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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국가 AI, 훌륭한 고객을 넘어 든든한 동반자로

심재석의 입장: AI 혁신을 이끌 부처는 과기부가 아니다“에 생각을 보태며

평소 깊은 통찰로 업계에 좋은 영감을 주는 심재석 기자의 칼럼 ‘AI 혁신을 이끌 부처는 과기부가 아니다’를 큰 공감과 함께 읽었습니다. 심재석 기자가 지적한 ‘한국형 OOO’의 실패 경험과 정부 주도 사업에 대한 IT 업계의 냉소는 현업에 있는 저에게도 익숙한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정부가 단순히 ‘지원자’가 아닌, 최고의 제품을 알아보는 ‘훌륭한 구매자’가 되어야 한다는 핵심 논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정책적 구매가 없었다면 지금의 테슬라도,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과감한 선택이 없었다면 스페이스X도 없었을 것입니다. 좋은 고객이 위대한 기업을 만든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다만 칼럼의 명쾌한 진단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AI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제 입장에서는 한 가지 바람이 더 생깁니다. 바로 정부가 ‘훌륭한 고객’의 역할을 넘어, 우리 AI 산업의 기초 체력을 함께 다지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가 담긴 청사진이 필요하다는 심 기자의 논지에, 제가 현장에서 그리는 구체적인 청사진 하나를 보태고 싶습니다.

제가 그리는 ‘동반자’의 모습은 바로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정부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두 가지 핵심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첫째, 국가적 ‘두뇌집단(Brain Trust)’을 만들어, 이곳에서 길러진 인재가 산업계로 진출하고, 현장의 전문가들이 다시 연구소로 돌아와 지식을 공유하는 선순환의 허브가 되는 것입니다. 갓 졸업한 석박사 인재들에게는 꿈을 펼칠 기회를, 국가 전체에는 AI 인재의 마르지 않는 샘을 제공하는 역할입니다. 둘째, AI 시대의 ‘경부고속도로’와 같이 막대한 GPU 자원을 집적한 국가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고속도로를 우리 기업들이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국내 스타트업과 기업들에게 센터의 컴퓨팅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크레딧’을 파격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절실한 제안입니다. 많은 AI 스타트업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구현할 막대한 컴퓨팅 비용 앞에서 좌절합니다. 저 역시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활용해 서비스를 개발하며, 지금까지 구글의 지원 프로그램으로 약 1억 원에 달하는 크레딧을 지원받았습니다. 이 지원은 스타트업의 성장에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고, 지금도 정말 큰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때로는 국가나 VC의 지원보다 글로벌 빅테크의 크레딧 지원이 더 절실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고마운 지원에 기대면서도, ‘언제까지 이 선의에만 의존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만약 국가 AI 컴퓨팅 센터의 크레딧을 통해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나 LG의 엑사원 같은 국내 LLM, 혹은 다양한 오픈소스 모델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비용 절감을 넘어, 국내 AI 생태계 전체를 움직이는 선순환의 톱니바퀴가 될 것입니다. 스타트업은 실패의 부담을 덜고 과감한 혁신에 도전할 수 있고, 국내 LLM 기업들은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며 글로벌 모델과 경쟁할 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결국 심재석 기자의 통찰처럼 행정안전부가 ‘유능한 고객’이 되어 명확한 시장 수요를 창출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산업의 기초 인프라를 제공하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갈 때, 대한민국의 ‘소버린 AI’는 더 이상 막연한 구호가 아닌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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