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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 한국 AI] 류정혜 “AI 콘텐츠를 위한 대헌장, 우리가 못 만들 이유 있나”

바이라인네트워크 기획, <한국 AI의 길을 묻다> 인터뷰 시리즈

“AI 코리아, 어디로 가야 하나”

이재명 정부가 AI를 국정 핵심 의제로 내세우며, 한국의 AI 산업은 새로운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기술을 넘어 경제·안보의 전략 자산이 된 AI. 그러나 글로벌 시장은 빅테크의 질주, 공급망 재편, 소버린 AI 등으로 빠르게 변화 중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한국 AI 정책, 이대로 충분한가?
진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바이라인네트워크는 정치, 산업, 학계, 스타트업 등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대한민국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실질적 해법을 모색합니다.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시리즈가 ‘AI 강국’ 코리아의 새로운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시리즈 ⑦ 류정혜 과실연 AI미래포럼 공동의
인터뷰 시리즈 ⑥ 이성엽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
인터뷰 시리즈 ⑤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
인터뷰 시리즈 ④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시리즈 ③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인터뷰 시리즈 ② 박태웅 한빛미디어 의장
인터뷰 시리즈 ① 임문영 미래전환 대표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을 분리해달라. 방송·통신은 여야가 정치적 논쟁으로 자주 부딪힌다. AI인프라나 인재 육성 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이견 없이 통과시켜야 할 정책이다.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이 떨어져야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과학기술과 AI를 지원할 수 있다”

“AI는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영역이다. 그런데 이런 인재들을 확보하면서 수백억원은 커녕 10억원도 못 주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경쟁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AI 시대의 콘텐츠나 컬처(문화)에 관한 ‘마그나카르타(대헌장)’를 우리가 먼저 만들어 공표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로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면, AI 아티스트들한테는 한국이 허브가 될 수 있지 않겠나”

“한국이 AI 아트의 수도가 됐으면 한다. 그런 국가 비전을 문화 쪽에서 가져갔으면 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기생충’이나 ‘어쩌면 해피엔딩’이 상을 받았을때, 사람들이 미국에서 상을 받아서 의미 있다고 기뻐하지 않았나. 그런 글로벌 어워즈를 한국이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뜨고 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라. “김구 선생님, 이제는 무섭습니다”라고. 한국의 문화가, 콘텐츠가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을 때, 우리는 “와 신기하다, 즐겁다”에만 머물러 있어도 될까?

지금 한국의 최고 경쟁력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문화’를 꼽을 수 있겠다. 단군 이래 세계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지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가 AI 아트의 중심에 서자”라고 주장하는 이를 만났다. 류정혜 과실연 AI미래포럼 공동의장이다.

앞으로의 세상을 AI가 바꾸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그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서로 간의 약속은 정해지지 않았다. 류정혜 의장은 적어도 AI와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모두가 지켜야 할 원칙을 우리가 먼저 만들어내자고 제언한다.

기준을 만들어 내면, 권위가 생긴다. 그 참에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게 마구마구 일을 만들어내자고도 말한다. 영화 ‘기생충’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각각 미국의 아카데미와 브로드웨이에서 상을 받았다고 환호하는 것을 넘어서, AI 아트를 위한 세계 최고의 상을 우리가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모든 이가 한강에서 K 컬처를 즐기는 세계 최대 AI 축제를 개최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출신으로, 한국의 IP가 얼마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지 현장에서 체감해 온 그다.

물론, 그러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도 많다. 과학기술과 AI에 대한 빠르고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진흥 정책의 빠른 실행을 위해서는 정부 부처에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분리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만큼, 미래를 이끌어 나갈 슈퍼 인텔리전스(인재)에 대한 투자도 중요하다. AI 문화강국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더 해야 할까. 류정혜 공동의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같은 기업에서 오래 일했는데, 최근엔 과실연 AI미래포럼의 공동의장이 됐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원래 AI미래포럼은 AI가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전에, 연구와 기술 개발을 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2023년, 2024년을 거치면서 “AI가 심상치 않다, 연구자 개발자끼리만 얘기해선 답이 안 나올 것 같으니 산업별 전문가를 합류시키자”고 전략을 바꿨다더라. 확대개편하면서 저도 합류했다.

당시 AI미래포럼 의장이던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센터장의 권유가 합류 이유였는데, 지금 본인은 AI 수석이 돼서 가버렸다(웃음). 와서 보니 사기업에서만 보던 거랑 (공공의 입장에서 보는 AI 기술과 전략이) 뷰가 달라서 많이 배우고 있다.

공공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나라 AI 경쟁력은 어떻다고 보나

인터넷 초창기 시절, 국가 주도로 인프라를 잘 깔았다. 김대중 정권 때, 마치 고속도로를 깔 듯 인터넷 인프라를 만들었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졌다.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가 처음 나왔을 때는, 우리나라 서비스에 비해서 UI 같은 측면이 많이 뒤떨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AI를 주도하는 톱 그룹 안으로는 못 들어가고 있다. 열심히 하고 있지만, 중요한 시점에 실기했다.

무엇을 실기했나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을 분리해달라는 이야기다. 성질이 다른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로 묶여 있다. 그런데 방송·통신 쪽은 여야가 정치적 논쟁으로 자주 부딪힌다. AI인프라나 인재 육성 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이견 없이 통과시켜야 할 정책이다. 여야가 논쟁할 것도 없다. AI 기본법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이유가 뭐였나. 방송통신위원회가 같이 있어서다.

과실연 AI미래포럼에서도 지속해 주장해 왔던 이야기다. 상소문이라도 써야 하나 싶다. 내가 오늘 인터뷰에서 할 모든 얘기를 통틀어 이게 제일 중요하다.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이 떨어져야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과학기술과 AI를 지원할 수 있다. 지금은 정치적 논쟁을 하느라 진행이 안 된다. 지원법안도 통과가 잘되지 않고.

공감한다. 두 개를 합쳐 놓으니 상임위 이름도 너무 길다. 과방위 이슈 말고도, 또 지적할 것은 없나. 열심히 하는데도 왜 지금은 경쟁에 뒤처졌을까

이 이야기를 하면 많이들 공감하는데, “(경쟁이) 능력 있는 아이디어, 좋은 개인들의 싸움이라는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인터넷 초반에 압도적 경쟁력을 가졌던 한국이 왜 글로벌하게 성공하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계속해 주변국으로 머물렀기 때문에, 우리가 중심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기에 정말 별로인 것 같은 서비스도 일단 미국에서 내놓으면 글로벌이 된다. 그런데 동시대 우리나라에선 더 뛰어난 서비스를 만들고도 글로벌 진출에 두려움을 갖는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모바일 시대까지만이다. 모바일 때만 하더라도 사기업의 경쟁 영역이었다. 개인의 뛰어난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 AI는 인프라 싸움이 너무 거대해졌다. 모바일과 달리 국가 간 경쟁이다. 싸움의 규모와 레벨 자체가 너무 달라지고 있다.

국가 간의 경쟁에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지금 상황에서 AI를 ‘전기’에 비유하기도 하더라. 문명사적 전환이라는 뜻이다. 이런 변화는 정부 없인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다시 한번 ‘원팀 정신’이 필요하다. 잘하는 개인(사기업), 정부, 학계가 모두 “우리는 원팀”이라는 생각으로 나서도 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다. 잘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야만 같이 돌파할 수 있는 싸움이다.

그런 면에서는, AI 잘하는 이들을 밀어주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보인다. 정부 정책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어떻게 보나

일단, 산업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하정우 AI 수석, 배경훈 과기부 장관 등을 가리키며)가 각 자리에 갔다. AI가 일으키는 변화의 최전선에 누가 있나? 학계 연구자들이 아니라, 산업 쪽이다. AI는 규모의 경제로 움직인다. 세계 AI를 움직이는 리더급의 연구를 보면 모두 구글이나 메타, 오픈AI에서 나온다. 학계에선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연구 자금을 기업이 대고 있어서다. 지금은 기업이 산업 자체를 리드하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의 물결, 본질을 잘 이해하고 알고 있는 사람이 수장을 맡아야 한다.

방금도 말했지만, 지금은 원팀 정신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 우리가 출발이 약간 늦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한다면 지금보다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힘을 많이 모아야 한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잘하는 사람들, 지금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해 볼 수 있도록 믿고 맡겨줘야 한다.

늦은 만큼 빨리 가야 하는 것은 뭘까? 어느 부분에서 스퍼트를 내야 할까?

GPU 확보나 데이터 센터 확충처럼 인프라에 대해선 구체화가 많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로 같이 붙어서 나오는 얘기인 ‘인재’와 관련한 부분은 아직 덜 구체화된 느낌이다. 메타가 촉발한 인재 전쟁을 잘 봐야 한다. 인재를 캐펙스(설비투자, 오랫동안 사용하는 자산 구입에 드는 비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기고를 봤는데, 아주 공감한다.

누군가는 (메타의) 슈퍼 인텔리전스 팀을 스포츠 스타한테 비유하더라.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몸값은 수백억원씩 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걸 뭐라고 하지 않는다. AI는 국가의 미래가 달린 영역이다. 그런데 이런 인재들을 확보하면서 수백억원은커녕 10억원도 못 주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경쟁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인재도 데이터센터와 같은 거라고(투자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그런 부분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슈퍼 인텔리전스와 같은 인재가 중요하다는 이야긴데, 이런 인재를 어떻게 확보하나

AI 시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말하자면, 요즘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 중 하나가 “1인이 기업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는 거다. 물론 지금도 솔로 프리너(Solopreneur)와 같은 1인 기업도 많다. 그러나, 지금의 1인 기업과 AI 시대에 탄생하는 1인 기업은 좀 다른 얘기다. 나는 그냥 마이크로 컴퍼니라고 부르고 있는데, 앞으로는 스타트업이나 기업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본다. 예를 들면, 미드저니와 같은 회사가 기업가치 조 단위를 찍고 유니콘이 될 때까지 조직원은 20명도 안 됐다.

그런 창업가를 육성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질 거다. 예를 들어서, 벤처투자사(VC)들도 1인 VC가 뜨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거다. 그래야 의사결정이 훨씬 빠르다. 지금은 대부분의 심사역이 투자를 위해 같은 회사의 다른 심사역들을 설득해야 한다. 투심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리 내가 확신해도 투자를 집행하지 못한다. 1인 VC가 되고, 평가와 같은 부분은 자동화를 할 수도 있다.

인재 외에, 무엇이 더 부족하다고 보나. 무엇을 빨리 전환해야 할까

데이터다. 지금 제조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AI가 정보를 가져가기 좋은 구조는 아니다. 지금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시스템이 일을 해왔다. 그래서 사람과 시스템이 쓰기 좋은 구조로 데이터베이스가 정리되어 있다. 이제는 AI가 와서 보고 읽어갈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현장에서는 이런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귀한 분들이다. 이런 분들이 현장에서 쌓은 AI를 위한 데이터 구축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도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게 했더니 잘 됐고, 저렇게 했더니 망하더라’ 하는 그런 디테일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또 공유를 잘 안 한다.

‘내 자산’이라고 생각해서 아닌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예전에는 우리가 “일본이 느려서 같이 일 못 하겠다”라고 했는데, 요즘은 중국에서 “한국은 느려서 일 같이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더라. 우리가 3~4년 걸려 만드는 게임을 중국에서는 몇 개월이면 만든다고 해서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했더니, 중국에선 코드를 그냥 공유한다고 하더라. 데이터를 통째로, 삽으로 떠 가는 거다.

물론, 핵심 부분은 공유하기 어렵다. 오픈AI 같은 곳도 중요한 것은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핵심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학회와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가고, (공유하는 곳에 대해)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정책 같은 걸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AI 전환(AX) 속도가 빨라지려면 그런 부분들이 오픈되고, 토론도 일어나야 하지 않겠나.

Part2. 한국을 AI 아트의 수도로 만들자

드디어 문화 이야기다. 류 공동의장의 전문분야이기도 한데, 요즘 케이팝데몬헌터스(케데헌) 인기가 장난 아니다

요즘 케데헌 때문에 난리가 났다. 넷플릭스 측에선 사실, 케데헌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작진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뒀더니 이렇게 됐다. 이게 성공의 힘이다. 정말, 매력적으로 너무 잘 만들었다. 나오는 음원들도, 미국 스포티파이를 장악해서 난리고.

내가 넷플릭스라면, (사자보이즈를) 데뷔를 시키겠다, SM이나 하이브와 같은 기획사랑 손잡고(웃음). 케데헌을 보면서 ‘한류가 정말 다음 차원으로 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에는 ‘한국인에 의해 하는 것이 한류’였다면, 지금은 한국의 정신(spirit)에 미국식 스타일이 접목돼 더 큰 파급력을 만들어냈다. 이런 일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좋으면서도 우려도 있다. AI 시대에 콘텐츠의 오리지널리티가 지켜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아니, 오히려 AI 시대에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IP는 훨씬 더 잘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사업 아이디어를 얘기해주면 안 될 것 같다(웃음).

창업을 위한 비밀 아이템인가(웃음)

콘텐츠 비즈니스가 IP 홀더와 함께 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AI시대에는 뭐든 애매하면 죽는 시장이 만들어질 것 같다. IP를 가진 입장에서는 압도적 정체성을 가진 IP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예를 들면, (케데헌의) 사자보이즈를 베낀 캐릭터가 나온다고 해서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렇지 않다. 사자보이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 IP의 오리지널리티를 찾는다. 정보를 찾기도 쉬우니 가짜를 걸러내는 것도 쉽다. “쟤네는 아니야, 작가님이 인증 안 했어, 오리지널리티를 부인했어”라는 얘기가 금방 퍼진다. 거짓인 채로 오래 갈 수 없다. 독창적 IP를 가질수록 오히려 더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다.

AI 학습을 위한 콘텐츠 데이터 활용에 작가들이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작품 활동에 AI를 활용하는 경우에는, 독자들이 이를 싫어해서 AI 쓰는 걸 숨긴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 부분들이 많다. 아직은 여러 입장이 충돌하는 시기 같다. 전환기의 특징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AI에 제일 거부감이 강했던 곳이 할리우드였다. 영화 TV 제작 스태프 노조, 작가 조합 등이 주요 스튜디오들과 협약을 맺었다. AI 사용으로 인한 일자리 보호나 저작권 침해 방치 등의 보호장치 마련을 위해서다. 독자들도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AI가 하는 것을 싫어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게 벌써 2년 전쯤의 일이다. 사람들이 지브리를 가지고 노는 것에 익숙해졌다. 작가님의 (잦은 마감과 과한 노동으로 인한) 어깨 탈골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AI는 굉장히 중요한 시스템이다. 오히려, AI가 아직은 원하는 만큼의 품질을 못 내는 게 문제다.

문화 쪽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가려면 우리가 빠르게 ‘표준’을 잡아서 선도하는 국가였으면 좋겠다. 할리우드 작가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가장 먼저 미국에서 일종의 헌장, 스탠다드(기준)를 만들었다. 그런 부분을 우리가 좀 빨리했으면 좋겠다.

박해받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모이면서 파리가 예술의 중심이 됐고,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유럽의 미술가들이 뉴욕으로 가서 현지의 예술이 컸다.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이 디지털 강국이다. 한국은 첨단산업이 발전했으며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이 굉장히 빠르다는 이미지가 있다. 현대적인(contemporary) 문화의 중심에 한국이 있단 말이다. 이걸 국가 브랜드화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내 꿈 중의 하나인데, 아티스트와 AI의 협업에 관련한 기준,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에 대한 기준을 먼저 마련하고 싶다. 이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AI에 저작권을 줄 순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당연히 인간이 가져야 하는 거다.

할리우드에서 헌장이 나왔을 때, ‘이게 과연 AI와 인간의 싸움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문화 산업 자본과 창작자 간 싸움으로 보여서다. 문화 자본이 AI라는 기술을 이용해서 창작자의 권리를 마구 휘두르려고 한 걸 (헌장이) 막아준 것에 가깝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창작자가 만든 결과물을 AI 기술을 통해 활용할 때 반드시 창작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기획이었다.

AI를 써서 창작자의 권리를 해치고 있는 것은, 사실 다 인간이다. AI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휘두르려는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다. 이 부분을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자. 예를 들어, AI 시대의 콘텐츠나 컬처(문화)에 관한 ‘마그나카르타(대헌장)’를 우리가 먼저 만들어 공표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로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면, AI 아티스트들한테는 한국이 허브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지금은 AI를 활용해 아트를 만드는 사람이 정말 소수지만, 나중에는 그 수가 정말로 많아질 거다. 마치, 팝아트나 일러스트가 대중적인 아트가 된 것처럼. 그러니까 먼저 치고 나가서 여기를, 우리가 마치 AI 아트의 수도처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서울이든, 한국이든 그런 식의 국가 비전을 문화 쪽에서 가져갔으면 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기생충’이나 ‘어쩌면 해피엔딩’이 상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미국에서 상을 받아서 의미 있다고 기뻐하지 않았나. 그런 글로벌 어워즈를 한국이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어를 쓴다는 것이 아킬레스건이라는 자조도 있다

그런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글로벌 센터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상을 타는 사람들이 오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칸은 옛날부터 칸이었나? 아카데미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명성의) 아카데미 어워드는 아니었다. 우리 부산국제영화제도 (다른 영화제의) 모습을 따와서 아시아의 센터로 만들지 않았나.

그런데 AI 아트는 아직 선점한 데가 없다. 앞으로 10년, 20년, 30년 후에는 글로벌로 가장 테크와 컬처가 잘 결합한 문화의 요새, 수도인 서울에서 시상식도 하고 최고 권위 있는 상도 줄 수 있다. AI 영화가 됐든, 콘텐츠가 됐든 테크와 연결한 것을 수상하는 부문에서 우리가 센터가 되는 거를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그걸 위한 기준을 만드는 일은 상당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대헌장 수립을 위한 의견도 다를 수 있고

그렇다. 복잡하니까 논란의 중심지가 돼야 한다. 싸움의 판은 여기 와서 벌려라. 이 판에서 벌이고 정리를 해 나아가야 한다. 가장 선진적 싸움이 일어나는 판이 된다면, 나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적용하고 먼저 싸우고 먼저 결론을 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헌장이 나왔을 때 반가우면서도 우리가 먼저 착착 제도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AI로 해외 진출을 당연히 해야 하지만, 반대로 해외에 있는 이들을 여기로 데려올 생각도 해야 한다. 이 분야에 관해서는 모두 서울만 쳐다볼 수 있도록. 여기서 누가 상을 받았는지 그 자체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는 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이것 역시 내 꿈 중 하나인데, K컬처에 관련한, 굉장히 오래 갈 수 있는 페스티벌을 열고 싶다.

문화부 장관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웃음)?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웃음). 모델은 ‘잘츠부르크 뮤직 페스티벌’이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세계적 규모의 예술 축제다.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꿈같은 곳이다. 두 달 동안 세계 클래식 팬이 이 모차르트의 도시에 모인다.

한국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보고 싶어 하는 도시다. 우리만 모를 뿐이지. 올림픽을 4년마다 유치하려고 할 필요 없이, 여기에서 우리만의 올림픽을 만들면 되는 거다. 그런데 그 형태가 ‘문화’였으면 좋겠다는 거다. 지금 우리의 강력한 문화의 힘이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마치 올림픽처럼, 아니 올림픽보다 더 재미있는 페스티벌을 말이다. 한강 치맥 페스티벌도 꼭 넣고(웃음). 한강이 얼마나 큰가. 야경도 정말 멋있고. 드론도 띄우고, 축제 기간 아이돌이 그냥 돌아다니고, 페어도 열고. K팝 콘텐츠 시상도 하고. 지금 굉장히 현대적인 관점에서, 동시대적인 것을 보여주는 그런 축제가 될 수 있다.

이런 것은 지금 당장, 프로젝트를 제안해서 시도해 볼 수 있지 않나

그런가? 그런데 정말 그걸 하고 싶다는 분들, 자원해서 같이 기획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너무 많다. 이런 국가적인 브랜드를 만들면 좋으니 거기서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만큼 테크와 먼 곳이 엔터테인먼트 쪽이기도 하다. 엔터 쪽이 산업화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분위기 좋을 때 노를 저으려면, 문화판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AI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을까?

핵심이 ‘페르소나 AI’라고 생각한다. 영화 ‘허(Her)’에 나오는 것 같이, 그 사람의 기록을 모두 갖고 개인 비서처럼 움직이는 AI 컴패니언 서비스(AI Companion Service)도 핵심은 결국 페르소나 AI다. 페르소나 AI가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게 많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지금 시도를 하고 있고,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콘텐츠와 더불어서 우리나라는 의료, 제조 같은 부문의 경쟁력이 크다. 가능성 있는 분야, 선도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미리 찍어서 씨앗을 키웠으면 좋겠다. 다른 나라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을 때, 다들 파운데이션 모델에 집중할 때 우리는 버티컬로 가야 하는데, 규제가 너무 심하다. 지금 우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때 많이 지원해야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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