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콘텐츠, 재주는 창작자가 넘는데 돈은 빅테크가 번다
“AI가 모든 걸 담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기업가 정신이 발현될 수 없는 그런 사회를, 우리는 정말원하는가?”
기술회의론자의 말이 아니다. 오히려 테크 트렌드를 첨예하게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계적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의 제너럴 파트너 크리스 딕슨(=사진 오른쪽)의 이야기다.
크리스 딕슨이 최근 저작한 <읽고 쓰고 소유하다>의 출간기념회를 겸해 방한했다. 온 김에 기자들도 만났다. 30일 서울 디캠프 선릉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크리스 딕슨은 “AI로 인한 인터넷의 집중화를 막기 위해서는 자금의 흐름이 중앙 네트워크 소유 플랫폼(빅테크)으로 가는 게 아니라, (모든 인터넷 참여자라는) 외곽으로 흐르도록 하는 새로운 탈중앙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블록체인과 웹3, 암호화폐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빅테크의 시장 독점, 심화되는 인터넷의 중앙집중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의 블록체인 기술은 지난 몇 년간 계속해 반복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크리스 딕슨의 말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반 대중이 디지털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생성, 교환하고 더 나아가 AI가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급속한 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소유권의 중요성”을 말하는 목소리는 주의깊게 들을만 하다.
크리스 딕슨은 “톱5 SNS 플랫폼이 광고나 구독으로 지난해 창출한 수익이 5000억달러 이상이지만, 실제 창작자들과 공유되는 수익은 굉장히 적다”면서 “게다가 AI 시대에는 (빅테크와 같은) 기업들이 데이터를 판매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AI가 유튜브 영상으로 학습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 그 경우에 창작자에 보상이 어느정도 가야 되는 것은 아닌지와 같은 문제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사람이 만들어 낸 일러스트를 AI 시스템이 학습해 자체적으로 일러스트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인간 일러스트레이터는 양측으로 손해다. 내가 만든 일러스트 데이터가 모두 AI에게 가고 있음에도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없고, 내 데이터로 일러스트를 배운 AI가 수준급의 결과물을 내놓을 때는 직업마저 잃을 수 있다. 크리스 딕슨은 “미국의 경우 계속해 (AI의 데이터 사용과 이에 대한 보상을 놓고) 법적 소송이 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 점차 중요한 문제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스타트업 ‘스토리’에 대한 a16z의 투자도 그 연장성이다. 스토리(회사명: PIP Labs)는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를 카카오에 5000억원에 매각했던 창업자 이승윤 씨가 프로그래머블 IP(Programmable IP) 플랫폼을 목표로 만든 회사다. a16z는 스토리의 1074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를 리드했다.
스토리는 창작자들이 자신의 IP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업로드하고 이를 토큰화할 수 있게 한다. 토큰화된 IP는 블록체인상에서 위변조가 불가능한 형태로 저장되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된 기록으로 남는다. 이를 통해 창작자들은 IP에 대한 소유권을 명확히 하고 이를 재창작, 판매, 배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권리와 수익을 보호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이 플랫폼의 취지다.
크리스 딕슨은 스토리에 투자한 이유에 대해 “스토리의 IP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관심이 이전부터 많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승윤 대표와 이야기를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면서 “이 대표는 래디쉬를 성공적으로 창업했다는 훌륭한 배경과 레퍼런스를 가졌기 때문에 투자한 것”이라고 평했다.
아울러, 창업가들에게 기술 변화의 다음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기술의 최첨단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내놓았다. 지금은 AI와 블록체인이 가장 흥미로운 분야이므로, 창업을 하는 이들 역시 이 두 기술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최첨단 기술에 대해 계속 알고 있어야 할 것”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둘 것” 등을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