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돈 들여 해커톤을 여는 이유(feat.여기어때)
직장인들이 제일 하기 싫어하는 일을 꼽으라면, 십중팔구 ‘야근’이 순위권에 오를 거다. 그런 측면에서, 하룻밤 안에 아이디어를 시연 단계까지 만들어내야 하는 밤샘 작업 ‘해커톤’은 대단히 힘든 야근이다. 김희수 여기어때 기술기획팀장은, 회사 첫 해커톤을 기획하면서 “참가팀이 너무 적으면 어쩌지” 걱정부터 했더랬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차 모집에서만 14개팀 61명이 지원해 정원을 꽉 채웠다. 전직원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11월 28일 오후 1시부터 11월 29일 오전 11시 30분까지, 거의 만 하루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여기어때에서는 총 14개의 아이디어가 모양을 갖춰 임직원들 앞에 선보였다. 자진해 야근을 택한 이들은 “어떻게 하면 내 아이디어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느냐”에 골몰했다. 처음엔 서로 경쟁하던 각 팀들도, 밤새 함께 고생하면서는 내것 네것 없이 서로를 응원하는 동지애를 보였다.
여기어때 첫 해커톤의 우승은 ‘파프걸(Power Price Girls)’ 팀이 가져갔다.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이 팀은, 숙박 중개 플랫폼과 이용자들이 모두 고민하는 ‘가격’ 문제에 대한 답을 냈다. 2박 이상 연박하는 이용객에게 제공하는 방을, 하루 단위로 쪼개 조금 더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어때 입장에선 판매가를 낮추거나 혹은 마진을 늘릴 여유가 생긴다. 이용자도 같은 방을 더 싸게 예약할 수 있다.
파프팀을 비롯해 해커톤에 참여한 이들은 평소 자신의 업무를 바탕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 서비스가 더 나아질텐데’라고 고민했던 부분에 대한 열쇠를 가져왔다. 일상적인 업무였다면 아이디어가 결재를 받아 조직이 꾸려져 실제 서비스에 반영될 때까지 한 세월이 걸릴텐데, 이번 해커톤에는 “수상한 아이디어는 서비스에 직접 반영하겠다”라는 조건이 걸렸다(상금은 총 1000만원). 내가 내 서비스를 진짜 바꿔볼 수 있는 기회에 직원들이 정말 쓸만한 결과물을 가져 온 것이다.
해커톤을 막 끝내고, 여기어때 회의실에서 김희수 팀장과 만났다. 분위기가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직원이, 더 열정적으로, 더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엠씨(정명훈 여기어때 대표의 사내 영어이름)가 대상 뿐만 아니라 모든 팀이 경영진이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알고 온 것처럼 해커톤 결과물을 가져왔다고 평하더라”면서 “(기대를 넘어) 과열 양상까지 있었다”고 웃었다. 해커톤이라는 짧은 행사가, 회사와 회사의 구성원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다음은 김 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여기, 자발적 야근을 하겠단 사람들이 모였다
어제 밤새 같이 했다고 들었는데, 분위기는 어땠나?
처음에 막 모였을 때는, 서로의 아이디어를 다른 팀이 듣지 못하도록 조용조용히, 채팅으로 이야기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보안이 철통같다(웃음)
그런 조용한 도서관 같은 분위기였는데, 새벽 3시~4시쯤 되니까 옆 팀하고 얘기도 하고, 데모 보고 박수 쳐주고 환호하고 그러더라. 그때 진짜 친밀감도 생겼고, 가족같은 느낌이 가장 날 수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시상식에서도 다른 팀에게 환호하는 모습이 마치 경쟁한다기보다는, 서로를 ‘우쭈쭈’하는 모습도 보이더라(웃음). 마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하는. 참여도는 어떠했나?
이렇게 많이 참가할지 몰랐다. 원래는 1차로 신청 받고 미달이 나면 2차로 추가 신청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1차 만에 14팀이 신청해 정원이 꽉 찼다. 추가로 더 신청을 받아달라던 분들도 있었는데, 공간 문제로 제한해야 했다.
회사가 원하는 것과 개인이 원하는 것이 일치할 때
여기어때에서 해커톤은 처음이지 않나. 왜 시도를 하기로 했나
사람들이 계속 하고 싶어 했다. 개발직군 사이에서는 비슷한 시도를 해오기도 했고.
해커톤을 하면 뭐가 좋길래 사람들이 하자고 하나
평소랑은 다르게 좀 더 가볍게 본인이 의견을 내고, 그걸 바로 구현까지 해보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예전에 개발을 했던 때를 돌이켜보면 내가 하고픈 게 아닌, 남이 시킨 개발만 자꾸 하게 되더라. 저도 ‘내가 싶은 것 하고 싶다’는 생각에, 조직 명칭에 ‘기획’이 들어간 팀으로 옮겼는데, 지금 개발자분들도 비슷한 생각일 것 같다. 그런데 그건 기획자들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하고 싶은 기획도 있지만, 회사에서 해야 하는 기획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걸 벗어나서 정말 하고 싶은 거를 (해커톤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본인들이 하고 싶은 걸 한 건데, 경영진이 만족해하더라. 평소에 회사 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직원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해커톤에서 발견한 긍정적 지표로 보인다
그런 것 같다. 아까 엠씨(여기어때 정명훈 대표)도 “경영진이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알고 온 것처럼 해커톤 결과물들을 가져왔다”고 했다. 회사의 고민을 갖고 업무를 하고 있으니까 그 업무에서 더 깊게 들어가 아이디어를 갖고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 해커톤의 결과물들은 어땠나? 기대했던 것과 비교하면?
기존에 겪었던, 전해 들었던 해커톤들(의 결과물)은 대부분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하더라.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할 지, 특정 기술 정도를 보여줄 수 있는 정도인데 오늘은 보니까 대체로 서비스를 거의 구현하는 것처럼 해서 왔다. 아이디어 수준도, 그냥 ‘이거 한 번 해보면 좋겠다’가 아니라, 정말 그 분야에서 깊게 고민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그런 결과물이었다.
해커톤이 오직 ‘개발자’만을 위한 행사가 되지 않으려면
개인적으로는 해커톤에는 개발자만 참여할 줄 알았다. 그래서 비개발 직군이 좀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는데
비개발 직군도 참여할 수 있게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집중해서 홍보를 하지 못 한 것 같다. 직접 고객 접점이 있는 영업팀이나 고객만족팀에서 아이디어가 있지만, 이걸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워한다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분과 매칭하는 과정을 해보려 했다.
이것과는 별개로, 이번 해커톤을 구글 클라우드오 아마존웹서비스(AWS), 메가존 클라우드 등에서 후원을 했다. 그 과정에서 클라우드의 AI를 활용하면 코딩을 거의 하지 않거나, 혹은 아예 하지 않아도 서비스를 올릴 수 있는 수준으로 AI를 활용할 수 있다고 해서 (비개발 직군을 포함해) 그 교육을 해봤다. 해커톤 전에 실행했고, 교육을 들은 분들이 심화 교육을 한 단계만 더 거치면 정말 간단한 서비스를 올릴 정도의 수준까지 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시간이 좀 짧았던 것이 아쉽다.
그 교육을 받고 나서, 실제로 비개발 직군이 이번 해커톤에 참여하기도 했나
마케터로만 구성된 ‘삼성동마피아’ 팀이 있다. 40~60세대를 위한 챗봇, ‘어땡이’를 선보인 팀이다. 전체 교육 참가 신청자 91명 중에, 이 팀의 인원이 두 번째로 신청했다. 벼르고 있다가, 재빨리 신청해준 것 같다.
이런 일은 개발자가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 희망이 비쳤다(웃음). 이번 해커톤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평가하나?
짧은 시간이지만 개발 프로세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료했다는 점이다. 한 프로세서의 경험을 모두 거친 14개의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되게 좋은 성과다. 이들 모두를 여기어때 서비스에 접목해도 좋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을 하는데, 그 정도로 모두 품질이 높은 결과물이었다.
개발의 한 사이클을 다 겪어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조직에 어떤 장점을 가져오나?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거다. 다른 어디를 가더라도, 인접한 영역에 있는 직군을 리딩해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통상, 프로젝트 중간에 투입되어 마무리만 해본 경험이 있거나, 혹은 시작만 하고 중간에 하차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일의 전체 프로세스를 잘 모르게 된다. 그래서, 일 하는 중간에 다른 이들과 협업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하고. 내가 경험이 있으므로,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다른 직군에게 이러저러한 의견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조직 차원에서 여럿 확보할 수 있다.
다음 해커톤이 존재하기 위해선
해커톤을 마쳤다. 소감은?
회사의 고민과, 본인 업무 경험에서의 고민을 굉장히 일치시키고, 그걸 해결할 방법을 찾는데 굉장히 눙숙한 사람들이 회사 안에 있다는 걸 절감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수상팀의 아이디어를 어느 시점에 서비스화 해야할지를 다니면서 이야기해야 한다. 대상을 받은 1위부터, 우수상인 3위까지 여기어때 서비스에 적용하겠다고 해커톤 시작 전에 이미 공표한 상태다. 그걸 부상으로 걸었으니, 당연히 드려야 한다. 오늘 심사하시는 분들을 보니까 모든 팀의 발표에 관심이 많더라. 세 개 이상의 아이디어가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이 부상이 실현되어야 다음 해커톤도 가능하겠다
그렇다. 그래야 사람들이 참여하러 올 거고, 자발적으로 서비스를 개선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길 거다. 이런 열망을 풀어준다는 것 자체가 되게 좋은 것 같다.
수상한 아이디어들이 실제 서비스에 반영될 때, 발표한 팀들도 그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나?
그렇게 될 거다. 그분들이 결국 본인 업무를 할 때 생각한 아이디어를 갖고 인정받았으니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제 해커톤 기획 유경험자가 됐다. 해커톤을 시작해보고 싶어하는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국단위로 해커톤을 주최해본 분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랬더니 첫 마디가 “그걸 왜 네가 해?”더라. 예산 잡아서 전문 업체에 맡기면 다 알아서 해준다는 거였는데, 나는 그전에 여러 준비를 이미 시작한 상태라 회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했다. 나도 같은 조언을 하겠다(웃음).
내년에는 그럼?
내년에는 (해커톤을 할 수 있을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해커톤을 준비하면서 역량 있는 내부 직원들이 많이 참여했다. 그래서 내년에 같은 행사를 한다면, 이분들만 있으면 문제 없겠다 싶다. 개발자들이 ‘놀이터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기간은 짧지만 그런 시도를 해본 거다. 좀 더 긴 시간을 들여 이런 시도를 더 해봤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