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햇-수세, 같은 듯 다른 오픈소스 전략
레드햇과 수세(SUSE)는 대표적인 리눅스 배포판 회사로 점점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두 회사는 각각 미국과 유럽에 터전을 둔 법인이고, 내부에서 공유하는 철학도 다르다.
이런 가운데 서울에서 레드햇과 수세가 같은 주에 하루 차이를 두고 오픈소스 행사를 개최했다. 레드햇은 15일 고객과 파트너를 대상으로 대규모 연례 행사 레드햇 서밋: 커넥트 2024’를 열었고, 수세는 16일 소규모의 세미나 ‘수세 오픈소스 데이’를 진행했다.
두 회사가 내세운 주제는 대동소이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대두에 대응하려는 기업고객의 수요를 감안해 AI와 오픈소스의 관계를 강조하고, 폭넓은 포트폴리오와 기술적 역량, 방대한 생태계 등을 내세웠다. 자신이 오픈소스 생태계를 기업용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생성형 AI 인프라 환경에서도 동일한 역량을 가졌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브로드컴의 VM웨어 인수 후 발생한 서버 가상화 시장의 혼란 상황에서 제1 대안이라고도 했다.
“오픈소스가 세상을 주도한다”
사실 오픈소스가 오늘날 IT 혁신을 주도한다는 내용은 새롭지 않다.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머신러닝, 메타버스 등에 이르는 지난 10여년의 IT 기술 유행 속에서 리눅스를 비롯한 각종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핵심이었다. 오픈소스는 과거 너드와 해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대중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하나없이 완전한 애플리케이션 하나를 만들 수 없게 됐다.
레드햇은 그런 흐름 속에서 가장 큰 수혜주다.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진 리눅스 커널과 각종 구성요소를 가져다 조합, 검증해 엔터프라이즈급 리눅스 배포판을 만들고 유상 유지보수 서비스 계약으로 매출을 거두는 수익구조를 정착시킨 게 레드햇이다. 기업이 리눅스 서버를 당연하게 사용하고, 리눅스 컨테이너와 쿠버네티스로 모던 애플리케이션을 다루면서 레드햇 사업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IBM으로 주인이 바뀌긴 했지만, 오히려 IBM의 각종 플랫폼 소프트웨어가 레드햇 솔루션으로 대체돼 사실상 소멸했다.
반면, 수세는 기업용 리눅스란 개념을 처음으로 사업화한 회사지만, 잦은 부침을 겪으며 횡보를 거듭했다. 창업자의 손에서 노벨(novell), 어태치메이트그룹, 마이크로포커스, EQT AB 등을 거치며 주인도 많이 바뀌었다. 최근 수년 사이 기업공개와 상장폐지도 겪었다. 이런 와중에도 수세의 기술 자체는 굳건히 살아남았다. 소유주 변경 중에도 중요 기업도 인수해 쿠버네티스, 보안, 가시성 등 새 트렌드에 맞춘 포트폴리오도 갖췄다. 수세는 독일계 제조기업을 바탕으로 전통 산업의 IT 수요에서 강점을 보인다. SAP란 강력한 우군도 가졌다.
레드햇과 수세의 제품 포트폴리오는 1대1로 대비할 만큼 유사하다. 어차피 같은 오픈소스를 바탕으로 하기에 원천 기술 기반도 거의 동일하다. 독점 소프트웨어를 보유하지 않고 오픈소스로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공급한다는 기본 정신도 같다.
레드햇은 ‘안정성’, 수세는 ‘개방성’에 무게
두 회사의 최근 행보는 미묘하게 엇갈린다.
레드햇은 점차 오픈소스의 개방성보다 자사 기술을 통한 안정성에 방점을 찍는 모습이다. 레드햇에서 다루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리눅스, 쿠버네티스, 스토리지, 미들웨어 같은 굵직한 제품뿐 아니라, 큰 플랫폼을 구성하는 여러 세부 요소를 포함한다. 다양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마다 각기 다른 속도와 흐름으로 개발되고, 업데이트 빈도도 다르다. 버전이 다양하고, 소규모 업데이트가 수시로 이뤄진다. 여러 오픈소스를 조합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다양성은 관리 복잡성과 보안 위헙성의 확대를 불러온다. 장애와 보안사고에 적절히 대응하고 책임져줄 믿을 만한 조력자가 필요한데, 레드햇은 혼란 속에서 안정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안정성의 반대편에 종속성의 성격이 자리한다. 레드햇의 안정성에 의존할수록 레드햇에 종속된다. 레드햇의 솔루션을 대체할 수 있는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변종 솔루션이 있었는데, 레드햇은 이를 인수하고 흡수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 센트OS가 대표적 예다.
수세는 역으로 개방성을 더욱 강조하는 모습이다. 수세는 레드햇에서 퍠기한 ‘센트OS 리눅스’를 지속 지원하겠다고 하고, 자사의 엔터프라이즈 리눅스 외에 다양한 리눅스 배포판에도 기술지원을 제공한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기업에서 원하는 시스템의 전체 그림에 수세의 제품을 하나씩 끼워넣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고객에서 원하는 제2, 제3의 옵션을 수용할 수 있다고도 한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정신의 핵심을 ‘공유’라고 하면서 레드햇을 반커뮤니티적 행위자로 몰아세운다.
레드햇이 개방성을 아예 감추는 건 아니다. 레드햇이 개방성을 주로 내세울 때는 하드웨어에 대한 메시지를 낼 때다. 레드햇은 x86, 메인프레임, 파워 등의 하드웨어를 모두 지원할 수 있고, 프라이빗 및 퍼블릭 클라우드 모두를 지원해 인프라 선택권을 준다고 한다. 레드햇에서 주도하지 않는 흐름인 ‘생성형 AI’ 모델을 언급할 때도 개방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형 및 소형 언어모델의 선택권, 프레임워크와 라이브러리의 선택권을 말한다. 그래서 레드햇은 10년 넘게 ‘오픈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를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사실 이런 특징은 수세에서도 동일하다. 수세는 ‘오픈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를 마케팅 용어로 사용하지 못할 뿐 레드햇에서 강조하는 하드웨어와 클라우드 종속 파괴, 생성형 AI 요소 선택권 등에서 동일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생성형 AI 전장에서 다시 만나는 한 목소리
생성형 AI란 유행 속에 두 회사의 메시지는 한 곳에서 만난다. ‘프라이빗 AI’다.
레드햇과 수세 모두 대형언어모델(LLM)을 직접 개발하지 않지만, 그와 관련되는 여러 구성 기술에서 기업에게 기술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LLM은 대부분 리눅스 컨테이너로 만들어지며, 쿠버네티스 환경 위에서 구동된다. 데이터 워크플로우와 라이브러리, 노트북, 프레임워크 등 전반적인 기술 스택을 기업에서 안심하고 쓸 수 있게 구축할 수 있다고 한다. 오픈AI 같은 특정 업체의 생성형 AI에 종속되지 않고,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의 AI 인프라에 얽매이지 않고, 기업 고객 각자의 ‘프라이빗 AI’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동일한 메시지다.
레드햇의 ‘레드햇엔터프라이즈리눅스(RHEL)’와 ‘오픈시프트’, ‘앤서블’을 쓸 것이냐, 수세의 ‘수세리눅스엔터프라이즈(SLE)’와’ ‘랜처프라임’, ‘수세매니저’를 쓸 것이냐는 기업고객이 IT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택해야 하는 문제다. 기능이나 보안성, 기술적 역량 측면에서 두 회사의 우열은 쉽게 가리기 어렵다. 결국 가격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컬의 파트너사, 인력 구성 등에서 승패를 가리게 될 것이다. 종속성과 개방성의 양자택일에서 어느게 정답이라 할 수도 없다. 기업별의 상황과 선호 기술 차이에 따라 레드햇과 수세가 선택받을 것이다. 다행인 건 두 라이벌의 구도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어서 소비자 입장에선 경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레드햇이나 수세가 기업에게 오픈소스의 상용 소프트웨어 대비 우수성을 강조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두 회사의 경쟁상대는 이제 윈도우 같은 상용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보안과 기술검증, 보유 고객 사례 규모 등을 주로 강조하는 두 회사의 메시지는 고객의 변덕 그리고 커뮤니티를 또 한편에서 지배하는 빅테크 플랫폼을 겨냥하고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김우용 기자>yong2@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