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은 아닙니다만] 냉철하게 마주해야 할 진실, ‘AI 트루스’

임백준은 참 신기한 사람이다. 나는 이 이름을 십몇 년 전에 어느 매체의 칼럼니스트로 처음 발견했다. 개발자가 본업인 그는, 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보다도 쉽고 재미있게 기술과 관련한 소식을 써냈다. 기술과 인문을 두루 섭렵한 사람, 게다가 그 지식을 문자로 잘 녹여낼 수 있는 이는 흔치 않기에 나는 임백준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머릿속에 남겼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나는 버그로부터 받은 충격보다 버그를 잡는 유진의 모습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인공지능이 코드 작성만이 아니라 디버깅도 잘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복잡성을 내포한 문제를 이렇게 빨리, 이렇게 완벽하게, 사람의 개입 하나 없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 유진은 디버깅을 시작한 것은 물론 순식간에 완료했다. 내 명령이 없이 디버깅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해 화가 나기보다는, 수정된 버전을 인도네시아 서버로 배포하기 전에 나에게 묻는 게 고마울 정도였다. AGI 도달 이후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인간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아주 오래전 제리 카플란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 떠올랐다. 2015년 무렵에 했던 말이라고 하니, 그가 어떻게 요즘 세상의 일을 미리 알았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그 시절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필요 없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AI 트루스, 38~39p)

임백준 씨의 신간, <AI 트루스>의 첫 장은 소설로 시작한다. “10년 뒤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 본 것”을 소설화했다. 멀지 않은 미래, 2034년에 나의 인공지능 동료 ‘유진’과 함께 한 일상을 그려냈다. 또, 인공지능이 지금의 개발자들이 하는 일을 하나하나 대체해 나갈 때 과연 개발자는, 인간은 어떤 혼란을 겪게 되고 또 어떤 일을 선택해 하게 될지도 상상하여 보여준다. 여느 미래 소설을 보는 기분으로 읽어나갈 수 있다.

앞의 인용 부분을 읽어보신 분은 대략 눈치 채셨겠지만, 이 책은 오랜 기간 개발자로 살아온 저자가 대형 언어 모델(LLM)을 필두로 눈부시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을 바라보면서 ‘코딩의 종말’을 떠올리다 기획했다. “20년 넘게 뉴욕에서 일하는 동안 나에게 수많은 희열과 기븜, 긴장과 좌절, 경쟁과 성취를 맛보게 해준 코딩이라는 행위가 조금씩 인공지능의 손으로 넘어가는 실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열망이, 이 책의 원동력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계속해 소설로만 이뤄져 있는 것은 아니다. 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저자가 하고픈 인공지능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공지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인공지능 모델은 기존과는 어떻게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가능하게 되었는지 등을 찬찬히, 문과생도 이해할 수 있게 기술한다. 2장은 한마디로 인공지능의 역사다.

3장부터는 인간의 삶을 파고드는 인공지능을 다룬다. 이 책은, 원래 개발자의 입장에서 코딩의 종말을 다루려 했으나, 그 지적 흥미의 관심 범위를 거의 모든 인간이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겪게 될 삶의 변화로 넓혔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딥페이크 악용’과 관련해서도, 저자는 “사람들에게 딥페이크의 가능성과 악용 수법을 교육하여 사기 등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거짓 정보에 좀처럼 현혹되지 않는 냉정한 인식과 성숙한 태도도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개발자들은 4장에 더욱 관심이 생기겠다. 실제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어떻게 일을 하고 있고, 또 이 새로운 종이 어떻게 인간 개발자의 영역을 대체해나가는지 기술한다. 그 내용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코드를 만드는 원리’라거나, ‘인공지능의 코딩 도구’ 등도 살펴본다. 그런 와중에 “당신을 대체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다른 사람이다”라는 중요한 상황 판단 역시 잊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개발자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 노동을 하는 모든 이들이 곧 맞닥트릴 미래라는 것을 5장에서 짚는다. 법률과 금융, 의료는 물론 소매업과 제조, 교육, 운송과 에너지, 보험,부동산, 광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농업 가릴 것 없다. 글을 마무리 짓는 6장에서, 이런 변화에 인간은 무엇을 문제의 본질로 바라봐야 하는지, 근본적 질문을 한다. 인공지능의 음험함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까?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인류 스스로 자기들끼리 맺고 있는 관계”에 있다는 통찰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유익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인공지능과 관련해 우리가 무엇을 알고 생각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좋다. 다만, 인공지능의 역사나 현재 기술 흐름 등을 잘 아는 이에게는 복습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물론, 그런 이들에게도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인공지능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이나, 끝도 없는 비관만 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가진 현실을 기반으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해보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진짜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인공지능과 사람의 대립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 자체”라는 말은, 무척이나 마음에 와닿는다.

[AI 트루스, 임백준 지음, 한빛미디어 펴냄, 2024년 8월 발간]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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