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연대보증이라니, 신한캐피탈 논란
“법인으로 투자를 받은 건 줄 알았는데, 제가 캐피탈사의 개인 사채를 끌어다 쓴건가요?”
“앞으로 신한캐피탈의 투자를 누가 받으려고 할까요? 차라리 (이자) 15% 이하의 대출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신한캐피탈이 올 1월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간 프롭테크 스타트업 어반베이스의 창업자 하진우 대표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요지는 “창업자 개인이 연복리 15%로 투자원금의 두배가 넘는 금액인 총 12억원의 투자금을 반환하라“는 것입니다. 신한캐피탈 측은 현재 하진우 대표 부부가 공동명의로 보유한 집에도 가압류를 걸어놓은 상태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아직도 창업자 개인에게 투자 책임을 묻는 연대책임이 살아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진우 어반베이스 대표는 “창업자 개인에게 투자금을 배상하라는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는 판례가 생기면 굉장히 큰 파장이 일 것”이라며 이 일을 공론화 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신한캐피탈은 무엇을 근거로 지급명령 신청을 했나
신한캐피탈이 어반베이스에 투자를 한 것은 지난 2017년 11월입니다. 당시 양측이 체결한 투자 계약서의 일부입니다. 하진우 대표의 블로그에 계약서 일부가 올라와 있습니다(이 블로그에는 하 대표의 입장에서 기술한 ‘신한캐피탈과의 분쟁 내역’이 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신한캐피탈이 어반베이스에 주식매수청구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위 문서에서 빨간 줄이 그어져 있는 부분입니다. “기타 회사의 정상적인 사업추진이 불가능해진 경우”에 “이해관계인은 회사와 연대하여 본 조에 따른 책임을 부담한다”라는 것이죠.
계약서를 그대로 실행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신한캐피탈 측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의 사정도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의 감사를 받는 금융권 투자사에서 계약서에 ‘풋옵션 청구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행하지 않았을 경우 담당자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문책을 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물론, 모든 금융권의 투자사들이 신한캐피탈과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단 이야깁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이라인네트워크>와 통화한 신한캐피탈 측 관계자는 “약정서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으로 업무 절차를 진행 중이고,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받는 입장에서 특별한 사유 없이 (상환이 되지 않았는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투자자를 보호하는 풋옵션, 스타트업엔 ‘독이 든 사과’
그렇다고, “회사가 이익을 못 내니 투자자 개인이 원금에 이자 복리로 15%까지 더 쳐서 갚아라”라는 조항이 바람직해 보이는 건 아닙니다. 문제를 발생시킨 계약서의 조항 자체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계약서를 한 번 더 보시죠. 붉은 줄이 그어져 있진 않지만 매우 위험해 보이는 조항이 눈에 띄네요. “상환 청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상환이익이 없는 등의 사유로 상환을 하지 못하는 경우 회사는 투자자에게 투자원금 및 투자원금에 연복리 15%를 가산한 금액과 실제 상환한 금액과의 차액을 투자자에게 위약금으로 지급하여야 한다”는 항목입니다.
일명,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입니다. 투자 대상이 의무를 위반했을 때, 투자금 회수를 할 수 있도록 넣은 조항이죠. 통상, 투자사가 풋옵션을 실행할 때는 이해관계인(창업자 등 임원)이 계약서에 적힌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계약시 허위 내용을 포함했거나, 배임, 횡령 등으로 회사의 경영을 어렵게 한 경우인데요.
이 계약서에는 ‘상환이익이 없는 경우’라는 조항까지 넣었습니다. 즉,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지면 이해관계인이 이를 갚아야 하는데, 이에 불복할 시 대출보다도 큰 15%라는 이자를 붙이는 거죠.
이 조항을 법조인들은 어떻게 볼까요. 하진우 대표의 법률대리인인 정호석 법무법인 세움 대표변호사는 “상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가 채권자 우선 원칙이라, 배당 가능 이익이 있을 때만 회사가 자기 주식을 취득할 수 있게 하는 게 원칙”이라면서 “투자금 상환이나 주식매수청구를 무제한으로 인정을 하게 되면 채권자 우선 원칙이 깨져 버린다”고 신한캐피탈 측 주장에 반박합니다.
최재욱 법무법인 디엘지 파트너 변호사는 “한동안 풋옵션은 금기되어 왔었는데 요즘에 분위기가 달라져 가고 있고, 굉장히 많이 청구를 하고 있다”면서 “원래는 창업 후 투자 받은 후 잠수를 타거나 하는 등의 악질적 창업자를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요즘에는 (어반베이스의 사례처럼) 회사 이익이 없는 상황에서도 청구하는 등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최 변호사의 말은 이번 사례가 어반베이스에 한해서만 일어나는 독특한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네요. 최근들어 투자사들이 원금을 회수하기 위한 방안으로 풋옵션을 계약서에 넣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창업자들은 이를 알면서도, 혹은 잘 알지 못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풋옵션 청구 소송이 늘어나면서, 법원도 이 문제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최 변호사는 “최근 고등법원 판례 같은 경우에는 배당 가능한 이익이 있어야만 풋옵션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등의 판례를 내놓고 있다”면서 “아직 대법원 판례가 나온 것은 없으나, 법원에서 풋옵션 청구에 대해 제한하려는 판결들을 내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문제는 어떻게 반복되지 않을 수 있나
풋옵션이 악직절인 창업자를 방지해 투자사를 보호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면, 풋옵션을 계약서에 넣을 때 분명한 제한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산을 신청한 경우는 창업자의 의도적 악의가 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꽤 오랜 기간 회사를 운영해 키워오다가 경영에 실패하는 경우에는 어떨까요?
어반베이스의 경우도 그런 사례로 보입니다. 창업 후 10년 간 회사를 유지했고 나름의 성과를 거뒀으며, 회생신청 전에는 주주들과 간담회를 통해서 93.8%의 동의를 얻어냈죠. 그런데 투자 받은 지 시간이 오래 지났기 때문에 연복리 15%라는 이자를 떠안았습니다. 투자받은 돈은 5억원인데 이자가 7억원 가까이 됩니다.
하진우 대표는 “계약서 상 신한캐피탈이 (어반베이스 투자에) 성공했을 때 목표로 한 최소 수익률이 3%였다”면서 “투자를 받던 당시의 대출 이자가 1~2%를 하던 시기인 것을 감안하면 투자보다 대출을 받는 게 더 나았을 숫자”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따라서, 계약서를 만들 때 풋옵션 설정을 매우 신중하게 하도록 하거나 혹은 풋옵션 자체를 악용할 수 있는 조항은 미리 삭제할 수 있도록 벤처투자 표준 계약서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의미가 크게 들립니다.
최재욱 변호사는 “오히려 열심히 일해서 회사가 성장을 했는데 위약금이 많아지는 것은 부당하다, 그래서 이렇게 위약금을 매기지 말라고 법원에서 제지를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면서 “이런 소송을 미리 방지하려면 표준계약서를 재정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똑같이 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투자사의 종류에 따라 투자의 형태나 관리감독을 받는 부처가 다르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지난해 4월, 벤처투자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원칙적으로 ‘이해관계인의 연대책임’은 금지됐죠. 투자받는 기업의 이해관계인(임원, 최대주주)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경우 연대책임을 부과하는 행위를 제한한 건데요. 그런데 이 조항은 금융감독원의 관리 감독을 받는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신한캐피탈은 신기사에 해당하죠.
익명을 요구한 한 벤처투자사 관계자는 “신한캐피탈과 같은 금융권의 투자사들은 통상적인 벤처투자사들과 자본의 속성이 다르다”면서 “최근 신기사들의 분위기를 보면 투자로 인한 손해를 막기 위해 풋옵션을 넣어야 한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어, 투자라 보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고 지적합니다.
일반적인 벤처투자사들은 투자로 인한 손해가 나더라도, 크게 이익을 낸 스타트업으로 손실분을 메울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또, 한번 창업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다음 창업에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래 수익을 위한 인재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한 편으로 묶여 움직이기도 하는데요. 신기사의 경우에는 큰 수익을 내는 것보다는 손해를 막는 것에 더 중심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기도 합니다. 투자라기보다는 대출의 관점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둘을 분명히 구분지을 수 있도록 법을 고치는 문제 역시 논의해야 할 지점입니다.
일례로, 현재 신한캐피탈에서 어반베이스의 소송을 맡고 있는 곳은 채권 추심팀입니다. 벤처투자팀에서 자금을 집행했으나 상환이 이뤄지지 않자 채권 추심으로 소관부서를 옮긴 건데요. 신한캐피탈 관계자는 “청구 요청을 드리고 나서 이의가 들어온 건이기 때문에 연체나 부실로 볼 수 있고, 그래서 여신을 관리하는 추심팀으로 넘어가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진우 대표는 “투자에 대한 회수를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사회라면 창업자는 잠재적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므로 누구도 창업에 나서지 않으려 할 것이고, 한국에서 혁신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