조를 산지 직송 방식으로 단순화해 로컬 푸드 소비 모델로 전환했습니다. 유통 단순화 모델을 농산물 분야에 적용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송재필 CSO와 서준렬 미스터아빠 대표는 GS슈퍼마켓에서 전략 수립을 함께 한 동료이기도 했습니다. 송 CSO는 서 대표에게 “대기업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스타트업에 적극 활용할 것”을 추천했습니다.

SWOT 분석

강점(Strength): 산지 직송 네트워크, 경남 지역 기반의 탄탄한 생산자 신뢰
약점(Weakness): 막대한 고객 획득 비용(CAC), 물류비용 부담으로 인한 적자 지속
기회(Opportunity): 파편화된 중소 식자재 시장(50조 규모), 디지털 전환이 늦은 로컬 유통망
위협(Threat): 쿠팡, 마켓컬리 등 거대 자본과의 B2C 전면전 불가능

온라인 신선식품 커머스는 ‘돈 먹는 하마’입니다. 쿠팡, 마켓컬리조차 흑자 달성에 오랜 시간이 걸릴 만큼 마케팅과 물류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입니다. 위 SWOT 분석을 보면 아시겠지만, 농수산물 B2C 커머스로 시작했던 ‘미스터아빠’ 역시 비슷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2023년 미스터아빠에 합류한 송재필 CSO는 B2C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며 B2B 식자재 유통으로의 전면적인 피보팅을 제안했습니다. 롤모델은 연 매출 30조 원 규모의 미국 식자재 기업 ‘시스코(Sysco)’였습니다.

“경남 사과를 왜 가락시장까지 보내나?”

핵심 전략은 ‘유통 구조의 직선화’입니다. 기존 농산물은 ‘생산자-경매-중도매인-도매상-소매상’의 5~6단계를 거치며 50% 이상의 마진이 붙고 신선도는 떨어집니다. 경남의 사과를 서울 가락시장까지 보냈다가 다시 지역으로 내려오는 구조는 돈과 시간을 많이 낭비하게 되겠죠. 그 사이에 농산물의 신선도도 떨어지고요. 송 CSO는 이런 비효율을 끊고, ‘로컬 푸드 로컬 소비’ 시스템을 구축하자 제안했습니다.

“누구에게 팔 것인가를 먼저 정하라”

송 CSO는 타깃을 먼저 명확히 하자는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전국 5만8000개에 달하는 개인 슈퍼마켓을 우선 타깃으로 봤습니다. 대기업에 밀려 소외됐지만 여전히 수가 많은 나들가게 등이 해당됩니다. 또, 시장 자체는 50조원 규모로 크지만 파편화돼 개별로는 작은 중소 식자재 시장도 미스터아빠의 시장이라 분석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원물이 아니라 바로 판매 가능한 ‘상품’이었기 때문에, 산지 인근에 소분 센터(Hub)를 전국 10여 곳에 배치해 흙 묻은 원물을 가져와 즉시 소분 포장해 인근 슈퍼로 배송하는 하이퍼 로컬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신뢰’도 중요한 부분으로 봤습니다. 기존 유통망에서 3~4개월씩 걸리던 정산 주기를 10일 이내로 대폭 단축했습니다. 농민들은 판로 걱정 없이 물건을 공급하고 돈을 빨리 받을 수 있어 미스터아빠에 호응했습니다. 혁신 결과, 미스터아빠는 적자에서 벗어나 매출 1000억원을 바라보는 아기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앱에서 로컬 유통 물류 시스템을 장악한 플랫폼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죠.

사례 2) 닥터키친
“환자식”이라는 니치마켓 한계 깨고 “대중식”으로 확장

닥터키친은 원래 당뇨 환자를 위한 식단을 제공했습니다.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시장의 크기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죠. 당뇨환자 밀키트 구독 모델이 주력이지만 3C(고객·자사·경쟁 관점) 분석이 부족했고, 따라서 ‘제한된 시장’에서 스케일업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송 CSO는 닥터키친이 제품 몇 개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누구에게 파는지”에 대한 시장 정의를 먼저 새로 하고, 무엇을 어떤 포맷을 팔아야 하는지에 대한 유통 전략 자체를 새로 짜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제품을 어떤 채널에 팔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장 경로까지 말이지요.

[SWOT 분석]

강점(Strength): 의료적 전문성, 저당·저염 요리에 대한 독보적 레시피, 고관여 고객층 확보
약점(Weakness): ‘환자식’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좁은 시장(Niche Market), 높은 생산 단가
기회(Opportunity): 키토제닉, 저탄고지 등 일반인의 건강식 수요 폭발, 새벽 배송 시장의 성장
위협(Threat): 대기업 밀키트 시장 진출, 환자식에 대한 대중의 ‘맛없다’는 선입견

닥터키친의 사례는 전략 컨설팅 출신들이 세운 스타트업에 ‘리테일 전문가’가 투입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송 CSO가 닥터키친에 합류했을 때 마주한 가장 큰 벽은 경영진의 ‘자존심’이었습니다. 유명 컨설팅 출신의 창업자들은 ‘환자식’이 갖는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사업은 수익이 나야 지속가능하다”

일반인에게 시장을 확장하는 것이 브랜드 가치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창업자들의 우려를 설득한 것은 “사업의 본질은 영업이익을 내는 것”이란 유통의 대원칙입니다. “당뇨 환자에게 좋은 저염·저당 음식은 일반인에게는 훌륭한 건강식”이라는 것, “대중적인 시장에서 돈을 벌어야 그 수익으로 진짜 하고 싶은 하이엔드 사업도 지속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죠.

많은 스타트업이 자신이 가진 훌륭한 콘텐츠와 기술력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장 확장성을 놓치곤 합니다. 닥터키친도 수익을 내기 위해서 시장을 확장해야 했습니다. 당뇨식을 ‘가장 건강한 일반식’으로 재정의했고, 타깃을 환자에서 다이어터, 건강을 생각하는 일반인으로 넓혔습니다.

“제품은 이미 시장에 다 있다, 트렌드와 기술 변화를 읽고 역발상 마케팅을 하라”

또, 역발상으로 제품을 기획했습니다. 2019년 당시 유행하던 키토제닉 다이어트와 탄수화물 기피 현상을 역이용해 “마음 놓고 밥을 많이 먹어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곤약밥’이라는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당뇨 환자에게도 좋지만, 다이어트를 하는 이들에게도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곤약밥을 냉동으로 팔았는데, 역시 설득이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냉동 밥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를 일본의 급속 냉동 기술 현실화 사례로 설득했고, 보관과 배송이 용이한 제품군으로 냉동 솥밥을 시장에 자리매김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매출은 단숨에 두 배 이상으로 수직 상승했습니다. 확장된 시장성은 기업 가치를 높였고, 결국 대형 밀키트 기업 프레시지(Fresheasy)와의 성공적인 M&A를 이끌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사례 3) 바바그라운드 (노는법)
“여성 웰니스 여행”에서 “농촌체험 여행 AI 플랫폼”으로 카테고리 재설계

송 CSO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노는법’이라는 여행 플랫폼을 운영하는 바바그라운드입니다. 허정 대표가 창업한 곳으로, 4050 여성을 위한 웰니스 여행 서비스로 시작한 곳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여행 트렌드와 수익 모델 부재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했죠.

[SWOT 분석]

강점(Strength): 강력한 커뮤니티(4050 여성), 농촌 지역 지자체와의 협력 관계
약점(Weakness): 상품 기획에 과도하게 소요되는 인력과 시간(수동 작업), 낮은 재방문율
기회(Opportunity): 아그리투어리즘(농촌 관광) 수요 증가, 지자체의 소멸 위기 대응 예산 확대
위협(Threat): 대형 여행 플랫폼의 진입, 농촌 관광의 낮은 품질 관리 문제

송 CSO는 노는법이 가진 ‘로컬 자산’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이 회사를 단순한 여행사가 아닌 ‘농업과 관광을 연결하는 기술 기반 기업’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크게 두 가지가 달라집니다. 타깃이 달라지고, 농촌 관광의 강한 지지 축인 지자체가 회사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노는법은 최근 회사가 추구하는 브랜드 방향성을 “농촌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의 삶을 경험하는 고부가가치 테마 상품”으로 확립했습니다. 단순한 패키지 여행이 아닌 일명, ‘아그리 투어리즘(농촌체험관광)’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죠.

“무엇이 더 큰 가치를 주는지, 무엇이 더 농촌을 찾고 싶게 하는지를 파악해라”

그리고 기술을 결합했습니다. 요즘은 AI가 들어가지 않으면 지자체와의 사업도 어렵습니다. 과거 MD들이 일일이 전화하고 기획안을 쓰던 방식을 AI 시스템으로 전환했더니, 2주 걸리던 상품 구획을 10분 만에 끝낼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른바 ‘기획 자동화’의 추진입니다.

여행, 관광 상품인 만큼 신뢰도 중요합니다. 일본의 지자체와 협력해 한일 농촌 관광 아웃바운드/인바운드 시장을 공략하고, 농촌 관광 상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 모델을 개발해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인력 효율화와 데이터 기반의 상품 기획이 가능해지면서 확장성이 확보되었습니다. 4050여성이라는 니치 전략은 초기에는 집중적으로 모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스스로 시장을 좁히는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따라서, ‘농촌’이라는 독특한 경험 자원을 활용하고, 여기서 잘 노는 법을 SNS에 확산시키는 등 ‘경험형’ 상품과 결합하는 것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타깃이 아니라 카테고리를 바꿔서 방어막을 만들라”

여행업의 한계는 콘텐츠가 금방 복제되고, 차별화가 흐려지기 쉽다는 점이죠. 그래서 노는법은 타깃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카테고리’를 달리 만들면서 남들이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방어막을 만든단 전략을 세웠습니다. 자신들이 속한 시장의 이름을 ‘아그리투어리즘’으로 바꾸자는 것이죠. 경쟁자들과 여행상품으로 싸우지 말고, ‘농촌 경험 산업’의 설계자로 올라서라는 조언인데요.

현재는 농촌 소멸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 수익성을 동시에 잡는 로컬 콘텐츠 기업으로 조금씩 성장하는 중입니다. 송 CSO는 노는법이 이탈리아와 일본의 사례처럼 연 매출 수조 원대의 글로벌 로컬 비즈니스 그룹으로 커 가길 희망합니다.

총론) 송재필 CSO가 말하는 스타트업 피보팅의 3대 원칙

첫째, “본질은 영업이익이다”
아무리 가치 있는 사회적 미션도 수익 없이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수준 낮은 시장이라고 외면하지 말고, 돈이 되는 곳에서 체력을 길러야 합니다.

둘째, “유통 구조를 단순화하라”
모든 위기는 복잡한 비용 구조에서 옵니다. 중간 마진을 걷어내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직선화’에 답이 있습니다.

셋째, “데이터와 시스템으로 승부하라”
대표의 직관이나 MD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AI와 데이터를 통해 기획 시간을 단축하고 효율을 극대화해야만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위기는 방향을 잃었을 때가 아니라, 방향을 바꿔야 함을 알고도 주저할 때 온다”
송재필 CSO가 경험한 사례들은 ‘유통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혁신적인 피보팅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트렌드가 바뀌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도 강조합니다. 경영학의 기본 원리를 스타트업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며, IT를 활용하되, IT중심 사고에서는 벗어나 비즈니스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특히 유통 도메인 지식과 선진 사례 벤치마킹에 대해서는 항상 귀를 열어두라고 조언하네요. 그래야, 성공적인 피보팅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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