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자들 “티몬-위메프, 나스닥 간다고 무리한 프로모션”
단 150여명에 790억원.
티몬과 위메프(이하 티메프) 미정산 판매 업체들 일부가 집계한 수치다. 2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빌딩에서 열린 ‘위메프/티몬 판매자 피해 모임’에서 입점 판매자들이 모여 피해 상황을 성토했다.
이번 집계에 미참여한 판매자들, 대형 입점사, 6~7월 정산 예정 대금을 생각하면 미정산 대금은 눈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은 현재까지 티메프 미정산 대금을 1700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정산 예정 금액을 포함한 판매자 피해 대금이 7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보고 있다.
피해 판매자들은 티몬과 위메프(이하 티메프)가 역마진을 감수하면서 몸을 불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부 업체에서는 티매츠 측이 자전거래를 권유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판매업체에 근무하는 인력과 관련 제조사, 택배사 등까지 생각하면 간접적인 피해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입점 판매사들은 정부에 대금을 대신 달라는 게 아니라, 임금 체불, 파산 방지 등 최소한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유관 기관과의 연계나 관련 대출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사 사건 발생 방지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카카오톡 오픈채팅 방에서 피해자들이 피해 대금을 조사한 피해 대금은 150여명에 약 79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집계에 참여하지 않은 큰 액수의 피해자들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 입점 판매자들은 티메프가 역마진을 감수하고 공격적으로 판매를 진행해 타 플랫폼에서의 판매가 줄었고, 그 결과 티메프에서의 피해 규모가 더욱 커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농업법인 H사 대표는 “4월부터 위메프와 티몬에서 공격적으로 마이너스 쿠폰을 붙이면서 타 플랫폼에서의 판매 규모가 줄었다”며 “피해 셀러들을 모아 확인해 본 결과,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티메프에서 마이너스 쿠폰을 붙여주면서 두 달치 매출이 1년치 매출에 맞먹을 정도로 매출액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지산글로벌 박지만 대표 또한 “2013년부터 티몬과 거래했으나, 5월부터 티몬 팀장으로부터 매출 활성화를 제안 받아 6~7월 매출이 (티몬에서의) 1년 매출보다 많다”며, “똑같은 수수료를 냈음에도, 티몬 측에서 저희와의 상의 없이 자신들의 마진을 인하해 가면서 쿠폰할인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부 카테고리에서는 최대 35% 할인 쿠폰을 지급했다고 한다. 그 결과, 타 플랫폼의 매출이 줄어들고, 할인폭이 큰 티몬에서의 매출이 전체의 4분의 1 수준으로 커져 피해 또한 크게 늘어났다.
전사적으로 역마진을 고수해 가며 오랜 기간 행사를 유지한 것이 이번 일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적자인 회사에서 담당 MD 혼자의 판단으로는 진행할 수 없는 일”이라며 “위(경영진)의 지시 아래 해당 행사를 오래 진행해 많은 업체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참여한 업체들은 판매 대금이 수익은 아닌지라, 아무리 많이 판매해도 이익이 거의 남지 않아 피해가 더욱 크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날 참석하지 않은 또 다른 판매자는 위메프 측이 자전거래를 요구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위메프 쿠폰팀에서 연초부터 연락이 왔다”며 “할인 쿠폰을 추가적으로 제공할 테니, 업체에서 직접 상품을 구매하는 식으로 자체 매출을 내고 결제하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업체가 스스로 상품을 구매하면, 플랫폼 내 거래액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해당 업체는 이미 할인 프로모션을 추가로 진행하는 상황이어서 거절했으나, 당시 해당 제안에 대해 매출액을 키우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다고 설명했다.
입점사들이 사태 인지가 늦은 이유는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시스템 문제가 크다. 티몬과 위메프는 대개 익익월 정산을 시행한다. 위메프는 67일, 티몬은 77일 후 대금이 지급된다. 대금 지급이 늦기 때문에, 내부 자금 악화에 대해 알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티메프 측이 나스닥 상장으로 인해 공격적인 할인 프로모션을 한다고 설명을 들었다는 판매자들도 있다. 이들은 티메프 MD들이 공격적인 할인 프로모션 배경으로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해, 자금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해 업체들 중 일부는 현재 파산과 부도 등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날 참석한 H사 대표는 “당장 버틸 여력이 있어 공론화를 했지만,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이 날 모인 판매 업체들 중 일부는 법인 파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규모가 큰 업체들의 상황도 막막하다. 귀금속을 주로 취급하는 종로 일대의 입점 업체, 디지털 기기를 주로 취급하는 용산 일대의 입점 업체들 또한 파산을 준비하거나, 진행 중인 상황이다. 사실상 흑자 도산이다.
이번 사안이 관련 업계로 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이날 참석한 한 업체 대표는 “은행, 카드, PG사, 택배사, 손해보험 등 이번 미정산 사태의 여파가 전세 사기보다 훨씬 클 것이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자지급결제(PG)협회는 지난 26일 “티몬/위메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일방적으로 PG사에게 떠넘기며 무조건적 환불/취소를 진행하면 PG사마저 지급불능 상황에 빠지게 돼 대한민국 이커머스 전반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현재 PG 하위 가맹점 중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 가맹점은 134만여곳이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한 PG사가 실제로 자금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PG사로 커지는 데에 우려를 표했다.
다만 현재에는 어느 정도 PG사와의 협조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의 압박이 컸던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티몬은 내달 일부 PG사의 협조로 내달 발송 예정이었던 도서문화상품권 108억원을 취소처리했다. KG이니시스, 나이스페이먼츠, KCP, KICC 등이 협조했다.
정부 측의 온라인 판매 플랫폼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참가 업체는 “오픈마켓은 PG사와 에스크로 서비스를 도입해 판매자와 소비자 간 거래대금을 명확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관리 감독의 책임은 금융감독원에 있어 향후 금감원이 자세하게 상황을 들어봐 사실상 소비자와 판매자들을 향한 사기 피해나 다름 없는 이런 사례가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H사 대표는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자금을 지원 받아 판매해, 티몬과 위메프가 위험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해당 업체는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지원을 받아 해당 플랫폼에서 라이브 커머스 등을 지원했다. 사실상 공기관에서 플랫폼의 재무 상황 등을 명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업체들의 입점 및 판매를 장려했기 때문에, 해당 기관의 책임론도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피해 입점 업체들은 “소비자와 판매자가 모두 다 같은 피해자다”고 강조하며, 구영배 큐텐 회장 및 티메프 주요 임원진의 출국 금지와 정부의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실제로 구영배 회장은 현재 일부 언론사의 답변에 응답하며, 공개 석상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위메프 류화현 대표는 삼성동 본사에서 소비자 환불에 응대했으나, 티몬 류광진 대표는 공식 석상에 등장하지 않았다.
판매자들은 정부에서 피해를 복구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여유를 찾을 때까지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호소했다. 농업법인 H사 대표는 “만일 입점 업체들이 부도가 날 경우, 납품 업자나 1차 생산자들까지 여파가 번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판매자들이 다양한 플랫폼에 입점한 상황이기 때문에 피해 금액이나 부도가 나면 불가피하게 소비자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모인 판매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자 했으나, 사실상 여러 업체가 부도 직전의 위기인지라 상황상 비대위를 발족할 수 없다고 밝혔다. 향후 정리되는대로 비대위를 발족할 계획이다.
또 같은 날 오후 티몬 피해 소비자 모임은 큐텐코리아와 큐텐테크놀로지 본사가 위치한 강남N타워로 항의 방문을 했다. 이날 피해 소비자 모임 대표는 “향후 게릴라성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집회를 할 계획으로, 판매자들과 연합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성아인 기자> aing8@byline.network