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등판, 컴업은 ‘출국장’이 될 것”

AI와 딥테크를 중심으로 한 기술 경쟁은 이제 기업 단위를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기술’에서 ‘시장’, 그리고 ‘확장’으로 이어지는 전 주기 경쟁으로 이동했다. 한국 기업들이 이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빠른 실행력을 갖춘 기술 스타트업의 성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 스타트업이 해외에서 성장하기에는 네트워크 부족, 규제 차이, 시장 검증 기회 부족, 초기 해외 투자자 접근의 한계 등 구조적 장벽이 여전히 높다.

지금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직면한 핵심 과제는 “어떻게 스타트업의 글로벌 확장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것인가”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에서 지난 7년 간 컴업(come up,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주최하고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벤처기업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주관한 국내 최대 스타트업 축제)을 담당해온 최지영 상임이사는 “컴업은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무대에 등판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구 플랫폼(Exit to Global)”이라고 정의한다.

올해 컴업은 지난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사흘간의 일정을 마쳤다. 역대 컴업 중 가장 많은 국가와 스타트업이 참여했다. 이제는 스타트업이 글로벌 진출을 할 때 먼저 문을 두드려볼 만한 든든한 체력을 갖춘 행사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지영 상임이사에게 올해 컴업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 컴업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나가야 할 지를 물었다.

올해 확 바뀐 ‘컴업스타즈’, 진짜 글로벌로 나가보자

작년까지 컴업스타즈는 우수 스타트업을 선발, 심사역들이 피칭을 듣고 순위를 매겨 상을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글로벌 권역별로 나아갈 스타트업을 선발, 거의 일년에 걸쳐 현지 진출을 돕은 프로그램으로 전환했다. 실무진 입장에선 훨씬 더 많은 공수가 들 수밖에 없는 일인데, 왜 이렇게 바꾸었나? 그리고 어떻게 가능했나?

행사 자체를 잘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행사의 콘텐츠를 통해서 협업이 일어나고, 그 협업이 다른 협업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부분이다. 올해 컴업스타즈가 글로벌로 협업을 만들어내려면, 처음엔 어렵더라도 이런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봤다. 컴업을 통해 가능성을 본 팀들이 해외로 나가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다시 컴업에서 보여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찾아 컴업에 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많은 행사가 이를 알지만 실현하기는 어렵다. 그런 노력을 하기엔 어려운 구조가 있다. 예를 들면, 담당자가 매년 바뀌거나 사고를 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구조 말이다. 컴업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예산을 받지만 행사를 주관하는 곳은 민간이다. 민간에서 요구하는 수요와 아이디어를 집어 넣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고, 그래서 스타트업 생태계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방향과 수요를 집어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컴업이 아니더라도 해야 할 코스포의 역할이다.

컴업의 핵심 프로그램인 ‘컴업스타즈’는 올해 큰 변화를 시도했다. 단순히 국내에서 잘하는 팀을 뽑는 것을 넘어,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4개 권역을 대상으로 실제 진출 가능성이 있는 팀을 선발해 인큐베이팅하고 진출을 지원하는 과정을 도입했다. 행사를 통해 유망 스타트업에 상을 주는 개념을 넘어, 실제 글로벌 진출로 이어지는 행동 전략을 기획 단계에서부터 포함시킨 것이다.

선발 기준 역시 철저히 ‘현지 시장 적합성’에 초점을 맞췄다. 최지영 상임이사는 “일반 벤처투자사(VC)들이 평가한 점수는 높더라도 현지 파트너사들이 보기에 시장성이 떨어지는 기업은 과감히 선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지 엑셀러레이터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그들이 책임지고 키울 수 있는 팀을 뽑는다는 기준을 세웠지만, 이걸 현실화하는 데도 많은 협의가 필요했다.

예컨대 일본 시장의 경우 한국과 선호하는 기업의 기준이 달랐다. 최지영 상임 이사는 “한국은 실리콘밸리 문화를 지향하지만, 일본은 스타트업조차 대기업 문화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며 “한국에서는 기술(Tech) 중심의 아이템이 선호되더라도 일본 현지 상황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현지 파트너의 의견을 반영, 반드시 테크 중심으로만 선발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컴업스타즈가 해당 국가에 진출하고자 하는 다른 스타트업들에게도 ‘현지에서는 어떤 아이템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한 번 해보니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올해 컴업스타즈는 미국과 중국, 유럽과 일본에 각각 다섯팀씩 선발해 진출을 지원했다. 그러나 지원하는 스타트업 중 상당수가 미국 진출을 원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모든 지역이 똑같이 우선적으로 진출 고려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경험했다. 따라서 내년 컴업스타즈 운영에 대해서는 지역별 가중치 조정을 고민 중이다. 최 이사는 “올해는 4개 지역을 똑같이 배분했지만, 내년에는 시장 규모가 큰 미국에 가중치를 두거나, 대만처럼 생태계가 유사한 국가와의 협업을 통해 동남아 시장으로 확장하는 등 유연한 변화를 줄 생각”이라고 밝혔다.

올해 컴업의 세 가지 아젠다, ‘딥테크·글로벌·대중성”

올해 컴업의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딥테크(Deep Tech)’였다. 세계 테크 시장은 지금 AI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소수 빅테크 독점 구조로 가는 AI 시장 속에서, 우리 스타트업은 빅테크가 하지 않는 틈새 시장이나 수직 분야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최지영 상임 이사는 “국내에서 정책적으로 밀어야 할 분야인 로보틱스, 휴머노이드, 피지컬 AI(Physical AI) 쪽으로 테마를 잡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휴메인(Humane)’을 키노트 연사로 초청한 데 이어, 행사 위원회와는 별도로 테크 스타트업들과의 비공개 라운드테이블(Roundtable)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휴메인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만든,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직접 투자하는 기업이다. 최 이사는 “휴메인 측에서 글로벌 성장성은 있지만 시장에서 저평가된 팀들을 만나고 싶어 해 6개 팀을 추천, 프라이빗하게 미팅을 진행했다”며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논의의 내용이 너무 좋아 비공개로 하기 아까울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는 단순히 유명 연사가 발표만 하고 떠나는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기술적·사업적 논의가 오가는 실질적인 비즈니스의 장을 만들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행사 마지막날은 통상 관람객이 적다. 그런데 사흘째 아이들이 객석을 꽉 채웠다. 청소년, 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퓨처 파운더’라는 새 프로그램이 먹혀들어 간 것 같다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첫째날은 테크, 둘째날은 글로벌, 셋째날은 대중성으로 나눠 진행했는데, 그랬더니 우리도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었고, 청중도 딱 맞게 채울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날에 대중성으로 구분을 해놓으니 컴업이라는 행사의 바운더리를 넓힐 수 있더라. 실제로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창업 선택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학부형들이 아이들을 의대 보내는 것 대신 창업을 장려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올해 컴업은 ‘대중성’ 확보에도 공을 들였다. 행사 마지막날을 ‘퍼블릭 데이’로 정하고, ‘퓨처 파운더(Future Founder)’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해  학생들과 일반 대중의 참여를 유도했다. 최 이사는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전문가가 오는 날로 집중하고, 마지막 날은 스타트업 생태계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중적으로 풀어 청중을 구분했다”며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창업 생태계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생태계 저변 확대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중적으로 반응이 좋았던 것 중 하나는 행사장 공간 연출이다. 입구의 대형 LED와 크리스마스트리 등에 관람객은 반갑다는 반응이었다. 최 이사는 “행사장에 처음 들어올 때 압도되는 규모감이 중요하다”며 “사람들이 따뜻한 연말 분위기를 느끼고, 사진을 찍으며 경험을 공유하게 하는 것이 브랜딩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지영 이사는 컴업을 통해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류 시장뿐만 아니라 제3세계 시장에 대한 관심도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이미 자체 생태계가 공고해 한국 스타트업이 진입하기 쉽지 않다”며 “오히려 인도, 남미, 아프리카 등 성장 잠재력이 큰 신시장을 개척해 스타트업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포부를 밝혔다. 남들이 다 아는 시장보다는, 직접 발로 뛰어 확인한 시장의 규모와 기회를 생태계에 전달하고 싶다고도 강조했다.

행사 이후, 무엇이 남는가

올해 컴업은 정량적, 정성적 측면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최지영 상임이사는 “데이터만 봐도 작년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오셨다”며 “사전 등록만 1만5000명”이었다고 밝혔다. 유사한 스타트업 행사 중 글로벌로 가장 유명한 핀란드의 슬러시(Slush)가 통상 1만5000명 규모인 것을 감안했을 때(물론, 슬러시는 유료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 사람들의 관심도 측면에서 충분히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는 수치다.

컴업에 대한 관심 환기에는 생태계 통합 전략이 있었다. 최 이사는 “중기부나 창진원에서 했던 여러 프로그램, 다양한 연계 행사들을 다 종합적으로 끌어넣은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도전 K-스타트업’ 결승전을 컴업 내에서 진행함으로써, 참가 팀을 응원하러 온 직원들과 관계자들이 자연스럽게 컴업의 관객으로 유입되는 효과를 거뒀다. 이는 1년 내내 컴업 부산, 컴업 제주 등을 통해 빌드업(Build-up)을 하고, 연말에 전체 생태계를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도 최 이사는 덧붙였다.

질적인 면에서의 변화도 강조됐다. 단순히 숫자 이상으로 무엇을 얻었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지영 이사는 컴업을 “행사를 잘 치르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연중 활동의 중간 지점에 놓인 하나의 과정으로 기획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접근은 해외 스타트업과 투자자, 국내 기업 간의 실질적인 연결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해 컴업에 참여한 콜롬비아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인도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경우가 있다. 단일 국가 행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3국 투자로까지 이어진 이 사례는 컴업이 지향하는 글로벌 연결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VC와 해외 정부 기관, 대기업이 한 행사에서 만나 스타트업과 직접 연결되어야 한다. 최 이사는 “적어도 국내에선 이를 위한 구조를 갖춘 행사가 컴업”이라고 강조하며 “올해 성과를 이어서 내년에는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고 웃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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