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규제하나, 업계 우려
최근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증권사의 거래소 인수 움직임부터 정부부의 대주주 지분 규제 추진,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다양한 논의, 커스터디 시장 재편 등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과 본격적으로 접점을 넓혀가는 흐름으로 해석됩니다. <바이라인네트워크>는 4회에 걸쳐 이와 같은 변화를 전합니다.
① 코빗 이어 빗썸까지…증권사가 주목하는 이유
②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규제하나, 업계 우려
③ 원화 스테이블코인, 은행 중심 모델이 해법일까
④ 가상자산거래소 수탁 강화…커스터디 기업과 경쟁·협업 공존
정부가 마련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주요 쟁점으로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한 소유 분산 기준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자본시장 대체거래소(ATS)에 준하는 수준으로, 의결권 있는 주식의 15~20% 이상을 특정 주주가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보고자료에서 가상자산거래소가 약 1100만 명이 이용하는 ‘핵심 금융 인프라’임에도 불구하고, 소수 창업자와 대주주가 경영 전반을 지배하며 수수료 등 운용 수익이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준법감시인 선임, 감사위원회 설치 등 지배구조 투명성과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판단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소유분산 기준이 법제화될 경우 경영 안정성과 투자 유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금융위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의 주요 내용에 대한 논의는 진행 중”이라며 “가상자산거래소의 지배구조 개편을 포함한 구체적 내용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가상자산거래소 길들이기, 창업 생태계 위축
이번 방안에 대해 민간 영역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민간 기업에 지분 매각을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지분율 조정을 전제로 한 규제 도입은 기업 경영과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자본시장 규제 체계 속에서 출범한 대체거래소와 달리, 가상자산거래소는 민간 기업으로 출발해 성장했기 때문에 동일한 소유분산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미 형성된 민간 기업의 지배구조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러한 조치가 소급 적용될 경우, 법적 신뢰와 시장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제적인 지분 분산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국내 시장경제 모델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가상자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랜 기간 규제 불확실성을 견디며 성장해온 거래소의 지분을 결국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에 넘기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창업가와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어렵게 키운 기업의 소유권이 제도 변화로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에서 혁신 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창업 생태계와 기업가정신 위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성장한 민간 기업의 지배구조를 사후적으로 강제 조정하는 것은 창업 의욕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선례가 만들어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유망 기업의 해외 이전이나 시장 이탈을 가속화해 국내 창업 생태계 전반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이와 맞물려 디지털자산 산업의 혁신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디지털자산 거래소는 단순한 매매 중개를 넘어 가상자산 수탁(커스터디), 스테이킹, 자체 메인넷 생태계 구축 등을 통해 ‘차세대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며 글로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자산 거래소를 단순 중개 기관으로 한정해 규제할 경우, 기술 융합을 통해 빠르게 확장 중인 산업의 발전과 경쟁 양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디지털자산 산업의 성장 동력과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방안을 두고 사실상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길들이기’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유분산을 통해 특정 주주가 책임과 권한을 갖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 경우, 결과적으로 ‘주인 없는 회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배구조가 분산된 조직에서는 최고경영자의 독립성과 책임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대표 선임 과정에서 금융당국 출신 인사들이 대거 유입되는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 모두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들이 경영진에 포진해 있다”고 밝혔다.
의사결정 지연, 글로벌 경쟁력 약화 우려
지분 분산은 신속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에 제약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수의 주주가 존재하는 구조에서는 경영 전략과 투자 판단에 시간이 소요되고, 위기 상황에서 빠른 결단이 어려워질 수 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면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기도 어렵다.
이 같은 구조는 투자자 보호 효과의 실효성 논란으로도 이어진다. 거래소의 지분 구조와 이용자 보호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유가 분산된다고 해서 반드시 투자자 보호가 강화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주인 없는 회사’ 구조에서는 전문 경영인이 책임보다는 임기 관리에 집중하는 보수적 운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은행권에서도 지배구조가 분산된 상황에서 대형 금융사고가 반복돼 왔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환경에서 지배구조 변화는 국내 디지털자산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디지털자산 산업은 그간 창업자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과감하고 신속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혁신을 이끌어 왔다. 지분이 과도하게 분산될 경우 의사결정 지연과 비효율이 누적돼 장기적인 혁신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 세계 주요 디지털자산 거래소들은 모두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출범해 생태계를 구축했으며, 창업자가 주요 주주이자 경영자로서 혁신을 주도해 왔다. 코인베이스와 업비트 등 글로벌 거래소 사례에서도 창업자의 강력한 책임 경영이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디지털자산 시장의 구조적 특성 역시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국내 주식이 대부분 한국거래소를 통해 거래되는 것과 달리, 디지털자산은 동일한 자산이 글로벌 거래소에서 실시간으로 동시에 거래된다. 국경 없는 경쟁 환경에서 국내 거래소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이용자들이 해외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한 관계자는 “바이낸스는 자체 블록체인인 BNB체인을 구축했고, 코인베이스 역시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실패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프로젝트에도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며 “이러한 모험적 투자는 오너 경영자가 명확한 책임을 지는 구조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분이 과도하게 분산되면 도전적 투자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자본시장 구조와의 비교도 제시된다. 국내 증시가 역동성을 잃은 이유 중 하나로 상장과 상장폐지가 모두 어려운 구조가 지적된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완전 민영화 체제가 아니어서 보수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나스닥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신속히 상장시키고, 부실기업은 빠르게 정리하며 시장의 역동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가 투자 활성화와 기업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법안이 현실화될 경우, 위헌 소송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소 침해 원칙에 따르면 공익 목적이 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규제가 가능하다면 재산권 침해를 피해야 한다. 현재 법안에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부적격 대주주 지분 매각 명령, 내부 통제 수립 의무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이로 인해 지분 분산까지 강제하는 조치는 과도한 권한 행사로 해석될 수 있다. 소유 분산은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기존 규제 수단으로도 공익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바이낸스-고팍스 인수 사례와 같이 해외 투자자가 참여한 거래소에서는 소송 가능성이 존재해, 규제 현실화 이후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법안이 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과 대중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금융사는 자본 규제와 지배구조 요건 등 감독 체계 하에서 사업을 운영한다. 가상자산거래소도 제도권 내에서 금융과 유사한 안전장치를 갖춰야 운영이 허용될 수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